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월 26일 토요일 맑음
동화지기 겨울 수련회
달마다 한 번 동화지기 공부 모임이 있는데
이번 달에는 겨울 수련회겸 눈구경을 하러 가기로
했다.
장소는 덕유산으로.
하지만 차편이 문제였다. 승용차를 갖고 가야 편하게
갈 수 있지만, 눈길이 위험해서 차를 갖고 가는 대신에
관광버스를 이용하기로 했다.
총무를 맡은 배유안이 관광 버스를 예약한다고 해서
다들 그렇게 알고 오전 8시 동래 지하철 역으로 나갔다.
공부하는 날은 지각을 해도 여행날은 제일 먼저 나간다는
말이 있는데, 나역시 여행간다고 생각하니 기대가 되어서
그런지 새벽에 두 번이나 깨었다.
잠을 설쳐서 다른 날보다 피곤하긴 했지만 6시 10분에
일어나 세수를 하고 짐을 꾸렸다.
관광 버스를 타고 간다니 많이 걸을 것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덕유산이 1610미터니까 옷은 단단히 챙겨야 했다.
장갑을 2켤레 끼고 양말도 2켤레를 신었다.
웃옷도 어찌될지 몰라서 한 벌을 더 넣었다.
눈길이니 아이젠은 필수품. 이것도 회원 중에 깜빡 잊고
안 가져올 사람을 대비해서 한 개 더 넣었다.
스틱은 안 넣어도 큰 문제는 없고 밥은 배유안이 준비해
온다고 했으니 됐고, 또 뭐더라...
이것 저것 챙겨 넣고 100-1 버스를 타고 동래로 갔다.
소산을 지하철 역에서 만나 반갑게 이야기를 하며
약속 장소로 갔더니 못 간다던 메나리가 생긋 웃으며
기다리고 있었다.
그럼 그렇지. 동화지기 모임이 우선이지. 6명 전원이
가게 되어서 퍽 반가웠다.
마지막으로 배유안이 와서 관광 버스를 찾았더니
생각지도 않았던 산악회 버스였다.
산악회 이름은 '쉬엄 쉬엄' 산악회.
나중에 우리는 이 이름을 입에 올리며 많이 웃었다.
이름은 쉬엄 쉬엄인데 처음에는 안심시켜 놓고서
나중에는 죽자 사자 가는 산악회라고.
차가 출발한 뒤에 산행 일정표를 나누어 주는데 보니
여느 산악회에 다른 점이 하나도 없었다. 알고 보니
관광이 아니라 제대로 된 산행이었다. 마지막에
향적봉을 올랐다가 내려올 때만 곤돌라를 타고 내려
온다는 게 다를 뿐이었다.
나는 속으로는 오랜만에 덕유산 산행을 해보기 때문에
좋았지만, 다른 회원들이 은근히 걱정되었다.
배유안이 2-3시간 걷는다고 해서 다들 아무 생각 없이
왔을 텐데 힘에 부치면 어떡하지?
내가 걱정하는 순간에도 차는 아랑곳 하지 않고 무주를
향해 거침없이 달려갔다.
소반과 세울이 중간에서 올라와 일행이 다 모였다.
우리는 준비해온 간식을 나누어 먹으며 소풍가는
아이들처럼 들뜬 마음으로 무주까지 갔다.
차는 안성매표소 부근에서 섰고, 거기서부터
중무장을 하고 올라가야만 했다. 다행히 일행들이
옷과 장비를 잘 갖추어 와서 큰 무리는 없어 보였다.
나도 혹시나 몰라서 스패치를 차고 올라갔는데
나중에 능선에 서고 보니 눈이 어찌나 많은지
신발 속에 눈이 안 들어가게 막아주어서 도움이 되었다.

드디어 출발.
아이젠을 차고 옷도 곰처럼 두툼하게 입어서 걸음들이
굼떴다.
느릿느릿, 어기적 어기적. 이렇게 걸어서야 저 높은
봉우리까지 언제 도착할는지.
예상했던 것보다 눈이 많아서 빨리 걸을 수가 없었다.
평지인데도 눈이 수북히 쌓여 있었다. 아래가 이럴진데
위에 올라가면 얼마나 눈이 많을지 대충 짐작이 되었다.
나는 등산을 많이 다녀봐서 괜찮은데 소반과 배유안이
뒤에 처지기 시작했다.
메나리는 남극 체험단에 갔다왔기 때문에 체력이 제일
좋은 성 싶었다. 그래서 내가 '용감한 펭귄 아줌마'라고
추켜세웠다.


동업령까지만 올라가면 백두대간 종주 능선에 올라서게
되는데 거기까지 가기가 힘들었다.
나는 선두에 서서 빨리 갈 수 있지만 일행의 진도에
보조를 맞추느라 천천히 갔다. 처음에는 뒷쳐지던
소반이 메나리와 함께 앞으로 나서기 시작했고,
소산도 등산을 다녀본 경험이 있어서 별 문제가 없는데
세울과 배유안이 제일 힘들어했다.

첫번 째 작은 사고는 동업령에서 발생했다.
나와 메나리, 소반이 동업령에 올라서 보니 등산온
사람들이 엄청 많아서 점심 먹을 자리를 구하기가
힘들었다. 능선 위에는 찬바람이 불어서 밥먹기가
곤란해서 폭 꺼진 곳으로 내려가서 자리를 겨우
잡았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나머지 세 사람이 오지
않았고 전화를 해도 받지 않았다. 휴대폰이 잘
터지지 않는 곳이라 연락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그래서 세 사람이 가방을 열어보니 소반은
바빠서 반찬을 놓고 온 탓에 우리는 된장국과
참치캔에 맨밥을 대충 강다짐으로 먹었다.
잘 먹어도 체력이 딸릴 판에 점심까지 대충 떼우고
나니 몸이 더 오싹해졌다. 게다가 밥과 빵을 섞어
먹은 터라 배가 더부룩해서 걷기가 힘들었다.
그랬거나 말았거나 길은 사정을 보아주지 않으니
어쩌랴.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자꾸 걸어가는
수밖에.


밥을 먹고 다시 걸어갔더니 저 앞에서 배유안과
세울, 소산이 산악 회원들과 점심을 먹고 있었다.
아이고, 내가 먹을 밥이 저기에 있었구나!
셋은 없어서 못 먹고 셋은 남아서 탈이고,
세상 참 안 고르다.
나에게 밥을 주겠다던 배유안은 무거운 짐을 지고
고생한 탓인지 더욱 힘들어했다.
뒤늦게나마 곰국을 한 사발 얻어 마시고 양주까지
한 잔 들이킨 다음에 다시 길을 떠났다.
 (수리취 씨앗)
산 위는 완전히 눈밭이었다. 나도 산행을 많이
다녀봤지만 이렇게 많은 눈은 처음이었다.
덕유산에 몇 번 와 봤지만 그때마다 날씨가
좋아서 눈이 다 녹아 있거나 눈이 있어도
백련사 부근에서 올랐다가 다시 원점으로
내려가는 일이 많았지, 오늘처럼 백두대간을
탄 일은 드물었다.
경험 많은 나도 힘들게 걸었으니 다른 회원들이야
오죽했을까 싶다.

눈이 얼마나 많은지 마치 밀가루를 수없이
쏟아놓고 발로 반죽을 하면서 걸어가는 것 같았다.
그런데 눈도 가는 곳마다 달라서 어떤 때는
밀가루로 보였다가, 또 어떤 때는 설탕 가루로
보였다가, 때로는 소금 가루로 변해서 반짝거렸다.
발로 밀가루 반죽을 하는 건지 누룩 반죽을
하는 건지 미끄러지고 넘어지면서도 앞으로
앞으로 밀고 나갔다.
내가 부산 문학상 수상 소감을 맡할 때
앞으로는 진로가 없고 뒤로는 퇴로가 없다는
말이 오늘도 그래도 들어맞았다.
산악회 버스가 안성 매표소에서 우리를
부려 놓고는 덕유산 향적봉 너머로 가
버렸기 때문에 이제는 배수진을 친 셈이었다.
죽으나 사나 앞으로 가야만 버스를 탈 수
있었다.
"아이고, 그냥 집으로 갔으면 좋겠네!"
배유안이 탄식을 하자 세울도 오르막길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오매, 또 올라가야 하나? 죽겠네!"
남극 체험단이라 까딱 없을 줄 알았던
메나리도 힘이 딸리는지 인상을 쓰기는
마찬가지였다.
힘들다고 누가 업어줄 수 있는 형편도 아니고
혼자만 빠질 수도 없고.
길은 가야만 끝날 것이기에 오로지 앞으로
밀고 나갈 수밖에는 다른 도리가 없었다.

나는 능선에서 맞는 찬바람 때문에
뺨이 시리고 콧물이 나와서 힘들기는 했으나
체력에는 그다지 문제가 없었다.
이런 걸 보면 평소에 운동을 꾸준히
해두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었다.
글도 체력이 뒷받침되어야 장편이든 뭐든
쓰지 않겠는가?
내가 체력 이야기를 꺼내자 회원들이
"선생님은 체력이 좋으면서 왜 책은 자꾸
안 냅니까?"
하고 맞받아서 공연히 체력 자랑을 했다가
머쓱해지고 말았다.

길은 가도 가도 끝이 없었다.
산악회 예정대로 하면 4시간 30분 코스라고
하더니 우리 회원들은 5시간 30분이나
걸렸다.
흙길이라면 그다지 힘들지 않았을 텐데
신발이 푹푹 빠질 정도의 눈길이라 걷기가
힘들었다.
매서운 칼바람과 발을 붙잡는 눈과 가파른
오르막길을 뿌리쳐 가며 악착같이 걸은 끝에
드디어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저 높은 봉우리. 향적봉!
근엄하기도 하고 엄숙하게도 보이는 향적봉은
지치고 힘든 사람들을 굽어다 보며 말없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도 그 높은 봉우리가 뒤로 자꾸만
달아나지 않는 것에 우리는 안도했다.
그대로만 있다면 언젠가는 올라서지 않겠는가?
신춘문예나 문학상 당선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아무리 높고 힘들어도 그 자리에 있지 달아나는
것은 아니니까 도전하는 사람에겐 반드시 문을
열어주고 손을 내미는 법이다.

4시반에 곤돌라가 떨어진다고 해서 시간에
맞추느라 더욱 힘이 들었다.
평소에 산을 안 타던 회원들은 얼굴이
빨갛게 상기되어 거친 숨을 내뱉었다.
마침내 정상에 오르기가 무섭게 곤돌라를
타는 곳으로 급히 달려갔다.
줄이 끝없이 이어져 있어서 조금이라도
앞에 줄을 서려고 달려갔다.
다행히 곤돌라는 5시가 되어도 끊어지지 않고
손님을 계속 실어날랐다.
스키장 입구까지 내려오니 그 힘든 산행이
다 끝났다.
막판에 체력이 딸려서 힘들어 하던 회원들도
밑으로 내려와 웃음을 되찾았다.
처음에는 쉬엄쉬엄하던 산행이 도중엔
엉금엉금으로 바뀌고, 끝 무렵엔
기진맥진까지 갔지만 다들 낙오되지 않고
살아 남았다. 역시 의지만 있으면 어떤 고생도
다 헤쳐 나갈 수 있는 것이다.
몸은 힘들었지만 하얀 눈길을 원없이 걸어서
마음은 뿌듯했다.

일부 회원들의 의견이었지만, 앞으로는
겨울과 여름 수련회를 글나라 여러 회원들에게도
문을 열어서 다같이 오면 좋겠다고 하였다.
내 생각에도 평소에는 같이 모이지 못해도
여름, 겨울에는 다같이 모여서 좋은 경치도 보고
많은 이야기도 나누었으면 좋겠다.
동화지기들에게 비록 힘든 산행이긴 했어도
결과적으로는 퍽 의미있는 수련회가 되었다.
극기훈련이랄지, 겨울 캠프라고 할지
이름은 어떻게 붙이든 이런 이색적인 체험도
핏속에 녹아들면 언젠가는 글로 풀어나오리라
믿는다.


눈길을 걷느라 지치고 힘들었던 회원들에겐
미안했지만, 이번 겨울 수련회는 아주 멋진
프로그램이었다.
우리 생애에서 최고의 산행을 한 셈이다.
죽을 고비를 넘긴 회원들에게 격려와 감사의
인사를 보내며 함께 걸은 눈길을 오래 기억하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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