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8년 6월 22일, 일요일, 구름 조금 >
큰형님 가족과 조카들이랑 노루실에 갔다. 지난 주엔 월악산에 가느라 못 갔고 2주만에 노루실에 갔다. 아들이 고기를 굽는 동안 밭을 돌아보았다.
작년 가을에 독활(땅두릅)을 두 군데 심었는데 두 군데 모두 멀쩡하게 살아 있었다. 작년 가을에 큰땅빈대 씨앗도 많이 따서 노루실 마당에 뿌렸는데 올 봄에 통 보이지 않아서 다 죽었구나 했는데 오늘 보니 도도록하게 많이 돋아나 있었다. 큰땅빈대나 애기땅빈대나 좀 늦게 돋아나는 편이다.
늦으면 늦었지 안 돋아나는 것은 아닌 셈이다. 그러니 늦다고 불평말고 느긋하게 기다리면 심은 씨앗은 반드시 싹을 볼 수가 있다. 노루실 저수지에 가보았더니 거기에 심은 연도 슬슬
잎을 내밀고 있었다.
(노루실 저수지에 핀 연잎)

글쓰는 이들도 내 실력은 생각하지 않고 당선만 목빠지게 바라면 되겠는가? 차근차근 실력을 닦아서 나아가면 자기가 당선하고 싶지 않다고 해도 당선이 되는 법이다. 오늘도 푸른 싹은 나에게 넌지시 일러준다. 심어 놓고 느긋하게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고. 재촉한다고 빨리 나오는 게 아니라고. 자연이란 거짓말을 절대로 하지 않는다. 사람은 거짓말을 밥 먹듯 하지만 자연은 그렇지 않다. 심으면 나고 안 심으면 안 난다. (독활)

(큰땅빈대)

밭에는 풀이 엄청나게 자랐지만 일일이 뽑을 수가 없어서 그냥 두었다. 노루실에 즐기려고 오는데 풀을 다 뽑으려고 하다간 밭의 노예가 되고 말 것이다. 풀도 적당히 살려두면서 그냥 즐기기로 하였다. 다른 데서는 천덕꾸러기인 풀들아, 내 밭에서는 그냥 마음 편히 살아라. 내가 모질다면 너희들을 다 죽여야 하겠지만 내가 모질지 못한데다 그냥 편하게 지내고 싶다. 지치는 어느새 꽃이 피어 있었다. 지치 꽃을 처음 보았다.
(지치)

마당 안에 심은 돼지감자는 해바라기만큼이나 커졌다. 형수는 해바라기인 줄 알았다. 올 때마다 쑥쑥 자라는 돼지감자. 키가 시원스럽게 커서 보기에 좋다. 꽃이 피면 더욱 보기 좋겠다.
(돼지 감자)

앵두나무에 앵두가 다닥다닥 아주 많이 달렸다. 알맹이가 체리처럼 굵으면 먹을만 하겠는데 알이 자잘한 것이 조금 흠이다. 앵두를 따서 술을 담으려고 앵두를 땄다.


내가 저번에 힘들게 판 고무 물통에 수련과 연잎이 더 많이 올라왔다. 처음에는 큰 기대를 안 하고 그냥 재미로 만들었는데 지금 보니 만들기를 참 잘했다. 만들 때는 진땀 흘려 가며 고생을 했지만 지나고 보니 만들기는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고생한 보람을 느낀다. 내가 곡괭이로 힘들여 판 미니 연못이라 더 정이 가고 대견스럽다.



밭에는 잡초 때문에 골치가 아프지만 물속에는 잡초가 별로 없으니 힘도 들지 않고 즐겁게 보기만 하면 될 것 같다. 수련은 벌써 꽃봉오리가 맺혀 있으니 곧 꽃이 피어나겠다. 모람집에서 시집온 수련이 자식을 낳는 셈이다. 손자를 본 할아버지 심정이다. 개구리도 들어가서 헤엄을 치고 있다. 물속에 장구벌레가 헤엄치고 있으니 개구리 먹이는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다.
사람은 무엇이든지 억지로 하려는 경향이 심하다. 어항에도 산소호흡기를 달아서 공기를 억지로 집어 넣고 물을 자주 갈아주어야 한다. 수족관은 가끔 청소해주지 않으면 썩어 버린다. 부모는 자식의 성적을 올리려고 공부를 억지로 시키고, 병에 걸리면 독한 약이라도 먹고 빨리 나으려고 한다. 약은 화학 공장에서 만든 것이라 병이 나아도 다른 장기에 부작용을 주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자연은 그렇지 않다. 물속에 연을 심어 놓으면 스스로 산소를 만들어 내고 그 물속에 벌레가 생겨서 돌아다닌다. 그러면 개구리는 그 벌레를 먹고 자라고 개구리가 먹고 배설을 하면 그게 연에게는 거름이 된다. 자연은 억지로 무엇을 집어 넣지 않아도 스스로 돌고 돈다. 사람도 그래야 할 것이다. 하고 싶으면 하고, 하기 싫으면 하지 말고. 무엇을 억지로 하지 말고 물 흐르듯이 자연스러운 흐름에 따라야 할 것이다. (해바라기)

(초피나무)

(큰집 조카 수연이의 아들)

( 형수와 조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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