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집

126편 *** 진이와 보니

凡草 2006. 5. 17. 18:02

  << 진이와 보니 >>
     2006년 5월 17일  구름 많음
 지난 주 목요일에 해운대로 갔더니 아내가 보니를 더 이상 못 키우겠다고
하였다. 똥과 오줌을 가리지 못해서 아무 데나 누고 천방지축으로 날뛴다는
것이었다. 어느 정도일까 궁금했는데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서 뒤로 넘어갈 
뻔 했다.
 아, 글쎄 보니가 거실 여기 저기에 오줌을 싸 놓은 것이었다.
 그냥 오줌을 싼 것이 아니라 커다란 오줌 웅덩이를 네 개나 만들어 놓았다.
나는 휴지로 오줌을 닦느라고 애를 먹었다. 똥도 요 며칠은 계속 설사를 
하는데 화장실에 안 누고 거실 구석에 누어서 치우기가 불편했다.
 똥과 오줌을 아무 데나 누고도 전혀 미안한 기색없이 겅중겅중 뛰어다니는
녀석을 보니 기가 막혔다.
 "여보, 걱정 마. 당장에라도 시골로 데리고 와. 시골에서는 어디다 눠도 
 상관 없으니까."
 내가 큰 소리를 치자 아내는 이번 주말에 데리고 가겠다고 하였다.
 여태까지는 철망으로 막아 놓고 키웠는데 점점 덩치가 커져서 철망을 펄쩍
뛰어 넘는다는 것이다.




그랬는데 아들과 아내가 지난 금요일에 정말 보니를 노루실로 데리고 왔다. 보니가 오니 진이는 처음에는 약간 경계심을 품었지만 금방 친해져서 잘 어울려 놀았다. 나도 그 동안 진이만 묶어 놓고 하루 종일 집을 비우기가 미안했는데 이젠 보니가 왔으니 조금 마음이 놓인다. 보니는 먹이를 많이 먹어서 그런지 설사를 계속 해서 무안 가축병원에 가서 설사약을 사다 먹였다.

아내와 나는 진이와 보니를 집안에서 자유롭게 뛰어 놀도록 하기 위해 대문 주위를 대나무로 일일이 막았다. 철물점에 가서 철망과 케이블 타이를 사다 하루 종일 작업을 했는데 막상 다 해 놓고 난 뒤에도 진이가 담벼락 옆을 아슬아슬하게 타고 보란 듯이 밖으로 나와서 그만 맥이 빠졌다. "그냥 묶어 놓고 키워요. 다른 집 개들은 짧은 줄로 묶여 있는데 거기에 비하면 우리 개들은 호강이지. 유별나게 풀어 놓고 키우려고 그래요?" 아내는 내가 우겨서 일한 표가 나지 않는지 볼멘 소리를 했다. 내 생각에는 두 마리를 줄로 묶어 놓으면 줄이 엉켜서 불편할 것 같았다. 줄이 엉키지 않으려면 적당한 거리를 두고 떼어 놓아야 하는데 그러면 서로 장난도 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대나무는 많으니까 대나무를 엮어서 사각 울타리를 만들려고 했는데, 아내가 차라리 대문 주위를 다 막으면 되겠다고 해서 둘이 애써 작업을 했던 것이다. 나는 진이가 빠져 나온 틈을 다시 보완해서 줄로 묶어 두지 않고 집안에서 마음대로 뛰놀게 해줄 생각이다. 월요일부터 오늘까지는 바빠서 진이만 줄로 묶어 두고 나왔는데 저녁에 돌아가 보니 두 마리다 잘 있었다. 보니는 몸집이 작아서 대문 틈으로 얼마든지 빠져 나올 수 있는데 아직 어리니까 저혼자는 대문 밖으로 나오지 않는 모양이다. 진이가 밖으로 나와야 보니도 따라 나오니 내가 없을 때는 진이를 묶어 두는 게 옳을 것 같다.



지금 우리 가족이 키우는 개는 모두 세 마리이다. 해운대에서 키우는 말티즈 '하늬'가 있고, 노루실에는 시베리안 허스키 '보니'와 진도개 '진이'가 있다. 나는 해운대에 있는 '하늬'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 놈은 어찌나 영악한지 처음 오는 손님이라도 먹을 것만 주면 착 안겨붙는다. 나는 그걸 보고 어이가 없었다. 개가 진이처럼 충성심이 있어야지 저렇게 아무한테나 달라붙으면 어떡하나? 우리 애들은 개가 귀엽기만 하면 되지 너무 많은 것을 원한다고 하지만 난 믿음이 가지 않는다. 진이는 진도개답게 충성심이 강해서 마음에 든다. 이젠 낯선 사람이 오면 죽자고 짖는다. 오늘 오전에도 전기 계량기를 교체하려고 한전에서 왔는데 작업이 끝나고 돌아갈 때까지 짖었다. 내가 한전 직원에게 미안해서 그만 짖으라고 말려도 소용이 없었다. 하늬처럼 굴면 저 살기야 편하겠지. 하지만 비록 저 살기는 힘들더라도 사람도 진이처럼 살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진이는 밤에도 내 방문 앞에서 타일 바닥에 배를 깔고 자고 내가 밖으로 나가기만 하면 한사코 따라 다닌다. 나는 그런 진이가 내게 먹을 것을 얻어 먹기 위해 따라다닌다기보다는 내가 혹시나 어떻게 될까 봐 지켜 주기 위해 그럴 거라고 생각한다.



오늘 출근하기 전에 지켜 보니 진이가 보니를 제법 잘 데리고 놀고 어떤 때는 제가 먹을 것을 양보하기도 해서 큰 언니처럼 참 의젓하게 보였다. 사람도 자기 것만 챙기고 아랫 사람을 돌봐주지 않는다면 개보다도 못하다고 봐야 할 것이다. 나는 진이를 키우면서 강한 충성심을 배우고 의리와 아량까지 덤으로 배운다. (*)

(내가 출퇴근할 때 이용하는 밀양 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