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집

[스크랩] (凡草 텃밭 이야기 709회) 선녀님, 물 좀 뿌려주세요!

凡草 2016. 5. 26. 14:51



( 凡草 텃밭 이야기 709회 )


2016년 5월 25일, 수요일, 맑음


선녀님, 물 좀 뿌려주세요!


 지난 월요일에는 범어사에서 석산리 텃밭까지 걸었다.


 여러 번의 시행착오 끝에 범어사에서 석산리 텃밭까지 가는


 가장 짧은 길을 찾아내었다.


 처음에는 5시간 30분이 걸렸는데 지금은 4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그래서 종종 등산도 하고 텃밭도 돌볼겸 이 코스를 걷는다.


 산길을 걷다가  민백미꽃을 여러 포기 보았다.


 5월 하순에는 들꽃을 보기가 힘든데


 민백미꽃을 보니 숲이 갑자기 환해졌다.





 숲에는 사람주나무가 지천으로 널려 있었다.


 사람주나무는 우리나라에서 유달리 양산에 많다.


 보기 드문 박쥐나무도 보았다.


 그전에는 <오이순 나무>라고 불리는 고광나무를 보아도 몰랐는데


 이젠 고광나무도 알아볼 수 있었다.


 내가 모르는 나무를 알아보기 위해 계속 노력한 덕분이다.


 뜨거운 물에 데쳐서 나물로 먹어보려고


 사람주나무, 박쥐나무, 고광나무, 다래나무 잎을 조금씩 땄다.


 잘 모르는 나무에 열매가 달려 있어 무슨 나무일까 한참 생각하다 보니


 아무래도 딱총나무 같았다.


 잎을 눈여겨 보니 세울한테 들은 기억이 났다.


 딱총나무는 접골목이라고도 하는데,


 뼈가 부러진 환자한테 좋은 나무다.


 신경통, 복막염, 부종, 관절염 등에도 효능이 있다.





 꽃이 바람개비처럼 생긴 마삭줄도 보았다.


 해마다 이맘때만 볼 수 있는 꽃이다.


 누가 뭐라고 하지 않으니 한 해라도 거르고 갈 법도 하건만


  늘 같은 자리에서 변함없이 꽃을 피운다.


  그래서 자연이 신기하고 위대하다.





 석산리 텃밭에 도착하여 베낭을 벗어놓고


 상추 씨와 바질 모종을 심으려고 밭을 정리했다.


  범어사 입구에 있는 종묘상에 상추씨를 사러 들어갔다가 


  스위트 바질을 보았다. 막내딸 봉현이가 좋아하는 허브다.


  봉현이는 다른 식물에는 관심이 없는데 상추와 바질은 좋아한다.


  막내딸이 생각나서 바질을 세 포기 심기로 했다.


  양파가 자라고 있는 곳을 조금 뽑아내고 심을 곳을 마련했다.


  양파는 아직 알이 굵지 않았지만  상추를 심기 위해 쬐금만 파냈다.


  석산리 텃밭은 물이 귀하기 때문에 비가 오기 전날에 무엇을 심어야 한다.


  비가 오지 않을 때 심으면 완전히 헛방이고,


  비가 오고 난 뒤에 심어도 모종이 말라죽기 쉽다.


  선녀님을 하인으로 부려 먹으려면 비 오기 전날 모종을 심으면 된다.


  선녀님은 내가 일 시키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겠지만


  어쩔 수 없이 내 밭에 물을 준다.


  기상케스터 예보는 하느님 명령과도 같다.ㅎㅎ


  월요일 오후에 상추씨를 뿌리고 바질 모종을 심었더니


  화요일 하루 종일 선녀님이 물뿌리개로 물을 주었다.


  선녀님 시급은 얼마나 쳐주어야 할까?


  아침 9시부터 오후 7시까지 물을 뿌렸으니 10시간이나 일을 한 셈이다.


  선녀님 알바를 고용한 하늘나라 편의점 사장이 된 기분이다.


  오늘 텃밭에 가보니 바질이 얌전히 자리잡았다.


  상추씨도 땅 위로 나오려고 꿈을 한창 꾸고 있을 것이다.




  황금연못에 출연한 것을 계기로


  부산 공덕초등학교 28회 졸업생들과도 연락이 닿았다.


  박윤규와 초등학교 때 같이 공부한 친구들이다.


  장준용이 제일 먼저 찾아왔고


  그 뒤를 이어 양미경과 윤은진이 찾아왔다.


  은진이는 41년만에 나를 처음 본다며


  장미꽃을 40송이 사왔다.


  나는 미안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해서 농담을 했다. 


  "50송이 받으려면 10년 더 기다릴 걸."


  "선생님, 그러면 너무 늦잖아요."


   범초산장에서 장준용, 양미경, 윤은진과 지나간 시절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다.

  



   내가 몸이 약해 고생하던 시절이었지만


   제자들이 좋은 선생님으로 기억해주니 고마울 따름이다.


   준용이는 5학년 때 장난을 치다가 나한테 먼지떨이로 머리를 맞아서


   피가 조금 난 일이 있었다.


   준용이 아버지가 중요한 머리를 때렸다며 편지를 석장이나 써서 갖다주는 바람에


   그 편지를 지금까지도 내 일기장에 보관하고 있다.


   그 뒤로는 아이들을 때일 일이 있더라도 머리는 반드시 피하고 때렸다.


   나를 크게 반성하게 만든 사건이었다.



   내 텃밭에는 온갖 작물이 다 자란다.


   바디나물, 방풍, 고려엉겅퀴(곤드레), 까마중, 배초향, 보리수, 꾸지뽕, 뽕나무,


   아스파라거스, 삼채, 무궁화, 옥수수 등....


   단삼이 보라색 꽃을 피웠는데 볼만하다.









  텃밭에 가면 이것 저것 들여다보고 풀도 뽑아주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나에겐 작은 식물원과 같다.


  자전거를 타고 가니 운동도 되고 볼거리도 있어서 좋다.


  한참 일을 하고 나서 돌아올 때는 먹을 것을 조금 가져올 수 있으니


  일석삼조다.


  밭은 겨울만 빼고는 언제나 나를 빈손으로 돌려보내지 않는다.






  밭을 유심히 둘러보는데 못 보던 식물이 눈에 띄었다.


  이게 뭐지?


  자세히 살혀보니 뜻밖에도 박쥐 나무가 올라오고 있었다.


  이상하다. 이걸 내가 언제 심었지?


  박쥐나무 꽃이 귀걸이처럼 이뻐서 꼭 한 그루 심고 싶었는데


  텃밭에 있다니 참 신기했다.



  하늘에서 선녀님이 나 모르게 살짝 심어 놓은 건가?



  어제는 토마토가 공짜로 들어왔다.


  화명동 오피스텔 806호 아주머니가 그전에 커피 한 잔을 대접받은 걸 잊지 않고


  직접 키운 토마토를 갖고 왔다.


  언젠가 복도에서 서성이는 아주머니를 보고 들어오시라고 한 뒤에


  커피 한 잔을 대접한 일이 있는데


  아주머니는 세를 내어준 집에 찾아왔다가 세입자를 못 만나고 돌아서려다가


  나를 만나 커피를 얻어 마시고 갔다.


  작은 친절이 토마토로 돌아왔다.



 


  내가 항상 선한 마음으로 살고


 텃밭도 열심히 가꾸니까 계속 좋은 일이 생긴다.


  감사는 감사를 부른다.


  작은 일이라도 감사하며 살아가야겠다.


  오늘 하루도 참 감사하다.  (*)





 

출처 : 글나라
글쓴이 : 凡草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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