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4월 27일 목요일
< 날마다 한 가지씩은 새롭게! >
그 동안 노루실이 춥고 쓸쓸해서 참 힘들었다.
난생 처음으로 가족과 떨어져서 혼자 지내려니 외로웠다.
내가 왜 이런 고생을 스스로 사서 하나 의문도 많이 떠올랐다.
그러다 보니 자다가도 잠이 깨어 뒤척거리다가 잘 때가 많았다.
그러나 나는 아내 말고는 아무에게도 이런 마음을 털어 놓지 않았고
시골에서는 일부러 전화도 자제했다.
이제 시골 생활을 한 지 두 달이 가까워지니 적응이 많이 되었다.
밤에도 잘 자고 날씨도 많이 풀려서 춥지 않으니 살만 하다.
날마다 기차 시간 맞추느라 허겁지겁 역으로 달려가느라 마음의 여유도
없었는데 이젠 여러 기차 시간을 줄줄 외울 정도라 기차 타는 일도
그리 부담스럽지 않다.
어젯밤에는 소쩍새 소리를 들으며 잠이 들었다.
일찍 잔 탓인지 새벽에 눈이 떠졌는데 소쩍새가 아직도 울고 있었다.
저 녀석은 무엇 때문에 저리 청승맞게 밤이 새도록 울고 있을까?
짝을 구하는가? 아니면 자기 영역을 지키느라 저러는 건가?
소쩍새 소리 때문에 잠이 깨어 이 생각 저 생각을 하다가
잠이 더 오지 않을 것 같아서 문을 열고 마당으로 나갔다.
안개가 자욱하게 끼어 앞산이 보이지 않았다.
안개가 끼니 분위기는 더 좋았다. 그래, 오늘 아침은 노루실에서
안개 선물을 받는구나.
대숲에서는 휘파람새가 맑은 소리로 울고 있었다.

진이는 개집이 있는데도 밤에 풀어 놓으면 거실 앞에서 보초를 서듯이
기다리고 있다. 아마 내가 식사 때마다 뭐라도 주니까 또 무엇을 줄줄
알고 그러는 것 같은데 하여간 충성심은 대단한 놈이다. 내가 밖으로
나가면 하인처럼 졸졸 따라다닌다. 어찌나 끈질기게 따라붙는지 귀찮을
정도다.
요새는 제법 잘 짖어서 진이 덕분에 밤에도 마음 턱 놓고 잔다.




대문 밖의 화단에 채송화 싹이 돋아났는지 살펴보았지만 아직 싹은
보이지 않았다.
그 대신 명아주 싹이 촘촘하게 돋아나 있었다.
나는 명아주 싹을 본 순간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옳지. 날마다 뭔가 새로운 일을 한 가지씩 하는 거야. 매일 부산으로
허둥지둥 바쁘게 출퇴근이나 하려고 여기 들어온 건 아니잖아.'
그래서 오늘은 명아주를 뜯어서 나물을 하고, 민들레꽃과 보리뱅이,
머위, 쑥 등을 넣어서 밥을 해보기로 했다.
아마 집에서라면 난리가 날 거다. 후후.
내가 평소에 잡곡만 많이 넣어도 눈쌀을 찌푸리는 아이들이니까.
여긴 나만의 세상이니 내가 뭘해도 간섭할 사람이 없지.
오늘은 명아주 나물, 내일은 메꽃 나물, 모레는 민들레잎 나물,
글피는 쑥차를 만들어 마셔야지. 늘 똑같은 밥, 똑같은 나물만 먹지
말고 이렇게 날마다 한 가지 정도는 새롭게 살아야겠다.
야생초를 넣고 밥을 해 보았더니 생각보다 밥이 찰지고 맛이 있었다.
쌀은 '시와 동화'에서 원고료로 받은 철원 쌀이라서 원래 밥맛이
좋은데, 야생초까지 넣어서 지었더니 더욱 감칠 맛이 난다.
이 밥은 나만 만들어 먹는 세상에서 하나 뿐인 밥이다.


( 광대나물 )


아침을 먹고 어제 구포 장에서 사온 호박을 심기로 했다.
밀양 종묘상에 가도 단호박 모종은 많지만 일반 호박 모종은 구하기가
힘들었다. 집집마다 씨로 싹을 틔우니까 그런 모양인데 호박도 씨를
심어서는 잘 크지 않았다.
먼저 밭으로 가서 큰 구덩이를 만들었다. 그런 다음에 집 뒤에 썩여둔
거름을 갖다 붓고 호박 모종을 한 구덩이에 두 개씩 심었다.
호박을 심고 오면서 언뜻 보니 옮겨 심은 보리수 나무에서 새순이 나고
있었다. 아, 다행히 살았구나! 죽지 않고 살아난 나무를 보니 참
고마웠다. 나도 부산에서 노루실에 옮겨 심은 나무인데 잘 버텼으니
저 나무와 똑같구나. 우리 둘다 노루실에서 뿌리를 튼튼하게 내리고
잘 살자.

시계를 보니 10시 30분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화명동 가는 11시12분 차를 타려면 노루실에서 10시 40분 전에는
나가야 한다. 급하게 세수와 면도를 하고 옷을 입은 뒤에 대문을
잠그고 차에 올랐다.
오늘은 어제와 다른 일을 많이 해서 부산 가는 발걸음이 무척
가벼웠다. (*)
< 마당에서 벌써 씨를 만들어 날리는 하얀 민들레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