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인생을 넓고 깊게 사신 선생님 ( 232회 )

凡草 2009. 1. 13. 22:14

 

 

  < 2009년 1월 9일, 금요일, 흐린 뒤에 눈 >


 어제 저녁에 제주도 아동문학인들이 숙소로 찾아왔다. 

나는 손님들을 노래방이 있는 영접실로 모시고 제자들은

급하게 접대 준비를 했다. 상 차리랴, 화덕에 불을 피워

고기 구울 준비하랴 바빴다.

 오신 분들은 이호석 선생님만 초면이고 나머지는 다 아는 분들이라

반가웠다.

 박재형 선생님은 같은 계몽회원이라서 반가웠고,  이가을, 한명순,

오지연 선생님은 한국아동문학인 협회 세미나에서 많이 보았기

때문에 낯이 익었다.


 박재형 선생님



 한명순, 이가을,  이호석 선생님


 

 한천민 선생님은 책에서 작품을 보았기 때문에 처음 보아도

어색하지 않았고, 장수명씨와 신랑인 김품창 화백은 부산에서

한 번 본 적이 있어서 두 번째 만남이었다.

 한천민 선생님은  동화책을 손수 들고 와서 우리에게

일일이 서명을 해서 나누어 주셨다. 나도 내 동화책을

답례로 드렸다.

 한천민 선생님이 주신 책은 '난 왜 엄마 아빠 얼굴을 그릴 수

없는 거야?'였다.

 

 

 

 

 모두 차례로 자기 소개를 하고 나서 술과 음료수를 마시며

화기애애하게 시간을 보냈다.

 한참 분위기가 무르익을 무렵, 내가 소산에게 노래 한곡을

부탁했다. 남궁옥분처럼 노래를 잘하는 소산이라 손님들에게

좋은 선물이 될 것 같아서였다. 소산은 사랑 사랑 누가 말했나와

양희은의 노래를 불렀고, 앵콜로 산골소년의 사랑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역시 소산의 노래는 언제 들어도 맑고 청아해서

좋았다. 한라산에 딱 어울리는 노래였다.


 소산의 노래

 

꿈이랑의 오카리나

 

 그 다음에는 꿈이랑의 오카리나 연주가 이어졌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이가을 선생님한테 어떻게 해서

제주도에 이사를 오시게 되었냐고 물었다.

 이가을 선생님은 둘째 딸이 제주도에 살고 싶다고 해서

따라 오게 되었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이가을 선생님 혼자 여섯 딸 키운 이야기를 하셨다.

참 대단한 분이었다. 한국아동문학 세미나에 가서 들은

이야기인데 당신이 서점까지 출퇴근을 하실 때 버스를

타고 다니는 2시간이 아까워서 맨 뒷자리에 앉아서 공책에

글을 썼다고 하셨다. 그걸 1년 정도 모으니 동화책 한 권이

되었단다. 

 나는 이가을 선생님을 만날 때마다 좋은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 마음 속으로 존경하게 되었다.

 그래서 이번 제주도 여행에서도 제자들에게 좋은 말씀을

들려주려고 꼭 뵙고 싶다는 메일을 드렸는데, 선생님이

선뜻 응해주셔서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선생님의 둘째 딸이 대학 시험을 볼 때 떨어져서 재수를

한 적이 있는데, 그 딸 때문에 자식이 부모를 교육시킨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하셨다.

 “딸이 재수를 하지 않았더라면 자녀에게 재수를 시키는 부모

마음을 어떻게 알 수 있었겠어요?”

 나는 그 말을 듣고 제자 역시 스승을 교육시킨다고 생각했다.

제자가 잘못하면 내가 부족한 점을 돌아보게 되고,

제자가 잘하면 나도 더 잘해줘야겠다고 느낀다.


 김품창, 장수명 선생님과 제자들


 이가을 선생님의 구수한 이야기는 계속 이어졌다.

 “나는 딸이 대학에 떨어졌을 때 기운 내라고 오히려

파티를 열어주었어요. 그랬더니 딸의 친구가 말하기를

‘우리 아빠는 나가 죽으라고 야단을 쳤어요.’라고 하더군요.

 그 애들이 나름대로 애를 많이 썼을 텐데 그래도 안 되는 걸

어떡하겠어요? 그냥 위로를 해주어야지요.”

 이가을 선생님은 큰딸이 학생 운동을 해서 안기부에 잡혀간

이야기도 들려주셨다.

 그런 이야기를 들어보면 선생님은 인생을 깊고 넓게 사신

것 같다. 그런 체험과 많은 독서량에다 깊은 사색이 있기에

좋은 동화를 쓸 수 있을 것이다.

 손님들과 정다운 이야기를 계속 주고 받는 바람에 어느새

밤 1시가 넘었다. 모두들 반가운 만남이라 선뜻 일어서지를

못하고 미적거리다가 겨우 헤어졌다.

 

 

 1월 9일에는 이호석 선생님이 와서 관광 가이드를 맡아

주었다.

 이호석 선생님은 제주도 토박이라 숨은 명소도 많이

알았지만 제주도 동요도 생생한 제주도 버전으로

가르쳐주어서 좋았다.


 곱은재기 노래 (숨바꼭질 노래)

 

너영나영 곱은재기 하까마시

(너와 내가 숨바꼭질 할까?)

 

아하그래, 두눈을 꼭 감읍서

(아하 그래, 두눈을 꼭 감아라)

 

저기저기 소낭밭에 곱았나

(저기 저기 소나무에 숨었나)

 

흘러가는 구름속에 곱았나

(흘러가는 구름속에 숨었나)

 

아니야 조꼬테 있잖아

(아니야 곁에 있잖아)

 

다시 한 번 이녘 찾아그네

(다시 한 번 너를 찾아볼까)

 

아니야 조꼬테 있잖아

다시 한 번 이녘 찾아그네.


 우리는 제주도 말이 재미있어서 돌아오는 날까지

심심하면 계속 이 노래를 불렀다.

 오늘 관광의 첫 코스는 물영아리 탐방이었다.

물영아리는 습지를 말하는데 겨울이라 그런지 습지 식물이

보이지 않았고 물도 많이 없었다.

 그렇지만 들어가는 입구의 숲은 볼만 했다.


 물영아리 숲길


 이어서 이호석 선생님이 근무하는 토산 초등학교를 보고

표선 바닷가로 갔다.

 표선 바닷가의 바위들은 참 특이했다. 화산 지대 용암이

흘러내린 흔적이 있는데다 다양한 모양을 하고 있어서

어느 조각가가 마구 주물러 놓은 듯한 모습이었다.

 

 

 

 

 

 바닷가에서 사진을 찍고 놀다가 남쪽나라 횟집에 들어가서

돔지리를 점심으로 먹었다. 시원하고 개운한 국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