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凡草텃밭 이야기 675회)
2015년 11월 30일, 월요일, 흐린 뒤에 맑음
< 8년 만에 펴낸 동화책, 천개줄 아저씨 >
2007년에 동화책 <똥쟁이, 너도 진돗개니?>를 펴낸지 8년만에 새 동화책을 내었다. 글나라 동화교실에서 화요일 오전반과 목요일 오후반을 가르치고, 신세계백화점에 가서 목요일 오전에 동화쓰기 지도를 하고 있는데다 인터넷으로도 동화지도를 하고 있기 때문에 내 글을 쓸 시간이 좀처럼 나지 않았다. 남을 지도하면서 내 글까지 쓴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도 동화 쓰는 것을 중단하지는 않았고 틈틈이 단편동화를 썼다. 장편 동화는 시간적인 여유가 있어야 하기 때문에 쓰지 못했다. 꾸준히 써온 단편 동화를 모아서 이번에 책을 내었다. 부산 문화재단에서 창작 지원금을 받았기 때문에 큰 도움이 되었다. 경제적으로는 별로 부담이 되지 않았어도 책 한 권을 내기가 쉽지는 않았다. 6월초에 동화 원고를 출판사에 넘겼는데 출판사에서도 바쁜 일이 많은지 원고 검토를 차일피일 미루다가 6월 하순이 되어서야 편집 작업을 시작했다. 나는 삽화 그림을 이영아씨에게 맡기고 싶었다. 신세계백화점 동화교실에서 내게 동화를 배운 이영아씨 그림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출판사에서 주려는 그림값보다 더 주기로 하고 그림을 부탁했다. 동화책에 들어갈 표지 그림과 내용 삽화를 그리는데 약 두 달이 걸렸다. 원래는 시월 말까지 동화책을 내기로 했는데 출판사에서 꾸물거리는 바람에 계획보다 늦어져서 11월말에 책이 나왔다. 책 한 권 내는데도 시간과 노력이 많이 걸렸다. 그렇지 않아도 범초산장을 인수하느라 여러 가지 문제가 많아서 힘이 들었는데 책까지 겹치니 더욱 힘들었다. 그래도 잘 참고 견딘 덕분에 책을 내고 나니 홀가분하다. 이영아씨가 그려준 그림도 마음에 들었다. 공교롭게도 범초산장 문제도 거의 같은 시기에 해결이 되었다. 어려운 타협을 거쳐서 등기이전을 끝냈지만 나머지 투자자인 조태제 교장에게 합의에 필요한 돈을 주고 근저당을 풀어야 하는데 돈이 없어서 애를 먹었다. 몇 천만 원을 어디 가서 빌리기가 쉽지 않아서 고민을 했는데 다행히 귀인을 만나 가까스로 해결이 되었다. 돈 문제를 해결한 날이 11월 26일이고 책이 나온 날이 11월 27일이니 한꺼번에 두 가지 숙제를 다 한 셈이다. 첩첩이 쌓여있던 난제들이 얽히고 얽혀 있다가 거짓말처럼 한꺼번에 싹 풀렸다. 나는 이런 일들을 겪고 나서 느꼈다. 복잡한 문제들을 푸는 것은 운이나 우연한 행운이 아니라 끊임없는 노력과 인내심이라는 것을. 귀인을 만날 수 있었던 것도 내 아이디어와 노력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책도 내가 교정을 꼼꼼하게 보고 여러 번 독촉하고 참을성 있게 기다려주었더니 햇빛을 보게 되었다. 복이나 행운은 거저 주어지지 않는다. 좋은 기회도 아무나 잡으라고 천천히 다가오지 않는다. 행운과 기회는 애써 준비하고 기다리고 있는 사람 앞으로 급행열차같이 달려온다. 자칫해서 한눈을 팔면 금방 지나가버린다. 온 신경을 곤두세운 채 기다리고 있다가 확 잡아채어야 한다. 낚시꾼이 월척을 하려면 몇 시간이나 한 나절을 끈기있게 기다리고 있다가 입질이 느껴질 때 확 잡아챈다. 행운과 기회도 마찬가지다. 한눈을 팔거나 어정거리고 있다가는 놓치기 십상이다. 좋은 기회를 억지로 만들 수는 없다. 미리 미리 준비하고 호시탐탐 기다리고 있다가 좋은 기회가 다가오는 것을 느끼면 한 번 물면 절대로 놓지 않는 핏불테리어처럼 꽉 물고 놓지 말아야 한다. 나도 그런 노력을 쏟았기에 범초산장을 인수하고 책을 낼 수 있었다. 사람만 좋아서는 큰일을 해낼 수 없다. 나는 돈이 많아서 산장을 인수한 것이 아니다. 돈이 많았다면 굳이 고민할 필요조차 없었다. 없는 돈을 박박 긁어서 인수 자금을 마련했고 그래도 모자라서 여러 날 돈 걱정을 해야만 했다. 내가 해운대에서 학원을 잘 하고 있다가 시골집에서 살아보려고 갑자기 화명동으로 학원을 옮겼는데 그때가 2006년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성급했다. 한 살이라도 더 젊을 때 전원생활을 해보려고 결단을 내렸던 것인데, 해운대에서 몇년만 더 돈을 벌었더라면 훨씬 더 여유가 있었을 텐데 화명동으로 오고 나니 궁색해졌다. 해운대에서는 다니는 학생이 100명이 넘었는데 화명동에서는 50명 정도로 줄었으니 수입이 반으로 깎여버렸다. 돈을 많이 못 벌어주니까 결국 밀양 노루실에 샀던 전원주택도 팔아야 했고 그 대안으로 두구동에 작은 농장을 마련하게 되었다. 밥 빌어다가 죽 쑤어먹는 격이다. 이제 와서 후회해본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그래도 아내와 내가 근검 절약한 덕분에 범초산장을 인수할 수 있었으니 천만다행이다. 이젠 아파트도 있고 주말농장도 있으니 남부럽지 않다. 봄부터는 약초와 채소를 키우며 3일 정도는 산장에서 지낼 생각이다.
내가 산장을 완전히 인수하기 전까지는 마음이 불안했다. 언제 쫓겨나갈지 모르는데 돈을 들여 나무를 자꾸 심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 대안으로 사둔 석산리 범초텃밭에 블랙배리와 블랙커런트를 많이 심어놓았다. 11월에 들어와 산장을 다 인수했기 때문에 석산리 텃밭에 심어 놓았던 블랙배리와 블랙커런트를 범초산장으로 옮겨 심었다.
씨앗편지에서 39000원 주고 산 겹목단도 새로 심었다. 작년에도 모란꽃을 보고 싶어서 한 그루를 심었는데 살아나지 못하고 죽었다. 내년 봄에는 모란꽃을 꼭 보려고 세 곳에 나누어 심었다. 설마 한 그루는 살아나지 않겠나? 만약에 안 난다면 또 심을 거다. 나의 이런 끈질긴 노력이 오늘의 범초산장을 만들었다. 작은 수목원 같은 산장이다.
시금치와 봄동이 싹을 내밀었다. 난 어떤 부귀영화도 필요없고 이런 새싹만 보면 행복하다. 솔직히 말해서 책을 낸 것보다도 산장에 와서 쌈채소와 풋풋한 나물을 뜯어 먹는 것이 더 행복하다.
독자들에게 사랑받지 못하는 동화작가라서 그런지는 모르겠다. 이번에 책을 펴내니까 아직 내가 현역에 있구나 하는 자부심이 들기는 한다. 좀 더 열심히 써서 재미있는 동화책을 펴내고 싶다는 희망은 버리지 않는다.
배추 한 포기가 진딧물 공격을 받아 시꺼멓게 시들어버렸다. 뽑아서 버리려다가 겉잎을 몇 장 뜯어내고 보니 안은 멀쩡했다. 저렇게 다 죽어가면서도 스스로 생명을 지키려고 안간힘을 다 했구나! 겉모습을 보고 사람을 판단하지 마라는 말처럼 이 배추도 그렇다. 겉이 썩었다고 속조차 썩은 것은 아니었다. 나는 배추 속을 맛있게 먹으며 배추든 사람이든 속마음은 강해야 한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범초산장에서 밭을 더 만들려고 포크레인을 불러 큰 공사를 했는데 포크레인이 지나간 뒤에 제일 먼저 싹을 내민 것이 민들레였다. 다른 식물들은 아직 나올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데 민들레는 땅이 뒤집어진데다 겨울이 코 앞에 다가왔는데도 꽃을 피웠다. 저 강인한 생명력! 그래서 민들레가 건강에 좋은가 보다. 작년에는 내가 주인이 아닌 탓에 주말 텃밭에 왔던 어느 초등학교 학부모들이 와서 민들레를 마음대로 캐갔는데 이제는 당당히 막을 것이다. 내가 애써 키운 민들레를 싹쓸이 해가도록 놓아둘 수는 없다.
범초산장은 겨울이 다가왔는데도 무엇이라도 하나 더 주려고 애를 쓴다. 어머니 품처럼 따스한 범초산장이다.
공사 북새통에도 파랗게 살아 있는 긴병꽃풀
싹을 내밀고 있는 차이브
아직도 꽃을 피우고 있는 미국채송화 – 지금이 가을이야 겨울이야?
시각장애를 무릅쓰고 화명동 글나라에 다니며 동화를 열심히 쓰고 있는 정복연씨. 그 노력이 보기 좋아 내가 원고를 출력하여 새농민에서 모집하는 중편 동화 부문에 응모해 주었다. 바람도 쐴겸 기쁜 마음으로 우체국에 다녀왔다. 복연씨, 이제 시작이야. 열심히 해서 끝을 보기 바래. 영수증을 전해줄 테니까 게을러질 때 이거 보고 다시 의욕을 가져. 행운이 있기를 빌어! (*) |
'동화창작'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2016년 글나라 동화창작교실 봄학기 수강생 모집 (0) | 2016.02.22 |
---|---|
[스크랩] (凡草텃밭 이야기 680회) 제자들이 열어 준 출판기념회 (0) | 2015.12.28 |
[스크랩] 김재원 선생님 동화집 <<천개줄 아저씨>> 발간을 축하합니다!! (0) | 2015.11.28 |
[스크랩] (凡草텃밭 이야기 672회) 최고의 생일 선물 (0) | 2015.11.15 |
[스크랩] 2015년 가을학기 동화창작교실 수강 신청 안내 (0) | 2015.08.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