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집

161편 +++ 두 개의 충전기

凡草 2007. 6. 20. 22:32
 
   2007년 6월 17일  일요일 구름 많이 낌
   < 두 개의 충전기 >
 <산가막살 나무>

<이스라지>
금요일 저녁에 부부 모임을 당감동에서 가진 뒤에 차를 타고 노루실로 들어갔다. 화실이 음식점에서 모아준 고기를 들고 가서 진이와 강아지 하늘이(하늘 나라로 간 강아지들을 생각해서 이런 이름을 지었음)에게 주었더니 아주 좋아하였다. 그 동안 마른 사료만 먹었는데 모처럼 별식을 주니 아마 자기들 생일인 줄 알았으리라. 일주일만에 갔는데도 화단의 풀은 껑충 자라 있었다. "아유, 못 살아. 또 풀이 몰라보게 자랐네." 아내는 마구 자란 풀을 벨 것이 걱정되고 어질러진 집안이 신경 쓰이는 모양이었다. 나는 시골에 오면 모든 것이 즐거운데, 아내는 비싼 기름값과 고속도로 통행료, 귀찮은 풀깎기, 시골에까지 와서 해야 하는 자질구레한 일들로 인해 못마땅한지 툴툴거리다가 나와 한바탕하였다. 나는 다른 잔소리는 얼마든지 참고 들을 수 있는데 시골집에 대해 경제적인 이유를 들어가며 따지는 것은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그래서 한 번 더 시골집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듣기 싫은 소리를 하면 사무실을 정리하고 혼자 시골집으로 들어가겠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진이와 하늘이>
'화성에서온 남자와 금성에서온 여자'라는 책도 있듯이 원래 남자와 여자는 사물을 바라보는 방식이 많이 다르다는 것을 인정한다. 아내의 입장으로는 적게 주는 생활비로 살림을 꾸려가는 것이 힘들고, 경제적으로 아무런 도움도 안 되는 시골집을 갖고 있는 것이 사치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돈은 무엇 때문에 버는가? 1억이 있으면 무엇을 하고 2억이 있으면 무엇을 할 것인가? 내가 좋아하는 것에 투자를 하는 것이 가장 큰 투자가 아니고 무엇인가? 나는 도시에서 많은 돈을 지니고 풍족하게 사는 것보다 가난하게 살더라도 시골 생활을 하고 싶다. 아내는 우리가 자꾸 나이를 먹어 가니까 미래가 불안스럽고, 가진 돈이 적으니까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걱정이 드는 모양인데 나는 없으면 없는 대로 살면 된다고 생각한다. 도시 생활은 돈으로 모든 것이 결정되지만, 자연과 벗삼아 살아가는 시골 생활은 돈이 부족해도 걱정할 게 없다. 아파트 관리비가 있는 것도 아니고 푸성귀나 반찬 거리는 직접 길러서 먹으면 된다. 내가 도시에서 지금까지 아등바등 살아온 것은 결국 시골에서 한 번 살아보겠다는 몸부림인지 모르겠다. 아내가 반대한다고 슬그머니 접어 버릴 것 같으면 아예 시작을 하지 말았어야 할 것이다. 아내는 내가 늘 일을 벌여만 놓고 나중에는 뒷감당을 못한다고 핀잔하는데, 내가 시골 생활을 하다가 싫증이 나서 도시로 나가려고 한다면 그건 그 때 다시 생각할 문제라고 본다. 실제로 부딪쳐 보고 나서 마음을 바꾸는 것과 행동해보지도 않고 마음을 정하는 것은 천지 차이일 것이다. 인생은 도전의 연속이다. 비록 실패를 할 것이 뻔하더라도 한 번 도전해 보고 싶은 것이 내 생각이다. <석류나무꽃>
해운대에서 학원을 하다 화명동으로 옮긴 것도 어떻게 보면 실패를 무릅쓴 무모한 행동이었다. 혼자 밀양에 가서 살 것도 아니면서 집 가까운 해운대를 떠나 길 멀고 낯선 화명동에 학원을 차린 것은 밥 빌어다 죽 쑤어 먹는 꼴이었다. 하지만 나는 후회하지 않는다. 집에서 15분 정도 걸어서 학원으로 출퇴근할 때는 책을 읽을 시간이 없었는데 지금은 오히려 지하철 안에서 책을 많이 읽고 있다. 한 번에 1시간 10분 정도 지하철을 타기 때문에 오고 가는 3시간 20분은 고스란히 책을 읽는 시간으로 쓸 수 있다. 지하철 요금이 한 달에 5만 원이 넘는데 그 돈보다 더 가치있는 정신의 양식을 얻으면 된다고 생각하니까 차비가 아깝지는 않다. 그 동안 학생이 늘지를 않아서 고전을 면치 못했는데 요즘 들어 부쩍 늘어가고 있다. 내가 가르치는 방식이 이곳 학부모들에게도 인정 받는 듯하여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아내에게 생활비를 넉넉하게 못 주어서 미안했는데 이대로 나가면 경제적으로도 별 문제가 없겠다. <로즈마리>
노루실에 가서는 로즈마리 세 포기를 거실 앞 화단에 심었다. 얼마 전에 울산수목원에 가서 로즈마리를 길가에 빽빽하게 심은 것을 보았는데 향기가 참 좋았다. 그래서 우리 마당에도 세 포기에 5천 원 주고 사다 심었다. 아직 키가 작아서 몇 그루 더 사다 심을 작정이다. 낮에는 초코파이 이은숙씨가 혼자 차를 몰고 와서 점심을 먹고 뽕잎을 같이 땄다. 나는 뽕잎차를 만들기 위해 땄고 은숙씨는 천연 비누를 만들기 위해 땄다. 뽕나무는 집안에도 있고 밖에도 많아서 입맛 내키는 대로 여기 저기서 땄다. 오늘 일요일에는 아내와 등산을 같이 갔다. 아내가 어제는 저기압이었는데 오늘은 환한 얼굴이다. 아내의 좋은 점은 화를 내었다가 금방 풀어버리는 것이다. 나도 아내처럼 화낼 일이 있으면 후딱 끄집어 내고 빨리 풀려고 한다. 오늘 간 곳은 통도사 뒷산 영취산이다. 통도 환타지아 앞으로 들어가서 지산리 마을로 갔다. 거기에 차를 대어 놓고 산을 올랐다. 숲을 지나가는데 단풍취가 곳곳에 있었다. 지나갈 때는 몰랐는데 갔다 와서 세울에게 물어보니 단풍취란다. 에이 그런 줄 알았다면 제법 땄을 텐데... <단풍취 >
영취산에 올라보니 숲도 울창하고 안개가 쫘악 끼어서 환상적인 경치였다. "야아, 참 좋구나! 신선이 따로 없네!" 아내와 나는 높은 산에 오길 잘했다고 기뻐하였다. 점심을 맛있게 먹고 내려왔는데 내려오는 길은 험해서 고생을 했지만 게임하듯이 즐기며 내려왔다. 이런 게 바로 사서하는 고생이 아닐까? 아내가 아픈 동안에는 등산을 같이 못했는데 오늘은 모처럼 등산다운 등산을 해서 몸을 제대로 풀었다. 밑에서 산꼭대기까지 올라가는데 약 두 시간이 걸렸는데 도시에서 다 빠져 나간 내 몸과 마음의 에너지를 두 시간 동안 충전하였다. 내려오는 길은 별로 힘이 들지 않으니 충전하는 느낌이 들지 않았고, 땀흘리며 올라가는 동안에 충전한 것 같다. < 통도사 영취산에서... >


또 하나 내 에너지를 충전하는 것은 노루실의 시골집이다. 산은 아무리 높아도 서너 시간밖에 충전할 수 없지만 시골집은 밤새도록 충전할 수 있다. 대개 10시간 이상은 너끈히 충전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시골에만 갔다 오면 기운이 펄펄 난다. 노루실 대나무와 온갖 야생초에 강한 전류가 찌르르 흐르는 것일까? 늘 충전해도 전류가 남아 내 귓가에 지지지- 하는 소리가 들린다. <통도사 극락암 연못의 수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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