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신현신 동시집 '우리 집 콩쥐'중에서
알면서도
개나리 꽃잎 같은 별이
피어나는 밤
낮에 쓰다 구겨버린 편지가
머리맡에 날아와 앉는다.
-애써 마음먹고 쓴 편지잖아.
날아와 앉은 편지는
방아깨비처럼
높은 소리를 내며
온 방 안을 맴돌다
내 마음 위로 날아와
이 말을 새겨 놓는다.
-알잖아. 먼저 사과하는 게
좋은 거란 걸. 다 알면서,
다 알면서도.
-신현신 동시집 ‘우리 집 콩쥐’에서
*나는 시집을 들면 이상한 버릇이 있다. 처음부터 읽지 않고 맨 마지막부터 읽는다. 일반적으로 완성도가 높은 시를 앞쪽에 많이 싣기 때문에 뒤로 갈수록 처지면 끝내 시집 한 권 다 읽어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또 해설이 있는 시집이라면 해설을 먼저 읽는다. 또 해설자가 그 시인과 어떤 관계가 있는 사람일까도 짚어본다. 해설을 읽으면서 주례사처럼 좋은 점만 얘기해놓은 시집은 처음부터 흥미를 잃어버린다. 시집을 읽는 맛 중에 하나가 시인의 상상력 범위를 독자가 헤아려보는 것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 시집에서만이라도 말이다. 그리고 내 손에 들어온 시집은 여러 번 읽어본다. 읽을 때마다 새로운 맛을 느낀다. 몇 달 전에 읽은 신현신의 <우리 집 콩쥐>를 어제 새로 읽었다.
이 번엔 좀 어색한 부분이 어디 있을까 생각하며 읽었다. 제목에서 <가끔씩은>, <너희들이 잠들면>, <너희들이 어른이 될 때쯤>이라는 제목이 거슬린다. 본문 중에 <아카시아>도 거슬린다. <가끔씩>에서 '씩'을 빼면 어떤 행위가 종종 잦다는 의미가 희석될까 붙인 것이다. 그런데 본문에는 <가끔>으로 썼다. 다행이다.
<너희들~>에서 ‘들’은 군더더기다 산문이라면 달리 설명하겠지만 시니까 군더더기라 하겠다. 몇 번 읽어보면 나중엔 시를 읽는 게 아니라 시인을 읽는다. 시는 시인의 분신이니까. 자식을 세상에 내 놓는 부모심정으로 꼼꼼히 살피고 내보내야겠다. 타산지석으로 삼는다.
서두가 길었다. 3연에서
<방아깨비처럼
높은 소리를 내며>
에서 높은 소리란 무엇일까? 음악에서 말하는 소리 값인가? 아니면 어떤 기준에 반하는 상대적인 소린가? 아마 후자로 썼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그렇다면 풀벌레 중에서 날갯짓 소리가 큰 다른 곤충을 썼다면 의미가 다르겠지만 이름이 주는 느낌과 다르게 방아깨비는 행동이 굼뜨고 얌전한 곤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