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빨간 보리수에 취한 하루
< 2009년 6월 13일, 토요일, 맑음 >
약초모임 회원들과 경주 남산에 갔다. 오전 8시 10분에 동래 지하철역 앞에서 성일경씨 차를 타고 출발했다. 나와 아내, 수아, 현정란- 다섯 사람이었다. 항상 성일경씨가 먼저 와서 기다렸기 때문에 이번에는 좀 일찍 집을 나서서 7시 45분쯤 동래역에 도착했더니 일경씨가 벌써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아이고, 되게 부지런한 사람이네. 졌다 졌어!' 차보다 사람이 먼저 가야 정상인데 언제나 거꾸로다. 미리 준비하고 사람을 기다리는 일경씨를 보니 늘 꾸물거리다가 약속 시간에 늦는 내 생활 태도가 부끄러웠다. 성일경씨 차를 늘 얻어 타서 이번에는 우리 차를 가져 가려고 며칠 전에 연락을 했더니, 무슨 섭섭한 말이냐며 그냥 오란다. 이렇게 차를 얻어 타기만 하다간 엉덩이에서 뿔이 나올지도 모르겠다. 남을 배려하는 일경씨 때문에 오늘도 즐거운 나들이가 되었다. 일경씨와 유진님 두 분이 없었다면 부산 경남 모임이 제대로 되지 않았을 것이다. 두 사람 덕분에 약초 모임에 나가는 것이 소풍 가는 것만큼이나 흥겹다.
다만, 종종 멀리서도 참석하던 고송님과 야초울님이 수도권 모임이
예정되어 있어서 오지 못했기 때문에 서운했다.
날씨가 쨍하고 더웠다. 후텁지근했다. 나는 용장리 주차장에서 일행을 기다리는 동안에 벌을 잡아 합곡혈, 신문혈, 족삼리혈 등에 벌침 4방을 맞았다. 나는 일주일에 3번 정도 면역력을 기르기 위해 별로 아픈 데가 없어도 벌침을 맞는다.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벌침이라도 서비스 하려고 했지만 아무도 맞겠다는 사람이 없어서 혼자 맞았다.
조금 있으니 청뫼님, 유진목장 부부와 아사달님, 돌꽃님이 왔다. 이미 구면이라 반가웠다. 오늘 참석 인원은 모두 10명이었다. 고성에서 달려온 청뫼님의 성의가 고마웠고, 대구에서 온 돌꽃님도 반가웠다.

산을 본격적으로 오르기 전에 용장리 계곡에서 수박과 쑥떡, 맥주, 유진목장의 별미인 요플레를 먹었다. 이어서 아사달님의 안내로 산행을 시작했다. 경주 남산은 마사토에다 돌이 많았다. 나무는 소나무가 많았다. 수많은 문화재가 숨어 있는 남산이라 산행 코스는 좋았다. 나는 돌에 그려진 마애불상을 보며 동화 글감을 수첩에 적었다.

백운재를 거쳐 내려오다가 식당에 들러 산채비빔밥을 먹었다. 식당 앞에 커다란 다래나무가 공룡처럼 버티고 서서 가지를 이리 저리 꾸부려 놓은 것이 인상적이었다. 밥과 막걸리 맛이 아주 좋았다.

우리는 오늘의 산행을 잘 마무리한 것과 약초 모임의 발전을 위해 건배를 하였다. 아사달님의 안내로 산행을 잘 해서 고마웠다.
식사를 마친 뒤에 남은 길을 내려오다가 청뫼님으로부터 조릿대 새순 으로 술 담는 법을 배웠다. 그전에 간월산 산행할 때도 한 번 들은 적이 있지만 직접 실천하지는 못했다.

그런데 오늘 직접 새순 뽑는 법을 몸으로 보여주니 아주 쉽게 이해가 되고 술을 담아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걸 보면 직접 현장에서 몸으로 배우는 것이 제일 좋은 교육이다. 책과 글로 아무리 많이 배운다고 해도 몸에 배어들지 않으면 소용이 없을 것이다. 우리는 어린이들이 장난을 하듯이 조릿대 새순을 쏙쏙 뽑았다. 뽑는 것도 게임을 하듯이 재미있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뽑았더니 유진 목장에 가야 한다며 어서 오란다. 오늘 산행을 무사히 마쳐서 흐뭇했지만, 원래 우리가 의도했던 약초 산행은 되지 못한 것이 좀 아쉬웠다. 앞으로 부산 경남권에 있는 약초 전문가를 영입하여 제대로 된 약초 산행을 해봐야겠다.
산을 내려와 차를 타고 유진 목장으로 갔다. 벌써 몇 번째 와보는 유진목장이다. 이젠 회원 집이 아니라 가까운 친척 집에 오는 기분이다.



유진님은 나무가 휘어지도록 열린 보리수 열매도 마음껏 따 가라 하고 상추, 열무까지 뽑아주었다. 아내와 수아, 구기자, 돌꽃은 친정에 온 것 같다며 싱글벙글 웃었다. 우리는 보리수 나무에 일제히 달라붙어 열심히 땄다. 유진님은 열매가 농 익어서 물러 터졌을 거라고 걱정을 했는데 열매를 따보니 지금이 딱 적기였다. 열매가 포동포동 살이 올라서 입에 넣어보니 새콤하면서도 달짝한 맛이 그저 그만이었다. 나무에 새빨갛게 열린 보리수 열매. 가지가 휘어지도록 빽빽하게 매달려 있는 열매를 보니 웬 자식 욕심이 그렇게 많은지 한숨이 나왔다. 제 몸 고생하는 줄 모르고 자식들을 저렇게 줄줄이 매달아 놓았으니 원.. 우린 자식 욕심 많은 나무 덕분에 실컷 보리수를 땄다. 내가 태어난 뒤로 이렇게 많은 보리수 열매를 따본 것은 처음이었다.


보리수 열매를 따고 나서 돼지고기를 구워 먹었다. 벗나무 아래서 가진 고기 파티는 맛도 있었고 분위기도 좋았다. 고기 굽는 판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나도 다음에 유진목장에 있는 것과 같은 고기 굽는 쇠틀을 하나 마련해야겠다.





게다가 유진목장에서 내어놓은 보리수 술은 최고였다. 7년 숙성된 보리수 열매 술이라는데 거의 최고급 와인수준이었다. 맛도 순하고 뒤탈도 없었다. 나는 10잔 이상 많이 마셨는데 얼큰하게 취할 뿐 전혀 부작용이 없었다. 오늘은 새빨간 보리수 열매에 흠뻑 젖고 보리수 술에 취한 하루였다. 황토방에서 차까지 대접 받고 저녁 9시 경에 집으로 출발하였다. 목장 일로 바쁜데도 여러 회원을 가족처럼 맞아준 유진님 부부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오늘 참석한 약초 모임 회원들에게 감사드리며,
앞으로 글나라 회원 중에서도 약초모임에 참석할 분은 가입을 환영한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