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3월 8일, 수요일, 맑음
(凡草산장 이야기 767회) 회 먹고 노루귀도 보고.....
동그라미 친목 계원들이 달마다 범초산장에 모여서 식사를 하고 놀았는데, 이번 3월에는 모처럼 봄맞이 나들이를 하러 해운대 미포로 갔다. 미포 한마음 회센터 동백 코너에 회를 주문해서 먹었다. 주 메뉴 회가 나오기 전에 다른 집에서는 다 먹지도 못할 여러 반찬이 나와서 배만 부르게 하는데 이 집은 4인 기준 8만 원에 해산물이 푸짐하게 나와서 좋았다. 모두들 이렇게 실속있고 알차게 나오는 집은 처음 보았다며 감탄했다. 우리 모임은 6명이라 술값과 밥, 매운탕까지 포함하여 식사비가 합계 16만 원 정도 나왔다. 회를 배부르게 먹고 해운대 바다 풍경도 봐서 좋았다. 꿩 먹고 알 먹는 격이다. 내가 해운대에 14년을 살았어도 바다를 보러 간 적이 드물었는데 양산에 살고 있으니 바다를 보고 싶어서 걸었다. 바닷가 모래밭을 거닐며 옛추억을 되뇌어 보았다.
40년 전에 아내와 해운대 바닷가에 와서 청혼한 일이 있었다. 비록 부족한 점이 많은 사람이지만 서로 함께 살면 모자라는 곳을 서로 채워줄 수 있을 거라며 같이 살자고 했다. 어머니와 조카 둘을 데리고 있었는데도 아내가 결혼을 승락해주어서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나만 보고 호감을 가진 처녀들이 사귀려 들었다가 정작 딸린 가족을 보고는 머리를 흔들고 달아났다. 그때 내가 어머니와 조카 둘을 데리고 살아야 한다는 말을 하지 않고 숨겼다면 혹시 결혼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나는 거짓말을 하기는 싫었다. 그래서 솔직하게 말했더니 다들 슬금슬금 물러갔다. 지금 생각하면 그게 오히려 겉만 보고 판단하는 처녀들을 골라내는 계기가 된 것 같다. 고집 센 남편을 만나 아내가 마음 고생은 했을지 몰라도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은 없었고, 내가 막내라 제사 지낼 일도 없었다. 아내는 어머니가 돌아가시기까지 7년 정도 고생했지만, 그 뒤로는 세계 여행도 많이 다니며 전업주부로 편하게 살았다. 나이를 먹으니 아내를 더 위해주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바다를 보며 아내 손을 꽉 잡았다. 어두운 밤이라면 진한 포옹도 했을 텐데.... ㅎㅎ
탁 트인 바다가 나에게 말한다. 속 좁게 살지 말고 넓은 마음으로 털털하게 살으라고. 지나고 나면 별 거 아닌 일로 고민 말고, 이래도 한 세상 저래도 한 세상이니 매순간 감사하고 기뻐하며 살아가라고.
때가 되니 명이나물이 작년 그 자리에서 올라온다. 많은 수가 아니라서 잎을 뜯어 먹지는 못하고 그냥 눈구경만 하는데 보는 것만으로도 좋다. 내가 시킨다고 해도 나오지 않으면 그뿐인데 저렇게 초록색 깃발을 흔들며 해마다 나오니 반갑다. 10포기가 20, 30포기로 더 늘어나면 좋겠지만 그냥 저대로도 좋다. 그 자리에서 해마다 올라와주는 것만으로도 만족한다. 마찬가지로 이번에 2017년 봄학기 동화교실을 개강했는데, 글 한 편 못 쓰더라도 꾸준히 나오는 제자들을 보면 미덥다. 글 못 쓴다고 부끄러워 할 필요가 없다. 글을 쓰지 못해도 귀동냥을 하면 어느 면으로든 도움이 될 것이다. 안 나오는 사람보다 그 자리를 채워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사람이 적어 썰렁한 교실보다 많이 나와서 말을 들어주고 웃어주면 얼마나 좋은가! 엉겅퀴 군락지에서 뿌리를 캐어 범초산장과 석산리 범초텃밭에 심었다. 작년에 엉겅퀴 꽃으로 술을 담아보니 순하고 부드러워서 마시기에 좋았다. 다리 관절과 간에 좋은 엉겅퀴라 작년보다 더 많이 심었다.
금정산을 등산하다가 늘 가던 길이 아닌 새로운 길로 간 적이 있다. 잠시 길을 잃고 헤맸는데 거기서 다래 뿌리를 발견했다. 다래가 많은 곳이었다. 몇 뿌리 캐다가 집에 놓아두었는데 깜빡 잊고 2주일이 지났다. 살아날지 모르지만 시험삼아 범초산장에 가져다가 심었다. 때로는 길을 잃고 헤매는 것도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새로운 경험,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범초산장에 매화 꽃이 확 피어났다. 두 그루는 흐드러지게 피었는데, 아직 한 나무는 겨울잠을 자고 있다. 똑같은 산장에서도 나무마다 피는 시기가 다르다. 사람마다 개성이 다르듯이 나무도 그렇다. 남 따라 하지 않아도 자기만의 개성대로 살면 된다. 여태껏 잠자는 매화나무야, 재촉하지 않을 테니 천천히 꽃을 피워라. 안 피운다고 야단치지도 않을 거고. 작년 이맘때 양산 중부산성에 노루귀를 보러 간 적이 있었다. 올해도 피었을까 기대하며 찾아갔다. 범초산장과 범초텃밭에 엉겅퀴를 심고 가느라 오후에 도착했더니 활짝 핀 노루귀가 드물었다. 오전에 많이 피는 건가? 겨우 몇 포기 발견하고 사진을 찍었다. 이거라도 헛탕은 아니라서 반가웠다. 이야, 올해도 노루귀를 보았다.
산을 더 탈 수 있었는데, 박지현 선생님 사모님이 폐암으로 돌아가셨다는 부고 소식을 들어서 동아대학교 병원 장례식장으로 갔다. 소반과 같이 지하철을 타고 갔다. 문상을 하고 여러 문우들을 만났다. 선 용 선생님, 솔마 선생님, 정재분님, 소산 등.... 사람이 나이들면 언젠가는 죽을 테니 살아 있을 때 잘 해야 한다. 문상을 끝내고 소산의 안내로 영주동 멋진 카페에 가서 차를 마셨다. 북항대교의 멋진 야경도 감상했다. 2017년 글나라 동화교실 해님반 개강을 3월 7일에 했다. 지난 주 3월 2일에는 신세계와 글나라 달님반 개강을 했고, 남은 해님반마저 개강을 했다. 올해는 해님반에 신입 회원들이 많이 와서 자리가 다 찼다. 최순기씨가 다리 수술을 한 영혜씨에게 꽃다발을 건네 주었고, 신입 회원들에게도 후리지아 꽃을 선물로 주었다. 교실 안에 그윽한 꽃 향기와 더불어 사람의 향기도 넘쳐 났다. 고마운 제자 덕분에 한층 더 즐거운 개강식 날이 되었다. 점심을 같이 먹고 이야기를 나누다가 선암사 매화 구경을 가자는 말이 나왔고, 즉석에서 안도현 시인의 시를 영혜씨가 낭송했다. 수업 시간도 좋지만 밥 먹고 이야기 나누는 시간도 행복하다. 올 한 해 즐거운 일이 많도록 나도 힘을 보탤 것이다. (*) |
'동화창작'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범초산장 이야기 795회)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들 (0) | 2017.07.22 |
---|---|
[스크랩] KB창작동화제 작품공모전 수상작 발표 == 미스포터 유영주 수상을 축하합니다! (0) | 2017.05.13 |
[스크랩] 2017년 봄학기 글나라 동화교실 회원을 모집합니다! (0) | 2017.02.17 |
[스크랩] 2017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동화 당선을 축하합니다! ==> 내 다래끼 / 성주희 (0) | 2017.01.02 |
[스크랩] (凡草산장 이야기 750회) 2016년 글나라 동화교실 종강하던 날 (0) | 2016.12.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