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9년 4월 26일 일요일 개인 뒤 비 >
금자님 집에 들어가니 방 안에 액자가 하나 걸려 있었는데 그 액자에는 '산골소년 사랑이야기' 노래 가사가 붓글씨로 씌어 있었다. 나는 그걸 보고 빙긋이 웃었다. 소산이 그 노래를 잘 부르는데 여기서도 한 번 들어봐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녁을 먹고 차를 마실 때 소산에게 그 액자를 가리키며 노래를 청했다. 소산은 사양했지만 내가 계속 부탁하자 어쩔 수 없이 노래를 불렀다. 갑자기 시켰지만 준비된 가수. 수잔 보일처럼 청아한 음성. 하늘에서 천사가 부르는 노래처럼 아름다운 목소리. 언제 들어도 감미로운 소산의 노래. 내가 노래를 못하니 노래 잘 하는 제자가 부럽다. 노래를 잘하는 것도 큰 재산이다. 남을 기쁘게 하고 모임을 활성화시켜주는 좋은 역할을 한다. 모두 앵콜을 하자 이어서 남궁옥분의 사랑 사랑 누가 말했나. 소산이 남궁옥분의 목소리를 닮아서 내가 '황궁옥분'이라고 별명을 지었는데 다들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소산의 노래가 끝나자 다음에는 세울에게 월악산에서 황금나무에게 배운 '감자꽃'을 신청했다. 세울도 요새는 노래가 부쩍 늘었다. 흥겨운 감자꽃 노래를 잘 듣고 박하차와 복분자술을 마시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꽃을 피웠다.
다른 날 같으면 내가 제일 먼저 자러 들어갔을 텐데 오늘은 피곤했는지 많이 자러 가고 몇 명 남아 있지 않았다. 나는 11시 반쯤 잠자리에 들었다. 잠자리가 우리 집처럼 쾌적하고 편안하였다. 부산보다는 많이 추운 곳이었지만 나무 난로 덕분에 춥지 않게 잘 잤다. 내가 영월에 처음으로 와서 이렇게 금자님 댁에 누워있다니... 꿈만 같았다. 사람이란 꿈을 꾸면 꼭 이루어지는 법이다.


다음날 일찍 일어나서 마당에서 체조를 하고 마을을 한 바퀴 둘러 보았다. 수아와 나나, 세울도 나와서 같이 걸으며 나물을 뜯었다. 보기 드문 지느러미 엉겅퀴가 수두룩하게 보여서 노루실에 갖다 심으려고 두 포기 캐어 준비해간 작은 화분에 심었다. 다래순, 참취, 엉겅퀴, 고들빼기, 민들레, 수영, 소루쟁이, 갈퀴나물, 개미취 등을 조금씩 뜯었다.
산나물이 풍성한 아침 밥상


점심 때 먹으려고 충무깁밥을 만드는 제자들

여긴 산나물의 창고 같았다. 노루실도 산나물이 많지만 여긴 더 많았다. 보이는 게 산나물이고 야생화였다. 아침도 산나물 밥상으로 푸짐하게 먹었다. 아픈 사람도 여기 와서 이렇게 싱싱한 산나물을 먹는다면 병이 금방 나아서 돌아갈 것 같다.
지느러미 엉겅퀴

고광나무

쥐오줌풀

아침을 먹고 금자님 부부가 교회에 가서 예배를 보는 동안에 우리는 가까운 민화 박물관에 가서 우리의 옛 민화와 현대 민화를 감상하고 박물관 주변에 있는 야생화를 둘러보았다. 동강할미꽃도 있었고 금낭화, 윤판나물, 산마늘 등... 여러 야생화가 있었다. 나는 그냥 구경만 하고 있었는데 야초울님이 박물관장을 만나서 산마늘을 한 뿌리 달라고 하였다. 그러자 박물관장은 산마늘 대신에 동강 할미꽃을 주겠다고 하였다. 박물관 안에는 다른 곳에서는 보기 힘든 동강 할미꽃이 아주 많았다. 그걸 보고 나도 달려가서 한 뿌리 얻었다. 난데 없는 횡재였다. 미니 화분에 심어서 차에 실었는데 과연 이 할미꽃이 잘 살아날지 모르겠다.
민화 박물관에서

동강할미꽃

금자님 부부가 교회에서 돌아오자 태백산으로 향했다. 태백산은 영월에서 한 시간 거리였다. 태백산에는 아직 초봄이었지만 야생화가 지천으로 피어 있었다. 위로 올라갈수록 날씨가 추웠고, 산 정상에는 상고대도 맺쳐 있었다. 우리는 정상까지는 못 가고 중간에서 돌아내려 왔다. 나는 겨울에만 태백산을 올랐기 때문에 야생화가 이렇게 많은 줄 몰랐는데 봄에 와보니 야생화가 무더기로 피어나고 있었다. 친한 사람도 대강은 알지만 마음속 깊은 곳을 다 알 수 없듯이 산도 사계절을 보지 않으면 제대로 알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홀아비 바람꽃

한계령풀


괭이눈

중의 무릇

태백산 야생화를 본 다음에 한반도 지형이 내려다 보이는 주천면으로 갔다.
중간에 일반 도로로는 가장 높은 만항재를 지나갔다.
도로의 높이가 1350미터나 되어서 길가에는 아직도 눈이 남아 있었다.

다시 차를 타고 가는데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우리는 비를 피해서 다니는지 구경을 다 하고 나니까 비가 왔다. 시원한 비를 보며 주천으로 달려갔다. 주천에는 정말 한반도가 내려다 보이는 곳이 있었다. 어쩌면 강이 저렇게 땅을 돌아갈까. 참 희한한 모습이었다.

우리는 구경을 마치고 부산으로 돌아가려 했는데 금자님이 '꼴두국수'를 예약해 놓았다며 식당으로 가자고 했다. 친절한 금자님은 우리의 저녁까지 배려해주었다. 꼴두국수가 뭔고 하니 강원도에서는 메일 국수를 하도 많이 먹어서 이젠 그만 먹고 싶다는 뜻에서 '꼴도 보기 싫은 국수'가 '꼴두국수'라는 것이었다. 이름이 신기해서 더 맛있을 것 같았다. 식당에 도착하여 꼴두국수와 메밀전을 먹어보니 생각보다 훨씬 더 맛이 있었다. 꼴도 보기 싫은 국수가 아니라 매일 먹고 싶은 국수였다. 오늘 저녁은 소이가 사는 바람에 그만 신세를 지고 말았다. 동화 공부를 시작한지 이제 겨우 두 달밖에 안 되는데 만난 것도 큰 인연이고 저녁까지 얻어 먹어서 감사했다.


이제는 부산으로 돌아가야 할 시각이 되었다. 백금자님 부부와 작별을 하고 제천에서 야초울님과 소이를 내려준 뒤에 부산으로 향했다. 비가 잠시 멎었는가 했더니 또 세차게 뿌리기 시작했다. 비가 오는 고속도로라 약간 염려가 되어 모두들 안전벨트를 매려고 벨트 고리를 찾았더니 끼우는 곳은 보이지 않고 수놈들만 있었다. "이 차엔 왜 게이 고리들만 있지?" 내가 슬며시 농담을 하였더니 모두들 배꼽이 빠지도록 웃었다. 알고 보니 끼우는 부분은 의자 홈에 깊이 숨어 있었다. 그걸 모르고 한참 찾았다. 우리는 오늘 본 야생화 이름 대기를 하면서 남쪽으로 내려갔다. 비가 퍼붓고 꽤 먼길인데도 별박사가 운전을 잘해서 무사히 구포에 도착하였다. 운전을 맡아준 별박사와 도우미 미스포터, 함께 간 제자들 덕분에 즐거운 나들이였다. 일곱 사람이 한 사람이 움직이듯 손발이 척척 맞아서 쾌적한 여행이었다. 모두에게 고마운 인사를 전한다. 행복이란, 행동의 형제여서 움직여야만 찾을 수 있는 것이다. 내 몸을 부지런히 움직이면 곳곳에서 행복을 찾을 수 있다. 다음에도 시간을 내어 좋은 여행을 하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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