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쥐의 헌혈 >
사람들은 박쥐를 좋지 않게 본다.
박쥐는 '쥐'가 갖고 있는 부정적인 이미지에다,
새도 아니고 동물도 아닌 애매함, 밤에 날아다니는 야행성이
음흉한 이미지로 굳어져 박쥐를 좋지 않은 쪽으로 보는 것 같다.
박쥐를 직접 보지 못한 사람들이 많고,
보았다해도 환한 대낮에
잔뜩 웅크리고 있는 모습을 본 경우가 많을 것이니
박쥐는 자신의 본래 모습과는 다르게 오해를 받고 있는 셈이다.
날짐승과 집짐승이 싸움을 할 때 자신에게 유리한 편을 고르다가
나중에는 어느 편에도 속하지 못했다는 이솝의 이야기가
박쥐에 대해 결정적인 누명을 뒤집어씌운 것인지도 모른다.
동물학자 최재천 교수가 쓴
「생명이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라는 책에서
박쥐에 대한 이야기를 재미있게 읽었다.
자연계에서 헌혈을 할 줄 아는 유일한 동물은
놀랍게도 흡혈박쥐라는 것이다.
지구상에 사는 박쥐의 대부분이 과일이나 곤충을 먹고 사는 반면,
흡혈박쥐들은 실제로 열대지방에 사는 큰 짐승의 피를
주식으로 살아간다고 한다.
「드라큘라」에 나오는 것처럼 목을 뚫어 피를 마시는 것이 아니라,
잠을 자고 있는 동물의 목 부위를 발톱으로 긁어 상처를 낸 뒤
거기서 스며 나오는 피를 핥아먹는다는 것이다.
흡혈박쥐는 신진대사가 유난히 활발하여
하루 이틀 피를 마시지 못하면 기진맥진하여 죽고 만다.
매일 밤마다 피를 마실 수 있는 짐승을 못 만난 흡혈박쥐들은
그냥 집으로 돌아오게 되는데,
'헌혈'는 바로 그 때 이루어진다.
피를 배불리 먹고 온 박쥐들이
배고픈 동료들에게 피를 나누어주는 것이다.
동굴 천장에 거꾸로 매달려 서로 피를 게워내고 받아먹는다.
대개는 자기 가족이나 친척끼리 피를 주고받지만,
늘 그런 것만은 아니어서 가까이 매달려 있는 다른 박쥐들에게도
피를 나누어 준단다.
이렇게 피를 받아먹은 박쥐는 그 고마움을 기억했다가
뒷날 은혜를 갚는다 하니,
박쥐를 함부로 욕할 것은 아니라고 본다.
인간에게 부정적인 동물로 인식된 채
동굴에서 살아가는 박쥐가 서로 피를 나누는 정을 지녔다는 게
참 신기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