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5월 9일 금요일 맑음
이번 주말에는 여행을 다녀올 곳이 있어서
평일에 잠시 노루실을 다녀오기로 했다.
지난 주에는 산청 약초축제에 다녀오느라
노루실을 못갔는데 이번 주까지 못 가면 2주를
못가는 셈이라 궁금하였다.
한 주라도 노루실에 가서 기를 받고 오지 않으면
충전이 안 되어 머리가 멍해지는 느낌이 든다.
5월7일 저녁에 수업을 마치고 화명동에서 기차를 탔다.
이번에는 처음으로 승용차를 갖고 가지 않고 기차와
버스 혹은 택시를 이용해 보기로 했다.
내 차 없이 기차나 택시를 타고 노루실에 가는 것도
색다른 경험이다.
밀양역에 내려 택시를 타고 노루실에 도착하니 땅거미가
스믈스믈 내려앉고 있었다.
급히 쌀을 씻어 저녁을 했다. 밤이라 약초밥을 할 시간이
없어서 그냥 콩과 해바라기 씨앗을 넣어 밥을 했다.
약초를 넣지는 않아도 그냥 맨밥은 하지 않는다.
반찬은 잠시 마당으로 나가 민들레잎과 왕고들빼기 잎을
따왔다. 그거면 충분하다.
밥이 다 되자 냉장고에서 김치와 치즈를 꺼내어 밥을 먹기
시작했다.
나는 어떤 반찬이라도 잘 먹기 때문에 혼자 밥해 먹는
것은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식사는 그야말로 쉽게 해결할
수 있다. 민들레와 왕고들빼기를 막장에 찍어 먹고 간간이
치즈를 얹어서 먹었다. 그래도 꿀맛이다.
한창 절정인 나무 수국
노루실에 가면 아파트에서 할 수 없는 것이 또 한 가지
있다.
이를 닦고 나서 쑥찜을 하는 것이다.
치질을 예방하기 위해 하는 것인데 변기통에 못 쓰는 접시를
집어 넣고 쑥을 야구공만큼 뭉쳐서 불을 붙이면 손쉽게
좌훈을 할 수 있다.
쑥 연기가 온 집안에 자욱하게 피어나는데 여긴 아무도
없는 곳이라 누가 뭐라고 할 사람이 없다. 옆집은 박씨 문중
제실이라 사람이 살지 않고, 한쪽은 대밭이라 꼭 야단을 친다면
대나무들이 할 텐데 그들도 쑥향기를 좋아하는지 별 말이 없다.
좌훈이 끝나자 책을 좀 읽다가 잠이 들었다.
까만 커튼이 걷히고 아침이 되었다.
마당에 나가보니 2주 가까이 안 와서 그런지 잡초가 엉망으로
돋아나 있었다. 사람이 안 사는 폐허 같다.
내가 안 온 사이에 정자를 지을 기초 공사를 해 놓았다.
기둥을 세울 네 귀퉁이에 틀을 만들어 놓고 시멘트를 부어
놓았다. 아마 저게 다 굳으면 그 위에 나무 기둥을 세우고
정자를 지을 모양이다.
그 동안 통 진전이 없어서 궁금했는데 이제 일을 시작할
모양이다. 정자가 언제 완성될 것인지 무척 기대가 된다.
정자가 완성되는 날에는 노루실에 오는 즐거움이 또 하나
늘어날 것이다.
정자에서 차도 마시고 술도 마시고 글도 쓰고 낮잠도 쿨쿨
자봐야지.
정자 기초 작업한 모습
어제 들어오면서 갖고 온 초롱꽃 모종을 화단에 심었다.
아피오스와 마 종자도 여기 저기 심었다.
여태 많이 심어서 다 심은 줄 알았는데 아직도 심을 게 있다.
나는 늘 심다가 시간을 다 보낼 것 같다.
하여간 심는 그 자체가 즐겁다.
싹이 안 나더라도 심는 일은 행복하다.
더러는 쥐가 물어가거나 썩기도 하겠지만
그 중에서 하나라도 싹이 나면 심은 보람이 있다.
노루실에 없었던 것이 새로 태어난 것이니까.
심는 행위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과 같다.
신의 천지창조와 비교하기는 뭣하지만
나도 신이 되어 노루실에 천지창조를 하는 기분이다.
아침은 어제 저녁보다 더 풍성하게 먹었다.
밭에 나가보니 셀러리, 박하, 쑥갓, 상추가 제법 많이 자라서
이제는 뜯어 먹을만 했다.
돌나물과 삼백초까지 뜯어와서 야생초 쌈으로
아침을 맛있게 먹었다.
풍성한 야생초 쌈
아침을 먹고 밭으로 가서 지난 번에 심은 고추 모종 지주대를세웠다.
대나무를 밭에 찔러 넣고 망치로 박았다. 잡초도 조금 뽑았다.
무화과를 세 그루나 심어 놓았는데 오늘 보니 싹이 하나도 나지 않았다.
작년에는 싹이 났었는데 뭐가 잘못되었는지 죽어버렸다.
장마철이 되면 새로 2-3년생 무화과를 구해다 심어야겠다.
지구 온난화가 계속되면 감이나 매실보다는 무화과가 아열대성 기후에 더 맞다.
그래서 미리 무화과를 심었는데 죽어서 참 아쉽다.
나는 무엇을 심고 나서 죽으면 그 나무가 살 때까지 다시심는다.
그래야 애당초 마음 먹은 것을 이루기 때문이다.
조금 더 자란 삼지구엽초
막 올라오는 뚱딴지
할일은 태산 같은데 슬슬 나가봐야 할 시간이다.
차가 없으니버스를 타려면 큰길까지 걸어나가야 한다.
큰길까지 나가면버스가 제 시간에 올지 모르겠다.
문을 잠그고 집을 나섰다.
햇살이 좀 따갑지만 걸을 만 했다.
길가에는 지칭개와 씀바귀, 아카시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다.
가다가 길가에서 뽕나무 잎도 좀 땄다.
차를 안 타고 가니 이것 저것 둘러보면서 해찰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가다가 지루하면 사진도 찍고.
노루실이 꽤 멀어졌을 때 뒤돌아보니 내가 사는 노루실 마을이
산 속에 꽁꽁 숨어버렸다.
산속에 숨은 게 아니라하늘속에 숨어 있는 것 같다.
늘 집을 비워 놓고 다니지만 3년이나 되었어도
아직 잃어버린 것은 하나도 없다.
하늘 속에 숨겨져 있으니 누가 와서 가져갈 것인가?
휴대폰도 터지지 않는 산골이지만
오히려 이런 외딴 산골이기에 누리는 좋은 점도 많다.
하늘 속에 숨은 노루실
많이 자란 뽕잎
저수지로 내려가면서 보니 애기똥풀이 무더기로 피어있었다.
작년에 보이던 수레국화도 파랗게 피어있다.
사람이 드물어 보아주는 이 없지만 의연하게 피어있다.
오늘 이 길은 나만을 위한 꽃길이다.
이 꽃 저 꽃 구경하며 걷다 보니 2킬로미터가 금방 다 지나갔다.
큰길이 보인다. 이제 다시 도시로 들어가야 한다.
차들이 숨가쁘게 달려 가고 달려온다. (*)
꽃대가 올라온 작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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