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집

나를 혼내는 벌 (217회 )

凡草 2008. 9. 22. 21:43

 

 

 나를 혼내는 벌


( 2008년 9월 22일, 월요일, 맑음 )


글을 쓰다가 심심하면 벌을 잡으러 나간다.

피로해진 머리도 식힐겸 나가서 벌을 잡는다.

 

벌은 봄이나 여름만큼 보이지 않는다.

공공근로 하는 사람들이 예초기로 어찌나 부지런히 풀을

베는지 클로버가 자랄 틈이 없다.

 

화명동 연못가에 가면 클로버에 벌이 제일 많이 앉았는데

풀을 싹둑싹둑 잘라 버리니까 벌이 날아오지를 않는다.

 

그 전에는 한 번 나가면 열 마리는 쉽게 잡았는데

요즘엔 한 두 마리 잡기도 어렵다.

한 마리를 잡으려면 한참을 헤매야 겨우 잡는다.

벌이 어디에 앉았는지 알려면 대충 보아서는 어렵고

자세히 보아야 한다.

벌을 잡으려고 애를 쓰는 동안에 관찰력이 길러질 것

같다.

 

사람은 어릴 때부터 무엇이든 잡는 것이 본성인가 보다.

어릴 때는 잠자리, 메뚜기, 나비를 잡았고, 크면서 게,

다슬기, 송사리를 잡았다. 어른이 되어서는 물고기도

잡고 바퀴벌레도 잡고 어떤 이는 새도 잡는다.

 

벌이 많이 잡히지 않아도 산보하면서 풀밭을 한 바퀴

돌면 기분 전환이 된다.

그러다가 벌을 잡으면 벌침을 맞아서 좋다.

 

내가 살아오면서 남에게 상처를 주었거나 게으르게 보낸

시간을 반성하기 위해 따끔한 침을 맞는다.

벌은 나에게 반성할 기회를 준다.

나는 몸을 건강하게 하는 것보다는 마음을 건강하게 하기

위해서 맞는다.

 

벌침을 맞으면 2-3분은 정말 따끔하다. 정신이 번쩍 든다.

누가 나에게 이처럼 호되게 야단을 칠 수 있을까?

나는 엄지손톱보다 작은 벌이 고맙게 느껴진다.


기장 바닷가에 바람 쐬러 갔다가

이질풀과 번행초 군락지를 보았다.

이렇게 많은 이질풀과 번행초는 처음 보았다.

 

사람들은 몸에 이로운 풀인 줄도 모르고 쓰레기와

오물을 막 버려놓았다.

지저분한 쓰레기 틈바구니에서 고개를 내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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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질풀은 꽃대가 독특하다. 제사를 지낼 때 쓰는 초를

꽂아둔 촛대처럼 보인다.

바다를 향해 수많은 촛대들이 서 있다.

누가 무슨 바램이 있길래 저렇게 많은 초를 꽂아두었나?

노루실에 이질풀이 없어서 씨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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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에는 번행초 씨를 받았다.

번행초도 지금이 씨를 받기에 알맞은 때였다.

바위 틈에 번행초가 오글오글하였다.

 

올해 노루실 밭에 나눔으로 얻은 번행초 씨를 심어서

세 포기 정도 키웠는데

내년 봄에는 더 많은 번행초를 키울 수 있겠다.

 

번행초는 위에 좋은 야생초인데 바닷가에 잘 자란다.

물기가 많은 밭이라면 더 잘 자랄 것이다.

번행초 씨도 모양이 특이하다.

도깨비 뿔처럼 생겼다.

위에 생긴 병균을 쫓아주는 도깨비 방망이일까?

 

바다 바람도 쐬어서 좋았지만

이질풀씨와 번행초씨를 받은 것이 더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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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봄도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인터넷으로 으름나무 2그루와 블루베리 2그루를

주문해 놓았다.

나무를 심고 야생초씨도 심어서 새싹이 돋아나오는

모습을 보고 싶다.

그들이 살아있다면 나도 살아있는 것이다.

생명이란 크든 작든 소중하다.  (*)


  ( 물봉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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