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층암 모과나무기둥에 기대어서서 다시 읽는 '명작' 화엄사
지금의 아이들도 그런 시험을 보는지 모르겠다. 다음중 화엄사에 있는 보물이 아닌 것은? 그렇게 줄줄이 암기했던 화엄사의 보물들은 교과서의 흑백사진 속에서는 매력적이지 않았고, 줄지어 수학여행을 갔던 화엄사 또한 각별한 기억으로 남지는 않았다. 화엄사는 내게 오랫동안 '교과서' 같은 절이었다. 그리 이름나지 않은 절이며 탑이며 당간을 보겠다고 꾸끔스럽게 구석구석을 찾아 다니면서도, 다시 펴서 읽을 맘이 내키지 않는 교과서처럼 화엄사로는 영 발길이 향하지 않았다.
그러다 어느해 우연히 이 절을 다시 찾은 뒤로 화엄사는 내게 '불멸의 명작'이 되었다. 화엄사는 언제 읽어도 새로운 감동이 있는 고전이다. 어느 계절 어떤 날씨 속에 만나도 그 아름다움의 깊이를 다 헤아리기 어렵다. 이 오래된 절에 함부로 돈을 들여 낯색을 바꾸어 버리는 무지몽매한 불사들이 행해지지 않은 것이 변치 않은 감동의 가장 큰 원인일 터이다.

화엄사는 한 번 가고 말 절이 아니다. 어느날은 그저 각황전 앞을 맴돌며 그 장한 아름다움에 함뿍 빠졌다가 옆문을 열고 가만 들여다본 각황전 안에 도열한 거대한 목조 기둥들에, 그 맨 첫 번째 기둥의 가슴 저르르하게 휘어진 모양새에 감탄에 감탄을 거듭할 일이다. 또 어느 날은 효대에 올라 4사자3층석탑 앞을 뱅뱅 돌아 보거나 먼 데 섬진강에 눈대 보는 것만으로도 족한 나들이가 될 것이니.
내가 간 날은 마침 대웅전 뒤로 멀리 보이는 노고단 봉우리에 흰 눈이 쌓였다. 그 아래 뭉게구름처럼 붉은물 노란물 피어오르는 단풍이 어우러졌으니 대웅전에서 영전으로 원통전으로 이어져 나가 각황전에 가 닿는 그 곡선과 곡선들의 멋드러진 가락에 한껏 취해 보다 발길을 돌린다 해도 아쉬울 게 없을 성 부르다.

어딜 가든 사람들이 그만 돌아서는 지점을 넘어 선 곳엔 '뒤안의 한적함'이 있다. 그저 앞만 보고 가는 길이 아니라면 여기서 잠시 멈칫거려도 좋다. 대웅전 뒤편엔 엄청나게 길다란 구시가 무심히 구석에 밀어둔 양 자리해 있다. 소탈하나 흔치 않은 크기의 구시가 "우리 화엄사에서는 거저 이쯤해서는 보물도 아닙네다" 하는듯 수더분하게 앉아 있는 것을 들여다본다. 등 뒤에 감춘 보물을 들여다 본 양 흐뭇하다.
구층암에 들다
'구층암 가는 길'이라는 표지를 따라 열린 담장을 따라 나간다. 여기서부터 500m 거리에 구층암이 있다. 화엄사 암자 가운데 옛 모습을 가장 잘 간직하고 있는 암자다.
구층암 드는 오솔길 초입엔 단풍이 활활 타오르고 있다. 한 잎 한 잎 공들여 물들인 것 같다. 그 아래 든 사람의 얼굴도 붉고 마음에도 홍조가 스미는 양 특별히 고운 단풍이다.
"뭐 볼 것 있다고 이리 가는교?" 묻는 사람은 경상도말씨고 "아주 기맥힌 것이 있어라우!" 하고 대답하는 이는 전라도 말씨.
그 '기맥힌 것'이라 함은 다름 아닌 구층암 기둥이다. 마치맞게 배부른 듯 자연스러운 곡선의 배흘림기둥에서 우리 건축의 아름다움을 말하는 건 익히 들어온 바다. 하지만 저 기둥 좀 보아! 모과나무를 손보지 않고 천연 그대로 기둥으로 앉혔다.

눈밝은 이라면 그 뜨락에 있는 모과나무가 그 기둥의 모양대로 펄펄하게 살아서 지금 막 시퍼런 가을하늘 아래 노랗게 익어가는 모과를 점점이 뿌려놓듯 던져놓듯 매달고 있음을 알아볼 것이다. 생명 있는 나무는 열매를 달고 있고 있고, 이미 마른 나무는 팔을 펴서 지붕을 펼쳐내고 발 아래로는 주춧돌 너머 깊은 땅속에 뿌리라도 내린 양 서 있다. 구층암 모과나무엔 삶과 죽음이 따로 있지 않다.
누구인가. 백년은 넘은직한 큰 모과나무 둥치를 앞에 두고 재고 헤아리고 백번 천번 그 마음에 세워 보다 마침내는 손끝 하나 댄 자욱 없이 버쩍 세워 버린 그 통큰 사람은. "휘어진 나무는 휘어진 대로, 북사면에서 자란 나무는 건물의 북쪽에, 남사면에서 따뜻한 햇빛을 받고 자란 나무는 건물 남쪽에 사용했다"는, 옛 목수들의 나무 대접하는 법을 오롯이 지켜낸 그이는.
구층암 마루 아래 아마 스님의 것인 듯 털신 한 켤레 흰고무신 한 켤레 놓여 있다. 기척을 죽이고 옆으로 돌아가다 벽에다 매달아낸 작은 시렁을 본다. 시렁에 얹힌 것은 차주전자와 찻잔 그리고 모과 한 알. 부러 딴 것은 아닐 성 부르고 저 혼자 떨어진 것을 거기 가만 올려 둔 것일 터. 바람 불면 고요한 승방에 모과향 스며들겠다.
'경상도와 전라도일행'은 구층암에 입을 쩍 벌리고 벌리다가 물 한모금 마시고 이제 나가려는 참인 것 같다. 절에 들었으니 나도 '보시'하는 마음으로 그들을 붙잡아 세운다. "저어~기 보고 가세요'
작은 불상 1000구를 봉안한 천불전 처마 아래엔 거북이 타고 가는 토끼상이 있다. 유독 이 암자에만 있는 것은 아니나 구층암 천불전 토끼와 거북이는 민화 속에서 튀어나온 듯 그 유순하고 단순한 모양에 유난히 정이 간다.
내게 붙들린 일행은 마치 내가 그걸 거기 앉혀 두기라도 한 양 고마워 한다. 그 옆에 여의주를 문 용을 향해 "차암 좋게 생겼다"는 칭찬도 아끼지 않는다. 구층암 대방채 처마 아래에도 하나도 무섭지 않게 생긴 사자며 코끼리상들이 들어 앉아 있어 숨은 그림 찾아내는 듯한 즐거움을 더해 준다.
왁자한 대웅전 앞마당에 비해 구층암까지 닿는 발길은 뜸하다. 암자란 본디 대중을 향해 열린 공간이라기보다는 치열한 정진과 수행을 위한 개인적 공간이었기에 이렇듯 개성적인 파격의 건축이 가능했을 터. 세속적 미의 기준에 연연하지 않고 부박한 세상의 흐름을 벗어나 버린 그 결단이 도리어 이처럼 천둥번개치는 듯 충격적인 아름다움을 빚어낸 것이리라.

그 마루에 오래 앉아 모과나무 오래된 기둥을 눈 시릴 만큼 바라본다. 뒤틀린 기둥과 손대지 않은 생생한 결과 옹이들... 굴곡 많았을 한 생애의 자취 앞에 서고 보면 내 삶의 내력은 너무나 평탄한 것이었음을 문득 깨닫게 된다. 거기 구층암 마루에 앉아 모과 하나 투둑 떨어지기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일도 지루하진 않을 일.
효대에 오르다
이제 그만 돌아나가다 다시 각황전 앞을 지나 왼편으로 동백숲 사이에 난 108계단을 올라간다. 나의 108번뇌는 무엇이었던가... 108개의 번뇌를 채 명명하기 전에 계단을 다 오른다. 효대(孝臺)라 불리는 언덕이다.
자장율사가 이 절을 세운 연기조사의 효성을 기려서 만들었다는 불사리 공양탑이라는 4사자3층석탑(국보35호)이 있다. 그 효성을 기린 시를 남긴 이는 대각국사였다.
적멸당 앞에는 훌륭한 경치도 많고/ 길상봉 꼭대기엔 티끝 한 점 없어라. 종일토록 방황하며 지난 일을 생각하는데/ 저물녘 자비의 바람이 효대에서 이네. 寂滅堂前多勝景 吉祥峰上絶纖埃 彷徨盡日思前事 簿暮悲風起孝臺
단풍물든 가을 골짜기에서 불어오는 바람 속에 4사자의 얼굴을 바라본다. 사자는 저마다 표정이 다르다 "히-! 하고 웃는 건 희(喜)고 입이 튀어 나온 건 노(怒)한 모습이에요. 눈이 처지고 입도 삐뚜름이 처진 건 슬픈(哀) 얼굴이고 화안한 건 락(樂)이고..." 화엄사 진조스님이 설명하는 4사자의 얼굴이다.
 슬프거나 혹은 즐겁거나...
희노애락의 얼굴을 하고 있는 암수 두 쌍의 4사자상을 사방에 두고 한가운데는 머리 위에 연꽃을 이고 있는 서 있는 승상(僧像)이 있다. 그가 이 절을 창건한 연기조사의 어머니인 비구니라 한다. 그이의 발 아래 놓인 세계는 천상 세계. 하늘옷자락을 날리면서 연꽃위에 앉아 악기를 연주하거나 혹은 춤을 추거나 공양을 하고 있는 천인(天人)들의 세계다.
"희노애락이 있는 인간세상은 거듭되는 수행으로 부처에 이를 수 있기에 천상의 세계보다 가치로운 세계입니다. 기쁜 일 즐거운 일밖에 없는 하늘세상보다 위에 둔 건 그런 의미이지요."
자고 나서 웃을 일만 계속되는 세상은 한없이 계속되는 여름햇빛처럼 지루한 것일까? 아마도 그럴 것이다. 폭풍우 물러간 날, 장대비 그친 순간에 느끼는 평화는 그 세상에 없을 것이다.
석탑 바로 앞에 있는 석등 아래쪽에 꿇어앉아 있는 승상은 효성이 지극한 연기조사.
1979년 황룡사지 발굴조사에서 발견된 '신라백지묵서 대방광불화엄경' 발문에 의하면 '754년(경덕왕 13) 황룡사 연기(緣起)조사의 발원으로 화엄사를 건립하기 시작하여 이듬해 완성했다는 기록이 있다 하니 저이는 1300년쯤을 거슬러 올라간 그 시절의 그 사람.
석등을 머리에 얹고 어머니에게 차(茶)를 올리고 있는 연기조사의 모습은 사뭇 경건하다. 왼쪽 무릅을 세우고 왼손으로 차를 올리는 그 자태는 가장 높은 것을 향한 가장 낮은 자세라 한다. "어머니라는 인간적인 정을 기리는 게 아니라 그 은혜를 기리는 공양입니다" 속가의 인연에서 벗어난 지 오래인 진조스님이 말하는 연기조사의 효성의 의미다.
천년의 세월을 마주보고 있는 어머니와 아들. 그 너머 멀리 섬진강 물줄기 희게 반짝인다.
세월 가도 빛바래지 않는 보물들이 있는 곳. 아직 그 보물지도 속의 보물들을, 그 깊은 속내를 다 만나지 못하였다. 남인희 기자 namu@jeonlad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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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 여행지> 지리산과 섬진강이 한눈에-구례 오산 내 마음속의 천은사-구례 천은사
<먹을거리> 해성식당(산채정식) 평화식당(육회비빔밥) 별천지가든 통나무집(참게장) 그외 화엄사 아래 산채정식을 먹을 수 있는 집들은 '그옛날 산채식당'(061-782-4439) '백화식당'(782-4033) 등
<가는 길> 승용차 광주방면에서 오는 경우 광주> 호남고속도로>곡성 IC> 곡성읍>17번 국도> 압록>구례구역>냉천삼거리 좌회전>18번 국도> 마광삼거리 직진 > 화엄사 서울방면에서 오는 경우 서울> 대전> 전주> 남원, 춘향터널 지나 우측 순천행 19번 산업국도 > 밤재터널>구례 IC에서 19번 국도로 진입하여 냉천삼거리에서 좌회전. 이하 같음 부산방면에서 오는 경우 부산> 남해고속도로> 하동 > 19번 국도> 하동읍>냉천 삼거리에서 우회전. 이하 같음 대중교통 버스:구례까지는 광주, 서울, 부산, 순천, 전주 등에서 출발하는 시외버스나 고속버스 이용 구례에서 화엄사로 다니는 군내버스는 오전6시30분부터 오후8시40분까지 36회 운행. 구례시외버스공용정류장 전화 061 -782-3941. 열차:전라선 통과 지역에서는 구례구역까지 열차를 이용하면 편리하다. 서울역에서 출발하는 전라선 열차가 07:35부터 23:50까지 하루 13회 운행. 구례구역 전화 061-782-778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