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집

[스크랩] 안개를 헤치고 (581회)

凡草 2014. 6. 15. 21:31

 

 

 

<범초산장 일기; 581회>

 

안개를 헤치고

 

<2014년 6월 15일, 일요일, 맑음>

 

지난 주 월요일에 통도사 영축산으로 등산을 갔는데

안개가 자욱하게 끼었다.

전망을 잘 볼 수 있으면 길을 헤매지 않을 텐데 앞이 보이지 않으니

한 번 길을 잃고 뱅뱅 돌아 제자리로 왔다.

참 황당했다.

등산을 많이 다녀보았지만 이런 일은 드물다.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때가 있는가 보다.

 

 

 

 

한 번 실수는 있을 수 있는 일이라

다시 정신을 차려 앞으로 나가니 바른 길이 나왔다.

 

세상 살다 보면 앞이 안 보일 때가 있다.

그렇더라도 용기를 잃지 않고 꿋꿋이 걸어가면  길을 찾을 수 있다.

 

 

 

 

늘 밝고 환한 길만 다니다가 저녁 어스름처럼 희미한 길을 걸어가자니

그 또한 낭만이었다.

누가 나를 위해 이런 안개를 깔아주겠는가?

오히려 고마운 마음으로 안개를 즐기며 걸었다.

나쁘게 보면 앞길을 가리는 안개지만

좋게 보면 동양화처럼 아름답다.

몽환적인 풍경을 감상하며 7시간을 기분좋게 걸었다.

 

 

 

 

 

 

 

산장에 가서 2박을 하고 돌아왔다.

늘 토요일에 가지만 요즘에는 산장 풍경이 좋아서 일부러 즐기려고

금요일 저녁에 산장으로 달려간다.

 

 

 

 

 

 

 

 

이렇게 아름다운 풍경을 두고  도시에서 회색빛 속에 갇혀서 자면

뭔가 아까운 생각이 든다.

 

가 좋아하는 쌈이 왕성하게 올라오고 있다.

지난 주에 아주까리를 다 뜯어 먹었는데 이번 주에 가보니 또 수북히

자라났다. 불가사리처럼 잘도 큰다.

 

 

호박잎도 지난 주엔 뜯어 먹을 게 없더니 이번 주에는 아주 많았다.

호박잎도 서른 장 이상 뜯었다.

강된장을 만들어 쌈을 싸 먹어야겠다.

호박잎만 있어도 밥도둑이 따로 없다.

 

 

 

뽕나무 아래 무성한 풀 속에 두꺼비 한 마리가 숨어 있다.

내가 없을 때 산장을 지켜주려고 나타난 것일까?

나는 반가워서 풀을 뽑다가 슬그머니 비켜 주었다.

두꺼비야, 어디 가지 말고 산장에서 나와 같이 살자.

 

 

 

산장 마당에 풀이 숲처럼 우거졌길래 예초기로 밀었다.

쑥이야 많으니 잘라도 아깝지 않은데

질경이와 민들레는 아까워서 남겨 두고 깎았다.

 

예초기 밑에 붕붕이를 달은 덕분에 큰 힘 들이지 않고 다 깎았다.

붕붕이를 달지 않았을 때는 마당을 한 바퀴 다 돌고 나면 팔이 저리던데

이젠 아무렇지도 않았다. 붕붕이 달기를 잘 했다.

 

 

 

성지초등학교에서 가르친 제자들이 나를 찾아보러 산장에 왔다.

기념으로 심은 나무 앞에 꽂을 팻말도 만들어 왔다.

산딸나무와 팥배나무 앞에 꽂아두었다.

 

 

 

박선경과 장수진, 조철민은 근 35년 만에 만나서 퍽 반가웠다.

이젠 어른과 아이가 아니라 똑같은 어른으로 늙어간다.

세월 속에 숨은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다.

 

 

     망태 버섯

 

 

화명동에 글나라를 만들 때 많이 도와주었던 모람 이하은씨가

첫 동화책을 펴냈다. 책을 받고 아주 반가웠다.

 

 

<금동향로 속으로 사라진 고양이>

                                                     파란자전거 발행

 

 

 

2008년에 <하늘목장>이라는 장편 동화로 엠비시 창작동화

대상을 받았지만 여태 개인 창작집을 내지 못해 마음 고생을

많이 했는데, 이제 책이 나왔으니 얼마나 후련할까?

그래서 그런지 얼굴이 환하다.

 

 

 

 

 

구순 윤자명씨와 세 사람이 만나 호포에 있는 포구나무 집에서

메기 매운탕을 먹으며 출간을 축하해주었다.

이하은씨가 첫 창작집을 디딤돌로 삼아

앞으로 좋은 동화책을 많이 내길 바란다.

 

 

 

 

  엉겅퀴

                    - 고정국

 

 

쉽사리 야생의 꽃은

무릎 꿇지 않는다

빗물만 마시며 키운

그대 깡마른 반골의 뼈

식민지 풀 죽은 토양에

혼자 죽창을 깎고 있다

 

 

이 시처럼 작가는 세상과 쉽게 타협하지 않으며

자기만의 세계를 갖고 있어야 한다.

작가는 우직하게 작품을 쓰며

자기 앞에 놓여진 길을 한눈 팔지 말고 묵묵히 걸어 가야 한다.

                          (*)

출처 : 글나라
글쓴이 : 凡 草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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