동화창작

[이명희] 과외공부는 싫어

凡草 2005. 10. 23. 07:48

[ 과외공부는 싫어 ]

 

                                           이 명희

 

 

 

눈부시게 화창한 봄 날 아침입니다.

밤새 내린 비에 울타리 가득 노오란 개나리꽃이 활짝 피어났어요.

그저께만 해도 어쩌다 하나씩 듬성듬성 피어있었는데, 오늘은 가지가 휘어질 듯 셀 수도 없이 많이 피어난 거예요. 휘어진 긴 줄기를 따라 피어난 개나리꽃들. 노오란 별들이 주르르, 주르르 미끄럼을 타는 것처럼 보이지요?

 

그런데 저기 좀 보세요. 아무리 봐도 이상하지요? 바람이 부는 것도 아닌데 아까부터 개나리꽃 가지들이 자꾸 일렁거리니 말이에요. 어머나, 어쩐지! 털이 보송보송한 병아리들이 노오란 개나리 커튼을 열고 여기저기서 튀어나오네요. "삐악, 삐악, 삐악...... ." "꼬옥, 꼬꼬꼬......" 병아리들을 뒤따라 엄마 닭도 어디선가 뛰어 나와요. 아마도 개나리꽃 그늘에서 숨바꼭질이라도 하고 있었나 봅니다. 한 마리, 두 마리, 세 마리......열 마리네요. 열 마리나 되는 병아리들이 저마다 삐악삐악 뭐라고 조잘대면서 마당 한가운데로 종종종 내달립니다.

 그 뒤를 엄마 닭이 바쁜 걸음으로 또 뒤쫓아 갑니다. 조용하던 마당이 금세 부산해져 버렸어요. 여간해서는 꿈쩍도 않는 외양간 황소가 커다란 눈을 껌벅껌벅, 고개를 내밀고 내다봅니다. 대문간에서 막 아침밥을 먹던 진돌이도 꼬리를 흔들며 귀엽다는 듯 바라보고 섰네요. 엄마 닭은 보란 듯이 배를 쑤욱 내밀고 목에다 잔뜩 힘을 주고 걷고 있지요.

 넓은 이 마당은 꼬꼬 아줌마네 작은 병아리들에겐 더없이 멋진 놀이터랍니다. 쪼르르쪼르르 달리기 연습, 폴짝폴짝 뜀뛰기 연습, 개나리 꽃 그늘에서 숨바꼭질도 하지요. 그러다가 잠이 오면 엄마 닭 날개 밑으로 모여들어 잠깐씩 낮잠을 즐기기도 하구요. 뿐만 아니에요. 보물찾기도 있어요. 이 넓은 마당은 온통 병아리들의 보물창고랍니다.

 언뜻 보면 아무 것도 없을 것 같지만, 여기저기 머리를 맞대고 헤집다보면 맛있는 모이랑 영양가 있는 벌레들이 얼마나 숨어있는지. 이보다 더 신나고 재미있는 보물찾기는 아마 없을 거예요. 그렇게 엄마 닭이랑 병아리들이 큰 마당을 한바퀴 돌다보면 금세 하루해가 지고 배들이 볼록볼록해져 있지요. "꼬꼬꼬옥, 얘들아, 목이 마르지? 다들 이리 오너라." 엄마 닭이 소리치자 병아리들이 앞을 다투어 마당가에 있는 연못으로 달려옵니다.

"아이구, 착하기도 하지. 요 귀여운 것들!" 엄마 닭 꼬꼬는 물을 한 모금 머금고 보아란 듯이 하늘을 쳐다봅니다.

"자아- 얘들아, 물은 이렇게 먹는 거란다."

병아리들이 벌써 다 알고 있는데도 엄마 닭은 습관이 되어 또 말합니다. 연못 가장자리에 나란히 서서 물을 마시는 병아리들을 사랑스런 표정으로 지켜보던 엄마 닭의 시선이 갑자기 한 곳에서 꼼짝도 하지 않습니다. "꽥- 꽥-" 엄마오리가 아기 오리들과 한가로이 헤엄을 치고 있었습니다. 엄마 오리를 따라 물 위로 동동 떠다니는가 하면, 물 속으로 퐁당퐁당 고개를 처박고 자맥질을 하는 아기오리들의 하는 짓이 여간 귀엽고 신통해 보이지 않습니다. 뚫어져라 지켜보던 엄마 닭이 병아리들을 돌아봅니다. "꼬꼬꼬......꼭꼭! 얘들아, 우리도 한번 들어가 볼까?" "삐악 삐악, 싫어, 싫어." 물을 다 먹은 병아리들은 오리 쪽은 아예 관심도 없다는 듯, 마당한가운데로 달아나기 시작합니다. "쯧쯧, 녀석들......" 엄마 닭의 얼굴에 실망하는 빛이 가득합니다. 이튿날 아침, 엄마 닭은 병아리들을 데리고 또 연못가로 나왔습니다. 병아리들은 도무지 영 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우뚱거립니다. 오늘 엄마 닭은 누가 봐도 이상합니다. 숨바꼭질을 하자고 보채는 병아리들의 말도 못들은 척, 아직 배불리 모이를 먹은 것도 아니고, 목이 마르지도 않는데, 다짜고짜 병아리들을 연못가로 데리고 온 거랍니다. "어머, 웬일이세요? 이렇게 일찍이......" 연못 저 쪽에서 아기오리와 놀던 엄마오리가 미끄러지듯이 헤엄쳐 다가옵니다. 아기오리들 역시 작은 두발을 열심히 놀리며 엄마 뒤를 따라 옵니다. 엄마 닭은 그런 아기오리들을 한껏 부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머뭇머뭇 인사를 합니다. "저- 실은 부탁이 있어서요. 우리 애들에게 헤엄을 가르쳐주시면 안 될까요?"

"네? 병아리들에게 헤엄을요? " 갑자기 엄마오리가 그 큰 입을 쫙 벌려 웃기 시작합니다. 엄마 닭의 표정이 점점 굳어지는 것도 눈치를 못 채고 말이지요. "아니, 왜 웃어요? 어렵게 말씀드렸는데, 그냥 안 된다고 하면 될 일이지." 엄마 닭의 샐쭉해진 얼굴을 보면서 그제야 엄마오리는 팔을 내저으며 가까스로 웃음을 그칩니다. "아니, 아니, 그게 아니라 어쩌면 저랑 똑같은 생각을 하고 계셨나 해서요. 그러니까 우리 애들이 부러웠다 이 말씀이죠? 실은 댁의 애들을 볼 때마다 저도 부러웠거든요. 우리 애들은 아시다시피 헤엄이야 그 누구도 따라올 수가 없겠지만 달리기 실력이 영 아니거든요. 이 어미를 닮아 뒤뚱댈까봐 벌써부터 걱정이랍니다." "어머, 그래요?" 엄마 닭이 의외라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뜹니다. "그럼 우리 이렇게 하면 어떨까요? 하루 한 시간, 제가 댁의 애들에게 달리기를 가르칠 테니, 대신 우리 애들에게 헤엄치는 걸 가르쳐 주시는 걸루요." "어머! 그것 참 좋은 생각이네요. 하루 한 시간씩 과외공부라......오늘부터 당장 시작하죠 뭐.“ 엄마 닭과 오리 아줌마는 잘된 일이라며 오른 손을 들더니 딱! 소리가 나게 마주쳤어요. “과외공부라고?” 엄마들의 갑작스런 결정에 병아리들이랑 아기오리들이 어이가 없는지 저마다 눈알을 데굴데굴 굴리며, 삐악삐악, 꽥꽥, 삐악삐악, 꽥꽥 떠들고 난리들인데도 말이지요. "얘들아 열심히 배우도록 해라. 알았지? 그리고 너희들은 날 따라 오너라." 불안한 눈빛으로 쳐다보는 병아리들을 남겨둔 채, 엄마 닭은 아기오리들을 데리고 저 쪽 마당 한가운데로 걸어가 버립니다. "꽥꽥, 얘들아, 일단 물 속으로 들어와 볼래? 오리 아줌마가 목소리를 가다듬고 병아리들을 불렀지만 어느 누구도 선뜻 연못 속으로 발을 들여놓으려 하지 않습니다. "물을 겁내지 말고 두 발로 물을 뒤로 가볍게 차내는 거야. 알았지?....이렇게 자, 자, " 오리 아줌마는 안 되겠다 싶은지 자꾸만 뒤로 물러나는 병아리들 중 한 녀석을 연못 속으로 데려옵니다. "자아- 겁낼 필요 없어. 날 봐. 이렇게....."

“삐이악- 삐악삐악...... 살려줘요." 이게 웬일이에요? 오리 아줌마가 설명하느라 손을 놓는 순간 파다닥 거리며 날개로 두어 번 물방울을 퉁겨 올리던 병아리가 그대로 물 속으로 쑥 들어가 버린 것입니다. 오리 아줌마가 잽싸게 병아리를 낚아채 올렸지만 그새 물을 얼마나 먹었는지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가 한참 뒤에야 겨우겨우 깨어났습니다. 병아리들은 한층 더 겁먹은 표정들이 되어 연못에서 몇 발짝 뒤로 물러났습니다. 아무리 구슬려 봐도 헤엄은커녕, 이젠 아예 물 근처에 오려고도 하지 않는 겁니다.

 "휴우- 정말 이해할 수가 없네. 우리 애들보다 몸도 가벼운 녀석들이 왜 물 속으로 금방 가라앉아 버리는 거야." 고개를 갸우뚱갸우뚱 아무리 생각해봐도 도무지 이유를 알 수가 없습니다. 그래도 물에 뜨는 법이랑 헤엄치는 방법을 좀 더 설명해보긴 했지만, 도무지 시큰둥한 병아리들입니다. 오리아줌마는 슬슬 맥이 빠지기 시작했습니다. 한 편, 그 시간 꼬꼬 아줌마도 땀을 뻘뻘 흘리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날갯죽지로 부채를 만들어 활활 부치다가 다시 아기오리들 앞으로 갑니다. "그러니까 얘들아, 한 발을 떼서 땅에 떨어지기 바쁘게 다음 발을 옮겨 놓는 거야. 발을 금방금방 바꾸지 않으니까 엉덩이가 실룩거리는 거라구. 다시 한 번만 해보자. 알았지?" "네. 꽥 꽤액." "좋았어. 준비잇 땅! " 새끼오리들이 달리는 모습을 보며 꼬꼬 아줌마는 또 다시 목을 외로 꼬며 한심하다는 표정을 짓습니다. ‘대답은 잘 해놓고 막상 달리라고 하면 하나같이 띠뚱때뚱...... 걸음걸이가 어쩜 제 어미를 쏙 빼 닮았는지 원. 이렇게 말귀를 못 알아듣는 녀석들이 헤엄은 어떻게 배웠나 몰라.’ 병아리들이 생각납니다. ‘지금쯤 잘 배우고 있겠지. 워낙 똑똑하고 날렵한 애들이니까. 아무렴. 이 애들과는 다르지. 금방 배울 거야.‘ 멋지게 헤엄을 치는 병아리들을 상상하며 흐뭇한 미소를 머금고 있던 꼬꼬아줌마는 눈앞에 있는 아기오리들을 보자 저절로 한숨이 나옵니다. 아기오리들도 입을 쑥 내밀고 점점 엉덩이를 뒤로 뺍니다. “아이 더워. 언제 끝나는 거야? 달리기는 정말 싫어.” 다들 연못 쪽을 쳐다보며 꽥꽥거립니다. 한 시간이 그렇게 지났습니다. 꼬꼬 아줌마는 아기오리들을 데리고 연못으로 갑니다. 마침 오리 아줌마도 병아리들을 데리고 올라오는 중입니다. 땀을 뻘뻘 흘리는 꼬꼬 아줌마의 얼굴이 피곤해 보입니다. 오리 아줌마의 얼굴 역시 잔뜩 지쳐 보입니다. "삐악삐악" 어느새 병아리들이 마당을 가로질러 노란 개나리 울타리 쪽으로 종종 걸음으로 달려갑니다. "꽥꽥 꽥꽥꽥" 아기오리들 역시 어느새 뒤뚱거리며 달려가더니 한 마리씩 퐁당퐁당 연못 속으로 뛰어들고 있습니다. 꼬꼬 아줌마와 오리 아줌마가 마주보며 멋쩍게 웃습니다. "우리가 지나치게 욕심을 부렸나 봐요. 꽥꽥" "글쎄 그랬나 봐요. 꼭꼭 꼬꼬꼭" 햇살이 병아리와 아기오리의 솜털만큼이나 부드러운 봄날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