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집

[스크랩] (범초산장 이야기 778회) 소쩍새 우는 숲에서 골담초 꽃밥을 먹고...

凡草 2017. 4. 22. 19:10

 

 

2017년, 4월 22일, 토요일, 흐렸다가 맑음

 

(범초산장 이야기 778회) 소쩍새 우는 숲에서 골담초 꽃밥을 먹고...

 

금요일 오후 5시 수업에 오던 아이가 오지 않아

화명동에서 일찍 출발했다.

다른 때는 어두운 뒤에 범초산장으로 들어왔는데

일찍 나섰기 때문에 환할 때 들어갔다.

보너스를 받은 기분이다.

어제도 피난민처럼 가방을 메고 손에는 모종 상자를 들었다.

꽤 무거웠지만 힘들지 않았고 소풍 가는 기분이었다.

 

 

 

아내가 차를 몰고 올 때 부탁해도 되지만

운동 삼아 구포 시장까지 가서 산 모종을 직접 들고 왔다.

이런 나를 보고 아내는 편한 길을 놓고 항상 둘러간다고 하지만

되도록이면 몸을 많이 쓰고 고생을 마다하지 않아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죽으면 썩어 없어질 몸이니 살아 있는 동안에 아끼지 말고 써야 한다.

 

 

곧 어두워지기 때문에 환할 때 반찬거리를 준비했다.

제일 편한 것이 머위 나물이다.

뜯어서 씻고 데치기만 하면 끝.

이제는 잎이 접시만큼 커졌다.

생선도 복잡하게 요리할 거 없이 쪄서 먹으면 제일 간편하다.

숲속 산장에서 소박한 밥상을 차려서 먹었다.

 

 

밤 10시가 지난 뒤에 자려고 누웠는데

반가운 소쩍새 소리가 들렸다.

지난 주에는 들리지 않더니

4월 하순이 되어야 나타나는 모양이다.

 

고요한 산장에서 소쩍새 소리를 들으니

여기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파트에 있어야 텔레비전 소리뿐이니

조용한 산골에서 자연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것도 행복이다.

소쩍- 소쩍-

꿈길에서도 들으라고 계속 울고 있다.

고마운 소쩍새여~

 

 

아침에 일어나니 초록 숲이 나를 맞는다.

배롱나무도 잎이 늦게 나오는 편인데

이제 잎을 내밀기 시작했다.

매화나무에 비하면 두 달이나 늦게 나오지만

그러고도 백일 동안 꽃을 피우니

지각생이라고 공부 못하란 법 없다.

 

옥천에 있는 이가을 선생님 마당에서 얻어 온 <꽃범의 꼬리>가 자리를 잡았다.

동화가 안 써질 때는 이걸 들여다보며 마음을 다잡아야겠다. 

 

아침은 골담초 꽃을 따서 꽃밥을 해 먹었다.

일 년에 한 번, 이때 해먹을 수 있는 호사다.

적막한 산골에 들어온 대신 이런 기쁨을 누린다.

반찬은 역시 여러가지 나물인데,

삼백초 줄기가 올라와서  초장에 찍어 먹었다.

특이한 향이 입안 가득 맴돈다.

 

닭장을 만들어서 닭을 키우려고 했는데

잠시 보류가 되었다.

하필 노는 땅이 계곡 바로 옆이라

거기에 닭장을 만들면 물이 오염된다고 해서

만들 수 없게 되었다.

언제가 될지는 몰라도

계곡에서 떨어진 곳에 다시 만들 생각이다.

지금은 처음 계획이 가로막혔지만

그런다고 포기하지는 않을 거다.

막히면 돌아가리라.

당장 안 될뿐이지 영원히 안 되는 것은 아니다.

 

이웃에 있는 과수원 집에서 닭장을 만들었길래

구경하러 갔다.

철제로 닭장을 만들어 놓았고

철망 울타리를 넓게 쳐 놓았다.

음, 저런 식으로 만들었구나.

솜씨가 대단해서 그대로 따라할 수는 없지만

나는 내 방식대로 해볼 것이다. 

 

고추와 가지, 오이, 토마토 모종을 심었다.

고추 42포기, 가지 24포기, 호박 10포기, 오이 9포기는

지난 월요일에 비가 오는 날

비옷을 입고 두구동 입구까지 걸어가서 사다 심었다.

비옷에 비가 떨어지는 소리를 들으며 일했는데

음악처럼 들렸다.

맑은 날을 기다려서 심어도 되지만

기왕이면 비가 올 때 심어야 더 잘 산다.

 

2만 2천 원 들여서 모종을 심었는데

이걸로 여름 몇 달이 즐겁다.

고추와 가지가 줄줄이 열리는 상상을 하면

일하는 것이 전혀 힘들지 않았다.

 

오늘은 토마토 모종 14포기와, 오이 모종 3포기를 추가로 심었다.

채소 모종 심는 일은 생각보다 잔손이 많이 간다.

그냥 심기만 하면 끝이 아니다.

모종을 심고 나서 지지대를 세워 주어야 하고

모종을 지지대에 끈으로 일일이 묶어주어야 한다.

단단히 묶어 놓지 않으면 바람에 흔들려서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죽을 수도 있다.

 

사람도 무슨 일을 할 때 마음이 흔들리면 오래 하지 못하고

쉽게 포기하듯이 모종도 마찬가지다.

바람에 흔들리지 않게 붙잡아 주어야 한다.

솜씨가 부족해서 얼기설기 엮었지만

채소들은 내 솜씨를 타박하지 않는다.

 

화명동 부산은행 담벼락 밑에서 장사하는 할머니한테 사서 심은 완두콩이

제법 자랐다.

나는 심어만 놓고 유채꽃 보러, 서산으로 놀러 다녔는데,

완두콩은 꼼짝하지 않고 컸다.

나보다 끈기있는 완두콩이다.

완두콩에게 경례!

 

 토마토 모종을 심어 놓고

 저수지에 왕우렁이를 잡으러 갔다.

 많이 잡아서 범초산장 미니 연못에 넣어두려고 갔더니

 몇 마리 없었다.

 네 마리라도 잡아서 미니 연못에 넣어주었다.

 저게 종자가 되어 번식이 되면 좋겠다.

 우렁이 쌈을 싸 먹을 날이 오면 좋을 텐데...

 참 꿈도 야무지다..ㅎㅎ

 

 올해도 어김없이 더덕 줄기가 쏘옥 올라왔다.

 작년에 있던 그 자리에서.

 꽃이 참 이쁘고 향도 좋은 더덕!

 

 떠나간 사람은 다시 돌아오지 않아도

 이 더덕만은 변함이 없다.

 그래서 나는 이 더덕은 캐서 먹지 않는다.

 먹으려고 심어둔 더덕은 뒷밭에 따로 있다.

 너도 범초산장을 사랑하는구나.

 나도 그렇다.

 가족이 좋아도 일주일에 반은 여기서 살 것이다.

 산골에 혼자 와서 지내고 있으니

 내 벗이 되어다오. 더덕아~~

 

 으름꽃이 피었다.

 이 꽃을 보기 위해 으름 뿌리를 구해서 심었는데

 몇 년 기다린 보람이 있다.

 마음만 먹으면 으름 꽃밥도 해먹을 수 있겠다.

 그것뿐이랴. 딸기꽃밥, 하얀 민들레꽃 밥, 금낭화꽃밥 등....

 범초산장에 오면 할 게 참 많다.

 오늘도 일하다가 하루 해가 다 갔다.

 혼자 있으면 적적해야 할 텐데 컴퓨터 들여다 볼 시간도 없다.

 

 창원에 사는 김임지씨가

 제 9회 웅진주니어 문학상 수상 작품이 실린 책을 들고 찾아왔다.

 - <말주머니>

 

 이 책에 김임지씨가 우수상을 받은 <아롱이는 똥개다>가 들어 있다.

 책과 오리빵까지 들고 와서 감사했다.

 해님반 동화교실 후배들과 밥을 같이 먹고 갔다.

 앞으로도 좋은 동화 많이 쓰기를 바란다.

 

 

 지난 3월 4일에 찍은 가족 사진이 나왔다.

 6월에 있을 봉현이 결혼식을 보기 위해

 미국에 있는 큰딸 가족도 곧 나올 예정인데

 큰딸 가족은 사진 찍는 날짜를 맞추지 못해 같이 찍지는 못했다.

 

 

 

  * 2017년 4월 14일 (금요일) 부산일보에 발표한 글

 

    샘물은 퍼내도 퍼내도 끝이 없어!

 

       <제후의 선택>
                                    김태호  / 문학동네    
 
  개가 전봇대에 오줌을 누는 이유는 무엇일까?

상식적으로 답을 하면 자신의 영역을 표시하기 위해서지만,

<제후의 선택>에서는 생각지도 않은 답이 나온다.

개와 개가 서로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서란다.


- 이사, 깜이, 까만 털, 동그랑 땡, 거울, 껌

 전봇대에 갈겨 놓은 오줌 냄새를 맡아보면 이런 암호가 숨어 있다니!

 이걸 해석하면 이렇다.

<깜이라는 개가 이 동네로 이사를 왔다.

 이름처럼 까만 털에, 동그랑땡만큼 커다란 눈과, 거울처럼 반질반질한 코를 가졌는데,

 껌처럼 딱 붙어 있을 여자 친구를 구한다.>


 이렇게 자상한 편지를 읽고 마음이 흔들리지 않을 수 있겠는가!

 주인공 ‘우리’는 전봇대에 <남자, 양복바지>라고 답을 남겨 놓는다.

 그게 인연이 되어  개들이 사랑을 하고 혼자 살던 주인들도 짝을 만난다.


 이 책은 단편 모음집인데, 제목과 같은 <제후의 선택>도 퍽 창의적이다.

 부모가 갈라서는 바람에 제후라는 아이가 어느 쪽을 따라갈까 고민하다가

 똑같은 제후가 한 명 더 생긴다는 내용이다.

 어찌 보면 황당하지만,

 밤에 손톱을 버리면 쥐가 먹고 사람이 된다는 전래동화를 바탕에 깔고 있어서 수긍이 간다.

 <남주부전>은 옛이야기를 요즘 동화에 접목시키는 사례를 보여주기 때문에

 어린이뿐 아니라 동화작가들에게도 큰 도움이 된다.


 수많은 동화책이 쏟아져 나오고 있어도

 창의력만 발휘하면 얼마든지 새로운 이야기를 쓸 수 있다.

 우리 머리속에는 신비한 샘이 숨어 있다.

  창의력이 녹아있는 샘이다.

  자주 쓰지 않으면 금방 말라버리지만 부지런히 퍼내면 끝없이 나온다.

  어린이들에게 동화책을 권하는 이유도 창의력 샘을 퍼내기 위해서다.    

 

                                            김재원 (동화작가)

 

 

출처 : 글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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