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집

행운의 77 === 258회

凡草 2009. 7. 5. 07:25

  행운의 77


< 2009년 7월 4일, 토요일, 맑음 >

 
 기회는 우연히 다가오는 것인가?
 아니면 내가 노리고 있다가 거머쥐는 것인가?
 프랑스 파리에 있는 루브르 박물관에서 행운의 여신 '니케'를 본 적이
있는데 앞머리가 없고 뒷머리만 있다는 말을 들었다.
 행운의 여신이 앞머리가 없기 때문에 쉽게 낚아채지 못하고 행운이
지나간 뒤에야 비로소 후회한다는 것.

 

 

 

 며칠 전에 찾아간 후배의 농장은 정말 탐이 났다.
 집에서 가까운데다 연못이랑 없는게 없었다.
 내가 부러워하였더니 넌지시 이런 말을 했다.
"형님, 사실은 며칠 전에 요 부근에서 제일 좋은 명당을 새로
샀습니다. 저수지와 계곡을 끼고 있어서 아주 좋은 땅이지요."
 평수가 어느 정도 되느냐고 물었더니 231평이라고 했다.
우선 넓이가 적당하였다. 너무 넓은 땅이면 비싸서 사기가 힘들었다.
 나는 그 땅을 보지도 않고 후배에게 매달렸다.

 

 

 

 "야, 내가 웃돈을 얹어줄 테니 나한테 양보하면 안 되겠니?"
 같이 갔던 아내도 후배 농장이 마음에 들었던지 제발 그렇게 해달라고
졸랐다.
 후배는 잠시 생각해 보더니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 동네에서는 그런 땅이 또 나오기 어렵습니다. 제가 마음 먹고 산
땅인데 안 되겠네요."
 "그럼 반씩 나누자. 넌 400평이나 있으니 반만 해도 되잖아?'
 그래도 우리가 막무가내로 애원을 하자 후배가 한 발 물러섰다.

 

 

 

 "사실은 나 혼자 산 게 아니고 친구하고 반씩 투자를 했습니다.
 친구가 양보를 할 수 있는지 한 번 물어보겠습니다."
"이야기 좀 잘 해주라."
 그렇게 말하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이틀 뒤에 후배에게서 연락이 왔다.
"형님, 친구와 이야기를 해보았는데요. 친구도 꼭 하겠답니다.
 그러니 세 사람이 같이 하면 어떨까요? 형님만 좋다면 넣어드리겠습니다."
 후배의 말을 들은 순간, 새로운 희망이 용솟음쳐 올랐다.
 내가 남에게 해로운 짓 안 하고  살아왔다니 이런 행운도 오는구나
싶었다.
 그렇게 해서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마침 노루실 집을 팔려고 계약한 참이라 돈도 댈 수 있었다.
 땅이 좋아도 돈이 없으면 살 수가 없고, 돈이 있어도 그런 땅이 나오지
않으면 살 수 없을 텐데 타이밍이 참 적절했다.
 나는 뒤늦게 합류하는 터라 웃돈 천 만원을 내고 끼어 들었다.
 아무리 친한 후배지만 돈 거래는 분명히 하기로 했다.
 231평을 세 사람이 나누니 한 사람에게 77평이 돌아왔다.

 

 

 

 그만하면 땅도 적당했다.
 너무 넓어도 관리하기 어렵고 돈이 비싼데 그 정도면 안성맞춤이었다.
 게다가 두구동은 내가 첫 교사 생활을 시작한 곳이었다.
 아내도 거기서 만났다.
 내 인생을 처음 시작한 곳에서 이렇게 마무리를 하게 되다니.
 참 감회가 깊었다.

 

 

 

 7월에 77평을 샀으니 행운의 숫자가 세 개나 겹쳤다.
 나는 미신을 믿지 않지만 행운이 다가왔다는 것을 느꼈다.
 여태 꼬여서 풀리지 않던 일들이 술술 잘 풀리고 있다.
 해운대에서 절대로 이사 가지 않겠다던 아내도 내가 시골집을 팔자
해운대 아파트를 팔고 범어사 쪽으로 이사가겠다고 하였다.
내가 마음을 비웠더니 아내도 한 걸음 양보를 하였다.
 범어사 앞으로 이사를 가게 되면 굳이 시골집을 짓지 않아도 집에서
7-8분이면 수내 밭에 도착할 수 있다.
 밀양 시골집이 다 좋아도 주말에 한 번 가는 것이 불만이었는데
여기는 마음만 먹으면 매일 갈 수도 있었다.
 아내와 나는 자전거를 사서 운동겸 오가기로 했다.

 
  어제는 돈을 다 지불한 땅에 가서 씨앗을 새로 심었다.
 나는 늘 심다가 볼일을 다 보는 것 같다.
 생림에서도 그랬고 노루실에서도 그랬다.
 나는 죽도록 심기만 하고 수확은 남들이 다 한다.
 그래도 만족한다.
 심는 그 자체만으로 좋다.
 나는 여지껏 땅에는 씨앗을 심고, 동화의 글밭에서는 제자들을
길어내었다.
 실컷 길러낸 제자가 스스로 큰 것처럼 행동하는 경우도 있지만
나는 길러낸 것만으로 만족한다.
 심는 것이 내 천성에 맞고 어쩌면 그게 내 운명인지 모른다.

 

 

 

 후배와 첫 삽질을 하였다.
 긴 밭 가운데 한 고랑을 일구었다.
 개망초가 밭을 다 점령하고 있었지만 둘이 손을 맞추어 일했더니
금방 깨끗해졌다.

 

 

 

 곤드레, 곤달피, 참나물, 상추, 매발톱, 장구채, 돌나물,
홍화, 닥풀, 쪽, 수세미, 오크라, 일당귀, 백하수오 등을
골고루 심었다.
 마지막으로 풍년화를 세 그루 심었다.
 이 밭에 풍년이 오기를 바라며.

 

 

 

 

 

 새로 산 밭은 아직 다 쓸 수가 없다.
 반이 넘는 땅에 정원 조경으로 쓸 나무들이 빼곡하게 심어져 있다.
 내년 6월 30일이 되어야 그 나무들을 다 빼어간다.
 그런 불리한 조건 때문에 이 땅이 쉽게 팔리지 않고 있다가
후배한테 넘어 왔다.

 

 

 

  

 


 지금은 우선 빈 밭에 씨를 심고 가꾸다가 내년 여름이 되면
본격적으로 공사를 하여 농막과 원두막을 짓고 나무를 심을 계획이다.
 원래 동업은 아버지와 아들 사이라도 안 한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나는 후배들이 하자는 대로 다 따를 생각이다.
 뒤에서 구경만 해도 좋을 것이다.
 노루실에서 익힌 약초에 대한 지식은 후배들이 필요하면
나누어 줄 것이고.
 한 가지 좋은 점은 저수지와 계곡을 끼고 있어서 물이 풍부하고
하천 부지를 잘만 이용하면 300평도 넘게 쓸 수 있다.
 그러면 한 사람이 100평 정도를 쓰게 된다.
 그만 하면 충분하다.
 자식 욕심 부리다가 키우느라 고생했고
 생림에서 3천평이나 갖고 있다가 관리가 안 되어 애를 먹었고
노루실 땅도 350평이나 되어 내겐 솔직히 벅찼다.

 

 

 

 

 이제는 무엇이든 비우고 정리를 해야 할 시점이다.
 새로 일을 벌이고 욕심을 부려서는 안 될 것이다.
 부족한 듯 살면 몸과 마음이 편하다.
 여태 혼자서 땅을 가꾸어 왔는데
 앞으로는 후배들과 오손도손 지낼 수 있어서 좋다.
 혼자서는 독불 장군이다.
 형제나 친척도 취미가 같지 않으면 자주 만나기가 어렵다.
 형제나 친척보다 더 자주 만나 정을 나눌 수 있는 것이 문학적인
만남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끈끈한 만남은 흙으로 만나는 관계다.
 흙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순수하고 낭만적이다.
 매일 만나도 지겹지 않다.
 날마다 생명이 꿈틀대며 올라오니까 얼마나 새롭고 신선한가?
  내년 여름에는 저수지가 내려다 보이는 곳에 작은 정자 하나
지어놓고 수박을 베어 먹으며 낮잠을 자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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