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장에도 가을이 깊어가고...
< 2008년 11월 9일, 일요일, 흐리고 비 >
약초모임에서 고헌산으로 산행을 가는 날이다.
날씨가 흐려서 조금 걱정이 되었다.
산행에는 지장이 없어야 할 텐데...
일기 예보를 보니 큰 비는 오지 않을 것 같아서
가벼운 마음으로 집을 나섰다.
수영에서 제자 수아를 만나 같이 동래역까지
갔다.
동래역에는 성일경씨가 차를 대기시켜 놓고 있었다.
백장미님과 고래님도 이미 도착해 있었다. 고래님은
이름만큼 덩치도 커서 정말 닉네임이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다섯 명은 언양 나들목으로 출발했다.
언양에 도착하여 고송님과 야초울님을 만났다.
조금 있으니 유진목장의 카우보이님이 차를 몰고
데리러 왔다.
유진 목장이 고헌산 자락에 있어서 오늘의 산행 일정은
유진님 부부에게 안내를 부탁하였다.
카우보이님은 부지런하고 궂은 일을 기쁜 마음으로
해주어서 퍽 고마웠다.
진우 훼밀리 아파트 앞에서 까마중님을 태워서
고헌사까지 올라갔다.
차 한 대를 고헌사 밑에 놓아두고 우리는 차리에 있는
유진 목장으로 가서 트럭을 얻어타고 고헌산 능선으로
올라갔다.
하산할 때 차를 얻어 탄 경험은 있어도 산으로 올라가면서
트럭을 얻어 타 보기는 난생처음이었다.
꼭 초등학생 때 소풍가는 기분이다.
우리는 모두 어린이가 되어 하늘을 보고 웃고 단풍을 보고
환호성을 올렸다.
온 산이 울긋불긋 곱게 물들었다. 올해 단풍이 막 절정이다.
능선에서 내려 유진님이 가져온 떡과 요구르트를 간식으로
먹었다. 수아는 달걀을 가져와서 잘 먹었다.
유진 목장에서 만든 요구르트는 마트에서 파는 것보다 몇배
맛이 있어서 세 컵이나 먹었다.
간식을 먹고 고헌산 정상으로 올라갔다.
정상까지 불과 2킬로미터인데 올라갈수록 가팔라서 숨이
가빴다.
비가 뿌리기 시작했다. 안개도 몰려온다.
비를 맞으며 정상에 올랐다.
멀리서 보면 안개속에 희미한 정상이 다가갈수록
차츰 뚜렷하게 보인다.
무슨 일이든지 자꾸 끈질기게 하다 보면 손에 잡힐 듯이
선명하게 다가올 것이다.
산 아래를 내려다 보니 언양 마을이 보인다.
사진을 찍고 하산을 시작했다.
다행히 비는 그쳤다.
산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 보니
산 능선이 소잔등처럼 보였다.완만하고 부드러운 능선이다.
야초울님은 어머니의 치마폭 같다고 했다.
야초울님은 생각하는 면을 많이 강조했다.
우리가 운동할 때만 도파민이 나오는 게 아니라
글을 쓰거나 예술활동을 할 때도 도파민이 나온다는 것이다.
나도 그 말에 공감하였다.
바람이 불자 나뭇잎이 맥없이 떨어진다.
텅빈 나뭇가지를 바라보면 어쩐지 스산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가을에 외롭다고 말한다.
하지만 낙엽이 떨어지는 것은 불행한 일이 아니다.
나무를 살리는 좋은 일이다.
나무 뿌리를 얼지 않게 덮어주고 썩으면 거름이 된다.
나무에게는 큰 축복이다.
우리는 떨어지는 것을 별로 좋게 여기지 않는다.
시험에 떨어지고, 옥상에서 떨어지고, 월급이 떨어지고..
떨어진다는 말에 담겨 있는 뜻이 좋은 의미보다는
나쁜 의미가 더 많다.
그러나 비가 떨어지는 것은 좋은 일이다. 눈도 하늘에서
떨어진다.
나뭇잎이 떨어지는 것도 다른 눈으로 보면 나뭇잎 비다.
나뭇잎 비가 우수수 떨어진다.
숲길을 내려가면서 고송님이 약초학 강의를 하였고,
야초울님의 식물 강의를 하였다.
야초울님은 식물을 제대로 공부하려면 잎과 꽃만
보지 말고 뿌리도 살펴보아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풀과 난이 다른 점은, 풀은 뿌리가 실처럼
가느다랗지만, 난이나 꽃 종류는 뿌리가 구근으로
되어 있단다.
뭔가 굵고 덩어리가 져 있어서 영양분이 축적되어 있기
때문에 꽃을 피울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사람도 많이 배운 사람은 구근처럼 마음 속에 어떤
지식의 덩어리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나무가 빽빽한 숲을 지나면서 나무 공부를 했다.
나는 나물로 먹을 수 있는 산오자 나무를 유진님에게서
배웠고, 답으로 비목나무와 노각나무를 일러주었다.
감태나무도 가르쳐주려고 했는데 보이지 않아서
못 가르쳐주었다.
오늘 산행에서는 아무런 약초도 캐지 못했지만
그대신 많이 웃고 건강에 좋은 운동을 했다.
산을 파헤치고 식물을 남획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빈손으로 내려오는 것도 좋을 듯 하다.
우리 모임은 원래 무엇을 많이 캐는 것보다는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배우는 모임이다.
고래님은 산삼을 못 캐었으니 가다가 시장에서
수삼이라도 사들고 들어가야 체면이 선다고 해서
모두 웃었다.
고헌사로 내려가서 세워둔 차를 타고 유진목장으로
갔다.
유진 목장에 들어가 보니 생각보다 젖소가 많았다.
귀여운 송아지도 있었다.
유진님 부부가 정성들여 준비한 삼겹살 바베큐를
해 먹었다.
큼직한 돌판에 고기를 구워서 고송님이 준비한
다섯가지 오자술과 상황버섯주와 내가 준비해간
부추술로 건배를 하였다.
침이 흐를만큼 맛있는 김장 김치에 고기를 싸서
먹으니 꿀떡 넘어갔다.
가든 파티가 한 마디로 환상적이었다.
벚나무가 평상 가운데로 쭉 뻗어 있어서 벚꽃이
피면 아주 멋있을 것 같았다.
처음 온 고래님이 종종 유머를 해서 모두 웃었다.
나는 유머를 준비해 갔지만 따로 할 시간이 없었다.
카우보이님이 목장 이야기를 해주었다.
소 귀에 바코드가 붙어 있어서 젖을 많이 짠 소에게는
먹이가 많이 주어지고 젖을 적게 짠 소에게는 먹이가
적게 주어진단다.
햐, 소도 열심히 일한 소는 많이 먹는구나.
소도 능력제이니 사람인들 말해 무엇하랴!
젖을 짜는 것도 요즘엔 기계가 자동으로 짜준다고 했다.
초기에 설비 투자비는 많이 들지만 한 번 설치해두면
사람이 편할 것 같다.
우리가 떠날 무렵, 카우보이님이 소젖을 짤 준비를 했다.
우리는 소가 놀랄까 봐 숨어서 살짝 엿보았다.
유진님 황토방에도 들어가 보았다.
황토방이 아주 좋았다. 방이 뜨끈뜨근해서 잠이 왔다.
다음엔 와서 하루 자고 가야지.
산을 오르고 목장 구경을 하는 사이에 벌써 밤이 되었다.
우리는 다음 모임을 기약하며 헤어졌다.
두 번밖에 안 본 얼굴들이지만 모두 소탈하고 정이 많아서
편안한 모임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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