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스크랩] (범초산장 일기 618회) 가슴에 지퍼 달린 다람쥐

凡草 2015. 1. 12. 21:13

 

 

 

 

(범초산장 일기 618)

 

2015111, 월요일, 맑음

 

<가슴에 지퍼 달린 다람쥐>

 

늘 월요일마다 혼자 산행을 했는데 오늘은 윈드가 따라 가고 싶다고 해서

함께 가기로 했다.

약속한 시간이 되니 윈드와 친구들이 탄 차가 우리 집 앞으로 왔다.

나는 어디로 갈까 하다가 최근에 국제신문에 소개된 원동 금오산으로

안내했다. 교통편이 불편해서 평소에는 찾아가기 힘든 산이다.

원동 영포리 어영마을 회관 앞에 차를 대어 놓고 한 바퀴 뺑 돌아서

제자리로 돌아오는 코스였다.

 

 

 

아침에는 조금 쌀쌀했지만 산으로 들어가니 포근한 봄날씨였다.

점심을 먹을 때도 아주 따뜻해서 벌써 봄이 다가온 느낌이었다.

산길은 처음에는 평탄하다가 차츰 높아져서 가파른 길도 나타났다.

아슬아슬한 바위 벼랑 구간도 있었고 내리꽂듯 떨어지는 비탈길도 있었다.

그런 길을 지나고 나면 하이킹하듯 편안한 길이 이어진다.

 

 

산길은 흡사 인생길과 같다.

언제나 즐겁고 유쾌한 일만 일어나지 않고 힘들고 괴로운 날도 있고

가슴 아픈 날, 서러운 날, 분통 터지는 날도 있는 게 세상살이다.

하지만 힘든 날을 참고 견디면 평탄한 길이 나타나듯 다시 편안한 날이

찾아온다.

 

 

 

 

내 인생길도 그랬다.

내가 네 살 때인가 마당에서 놀다가 툇마루에 놓여있는 박카스병을

발견했다. 어린 마음에 음료수인 줄 알고 병 안에 들어있는 액체를

마셨는데, 마시자마자 바로 쓰러져서 정신을 잃었다. 병 안에 들어

있던 액체는 빨래할 때 쓰려고 넣어둔 양잿물이었다.

그 당시는 세제가 없어서 양잿물로 빨래를 했다.

양잿물은 독약과도 같아서 피를 토하며 사경을 헤매고 있었는데

엄마는 뒤늦게 알고 달려와 나를 안은 채 어찌할 바를 모르고 발만

동동 굴렀다.

 

바로 그 순간, 나보다 나이가 12살이나 많은 누나가 학교에서 돌아

와 이 광경을 보았다. 누나는 내가 양잿물을 마시고 다 죽어간다고

하자 당장 식초를 먹이라고 일러주었다. 학교에서 알칼리성을 중화시키는

것이 산성이라고 배웠다면서.

누나 말대로 엄마가 식초를 먹여서 나는 간신히 살아났다.

하지만 그 후유증으로 식도와 위를 상해서 그 뒤에 병치레를 많이 했다.

안 그래도 엄마가 45살에 나를 낳아 허약하게 태어난데다 양잿물까지

마셔서 늘 핼쓱한 얼굴로 살았다.

 

 

 

사람들은 나를 만날 때마다 종종 이런 말을 했다.

젊은 사람이 왜 그렇게 혈색이 안 좋아요? 어디 아픈가요? 전보다

더 안 좋아보이는데.“

지금이야 건강해져서 그런 말을 안 듣지만, 꽤 오랜 기간에 그런 인사말을

들었다. 참 듣기 싫은 말이었다.

나는 그런 경험이 있기 때문에 얼굴빛이 안 좋거나 진짜 아파 보이는

사람을 만나도 건강이 안 좋아보인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반대로

얼굴이 좋아보인다며 상대방을 안심시키는 편이다.

 

 

 

 

그 뒤 세월이 흘러 누나가 결혼 적령기에 접어들었을 때, 여러 군데서

혼담이 줄을 이었지만 누나는 다 거절했다.

극장 사장 아들도 싫고 부잣집도 마다 하고 가수에게 눈이 맞아서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하더니 딸 셋을 낳고는 헤어져버렸다.

누나는 뻐꾸기처럼 자기가 낳은 딸 둘을 어머니한테 맡겨 놓고 재혼을

했는데, 그로 인해 어머니는 큰형님 집에 얹혀 살면서 형수한테 온갖

눈총을 다 받았다.

 

그런 어머니를 내가 모시겠다고 마음 먹고 초등학교 교사가 되면서부터

분가를 했는데 조카 둘도 어머니와 함께 우리집으로 따라왔다.

내가 아내와 결혼하기 전에 내세운 조건이 어머니와 조카 둘을

보살피겠다는 것이었는데 그 때문에 아내가 신혼 초에 고생을 많이 했다.

 

나는 어머니를 모시겠다는 생각 때문에 조카 둘까지 떠맡았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내가 어릴 때 양잿물을 마시고 다 죽어가는 것을

구해준 사람이 누나였고, 나는 조카 둘을 키워주면서 그 빚을 갚은

셈이다. 

 

그러고 보면 이 세상에 절대로 공짜는 없고 남에게 신세 진 것은

언제 어떤 방법으로든 갚아야 하는가 보다.

 

 

 

내가 31살 때 서울대학교 병원에 가서 심장 수술을 받았다.

태어날 때부터 심장에 이상이 있었는데 돈이 없어서 고치지 못하고

미루다가 교사가 된 뒤에 의료보험 덕분에 수술을 받게 되었다.

내가 9시간에 걸친 대수술을 받고 병실에 누워 회복 기간을 보내고

있는데 부산에 있던 같은 학교 선생님들이 문병을 하러 올라왔다.

대부분 선배 교사들이었는데 방학이라 수도권을 단체 관광하다가 잠시

짬을 내어 병원에 들른 것이었다.

선배들은 내가 대수술을 받느라 고생 많았다며 위로해주었는데

한 짓궂은 선배는 내 가슴에 남아 있는 수술 자국을 보고 농담을 했다.

어이, 김선생! 가슴에 지퍼를 달아서 편리하겠구먼. 더우면 지퍼를

열어서 가슴속을 식힐 수 있고 추우면 도로 닫고 말이야.

우하하, 참 좋겠어.”

나는 그 말을 듣고 농담이겠거니 하며 그냥 웃고 말았다.

 

그러나 76세의 늙은 몸으로 서울대학교 병원까지 따라 와서 간병을

하고 있던 어머니는 선배 교사들이 간 뒤에 서운하다며 눈물을 흘리셨다.

자신은 건강하니까 아무 생각 없이 그런 말을 하지만 너에겐 얼마나

가슴 아픈 말이냐? 세 살 먹은 아이들도 아니고 나이깨나 먹은

사람이 참 생각이 짧네. 어디 유머를 할 데가 없어서 아픈 사람한테

한다냐. 나 원 참 기가 막혀서!“

어머니 너무 언짢아하지 마세요. 그 선배가 조금 짓궂긴 해도 나쁜

사람은 아니예요. 난 괜찮아요. 앞으로 건강하면 되잖아요.”

그래도 그런 말은 하는 게 아니다. 비싼 밥 먹고 남의 가슴에

못을 박는 소리를 하면 안 되지.”

어머니는 가족이니까 마음이 아팠겠지만 남들은 충분히 그럴 수 있다.

 

 

 

 

좋은 생각에서 이런 글을 읽었다.

< 착한 두 사람도 서로 악해질 수 있고, 악한 두 사람도 순해질 수 있는 게

결혼이다. 옳고 그름이 결혼 생활을 행복하게 이끌지 않는다.

왜냐하면 각자의 입장에서 보면 다 옳기 때문이다.>

부부도 자기 생각이 옳다고 고집할 수는 없다.

하물며 남이야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나는 선배들을 원망하지 않았지만 병실에 누워 결심한 것은

있다. 병원에서 살아 나가면 어떻게든 건강 관리를 잘 해서

다시는 아프지 않겠다고.

 

그래서 병원에서도 식사 시간과 주사 맞는 시간만 아니면 빠른

회복을 위해 계속 걸어 다녔고, 보름이 지나 집으로 돌아온

뒤에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등산을 했다.

30여년이 지난 요즘에도 일 년 365일 중에 360일 정도는

매일 아침 빠짐없이 맨손체조를 하고 있다.

술도 막걸리 한 병 이상은 마시지 않으려고 노력했고.

건강을 되찾은 뒤로 몸을 잘 관리해온 덕분에 큰 병 없이

잘 살아 왔다.

 

 

그런데 그때 나한테 농담을 한 선배는 세월이 지나자 당뇨병에다

고혈압까지 겹쳐서 많이 아프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선배는 건강할 때 내 다리를 만져보더니 이런 말을 한 적도 있다.

허어 김선생은 몸이 왜 이리 약하냐? 다리 허벅지가 내 팔뚝보다도

가늘구나. 이런 몸으로 어찌 살아가나?”

선배는 천하장사처럼 몸이 건강했지만 너무 자신만만했기 때문에

몸을 막 써서 약해졌고, 나는 약한 몸이었지만 조심하면서 살았기

때문에 벌써 죽었을 몸인데도 덤으로 더 살고 있다.

 

 

 

<높을수록>

                     추필숙

 

키가 자랄수록

속이 좁아지는

나무처럼

살고 싶지 않다

 

꼭대기에 오를수록

자리가 좁아지는

 

산은

오르고 싶지 않다

 

최고층,

최상위,

말만 들어도

내가 맨 밑에 엎드린 것 같다

 

 

 

 

나는 일찍 비탈길을 숨가쁘게 올라왔기 때문에 지금은 평탄한 길을

가는 것이고, 처음부터 평탄한 길을 살았던 사람은 뒤에 가서 가파른

길을 만나 고생하는 격이다.

예전에는 가파른 오르막길을 만나면 헉헉거렸지만 지금은 웬만한

오르막길은 다람쥐처럼 가볍게 올라가고 내리막길은 뛰어 내려갈 수 있다.

나이란 숫자에 불과하다. 청춘이란 젊은 시기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열정과 꿈을 간직한 마음을 일컫는 말이다.

 

 

 

오늘 굴곡이 많은 산길을 안내하며 내 지나간 인생길까지 돌이켜보았다.

앞으로도 젊은 마음을 갖고 열정적으로 살아가야겠다.

           (*)

 

 

 

 

             

             참죽나무 열매 (가죽나무)

 

 

            원동에서 어영마을과 배냇골을 오가는 마을 버스 시간표

출처 : 글나라
글쓴이 : 凡 草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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