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창작

소반 허명남의 <도깨비를 찾아서 >1편

凡草 2007. 7. 3. 14:12
허명남의 도깨비를 찾아서 <1> 전래 스토리텔링 대표 주인공 '도깨비'
어느샌가 우리곁에서 사라진 무한대의 상상력을 끄집어내다

 
  참도깨비 이미지. 출처=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www.culturecontent.com)의 '한국의 도깨비' 콘텐츠 중.
저는 팔 년 동안 동화를 쓰고 있습니다. 판타지 동화에 흠뻑 빠져 재미와 감동을 고루 갖춘 판타지 동화를 쓰려고 끙끙대고 있지요. 판타지 동화는 현실세계와 비현실세계를 오가며 현실감 있게 써야 하는 건데, 비현실세계를 현실감 있게 창조해 내기가 그리 쉬운 일이겠습니까? 하지만 어린이들의 성장과정에서 꼭 필요한 문학 장르가 판타지 동화이기 때문에 포기할 수 없는 일이지요.

언제였던가, 검은 커피를 한약 들이키듯 몇 잔 째 마시며 컴퓨터 앞에서 머리를 쥐어짜고 있을 때였답니다. 화면 속에서 튀어나왔는지 천정에서 떨어졌는지 모르겠지만 느닷없이 어떤 남정네가 제 코 앞에 나타났어요. 깜짝 놀라 커피잔을 떨어뜨리는 저에게 "야, 바보 동화 작가! 히힛"하고 탤런트 이덕화 목소리처럼 꺽꺽거리는 쉰 목소리로 저를 놀렸어요. 생김새는 어떠하냐고요? 그건 말 안 할래요. 우리들이랑 아주 비슷하거든요.

하지만 그 도깨비 웃는 모습이 너무나 천진해서 무서움은 사라지고 놀림을 당했다는 생각에 화가 났어요. "야, 넌 누구냐? 머저리 같이 생겨가지고는" 하며 눈을 부라렸어요.

"난 도깨비야! 판타지 동화를 쓰지 못해 끙끙거리지 말고 나를 등장시켜서 써봐. 바보야!" "뭐? 도깨비? 내가 왜 도깨비 이야기를 안 썼겠어. 몇 편 썼지만 사람들이 '도깨비 씨나락 까먹는 소리'라며 시시하게 생각해. 요즘 사람들은 도깨비를 믿지 않는단 말야."

저는 사람들이 좋아하지도 않는 캐릭터가 나타나 잘 난 체 하는 게 가소로웠어요. 컴퓨터를 끄면 사라지려나 싶어 얼른 종료를 클릭했어요. 그래도 도깨비는 사라지지 않고 자꾸만 놀리는 겁니다.

"재미있게 못 쓰니 사람들이 안 좋아하지. 이 바보!"

저는 도도한 작가의 자존심을 무자비하게 깔아뭉개는 도깨비 녀석이 밉살스러웠지만 '저 녀석이 무얼 알고 있을 거야. 옛이야기 속에서 늘 착한 사람에게 복을 가져다주었는데, 나도 착한 척해야 이야깃거리라도 가르쳐 줄 테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 그럼 네 이야기를 써 줄 테니 재미있는 이야기나 한 자락 해주고 가. 응!" 하고 애교를 떨었어요. 그제야 도깨비도 히죽이 웃으며 "책 속에서 기다릴 게. 책 속으로 날 찾아와" 하는 겁니다. "어떤 책이야?" 하고 묻는 순간 혀를 쏙 내밀고는 사라져 버렸답니다.

그 때부터 옛 이야기책, 도깨비 관련 서적과 논문, 신화와 전설책 등과 도깨비가 등장하는 근래의 동화책까지 다 뒤지며 그 도깨비를 찾았답니다. 책갈피 속에서 '뿅'하고 나타날 줄 알았지요. 그러나 그 도깨비는 저를 만나주지 않았고, 관련 책들을 탐독하다 보니 겨우 그 도깨비 말이 조금씩 이해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 맞아! 우리의 도깨비 이야기가 살아있는 동화를 써서 사라져버린 도깨비를 살려내라는 말인 게야!'

예로부터 판타지동화는 우리 민중들의 입에서 입으로 엮어졌습니다. 인터넷과 영상 문화가 발달한 요즘 부각되고 있는 스토리텔링이라는 방식이 옛날부터 있었다는 거지요. 그렇게 전해오는 옛 이야기들은 입말이기 때문에 군더더기가 없고 사건 전개에 힘이 있어서 매우 재미있지요. 99%가 판타지 동화였고, 가장 큰 수혜자는 어린이들이었습니다. 어린이들을 위한 조상들의 과학적 영감이 새삼 놀랍습니다.

옛 이야기가 오늘날 스토리텔링과 다른 점이 있다면 어린이들이 머릿속으로 상상하여 장면을 스스로 그려낸다는 것이지요. 어쩌면 머릿속으로 그리는 이야기 장면이 더 훌륭한 영상일지도 모릅니다. 머릿속 화면은 배경과 음악과 빛깔이 무한대이니까요.

우리 조상들이 스토리텔링으로 엮어낸 판타지 동화 속 대표 주인공이 바로 도깨비였습니다. 그럼 제가 책속에서 만난 도깨비 이야기를 해드리고 싶습니다. 다음 편을 기다려 주실거죠?


〈약력〉 1958년 경북 영천 출생. 2003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동화 당선. 2005년 MBC 창작동화 대상 수상. 부경대 대학원 국문학과에서 고전문학 공부. 장편동화 '놋그릇과 고려범 납닥발이' 등.



입력: 2007.07.01 2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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