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집

[스크랩] 어머니를 닮은 뽕나무 ### 332회

凡草 2010. 8. 6. 11:33

 

 

어머니를 닮은 뽕나무


2010년, 8월 6일, 금요일, 맑음


날마다 찜통 더위가 이어지고 있다.

어제 밤에는 양산으로 이사온 뒤에 제일 무더웠다.

밤에도 열대야가 계속 되어 잠을 설쳤다.

밤에 잘 때 선풍기를 틀어 놓고 잔 일이 거의 없는데 어제 저녁에는

한 시간 정도 틀어 놓고 잤다.

확실히 아파트에 살 때보다는 주택이 더 덥다.


어제는 대구에 있는 꽃글과 석가수진볼이 범초산장을 구경하러 왔다.

꽃글은 그전에 글나라를 다닌데다 인터넷으로 동화를 배우기도 했다.

석가수진볼은 지금 인터넷으로 동화공부를 하고 있다.

인터넷으로 공부를 하는 사람들은 대개 숨어서 공부만 하는데

석가수진볼은 밀양 노루실에 찾아왔고 양산 우리집에도 신랑하고

방문했었는데 이번에는 꽃글과 수내까지 보러 왔다.

아내도 젊은 사람의 성의가 고맙다며 흔연스럽게 따라나섰다.

남양산역에서 만나 점심을 먹고 수내로 갔다.

 

 


범초산장에 들어갔더니 바로 옆에 있는 약초밭 주인 최사장이

우리가 설치한 펌프로 밭에 물을 주고 있었다.

 

최사장의 약초밭

 

나도 펌프로 퍼낸 물을 물뿌리개에 담아 뽕나무에 뿌려주었다.

하동에서 희승이 아버지가 뽑아준 어린 뽕나무를 차에 싣고 와서

범초 산장 구석에 돌아가며 심었는데 어제 세어보니 열 그루 정도 되었다.

그날 심고 나서 물을 충분히 주지도 못한 채 이틀 정도 지난 뒤에

비가 한 번 왔을 뿐, 계속 가물었는데 다행히 모두 살아 있었다.

뽕나무는 생명력이 참 강하다.

그래서 나는 뽕나무를 좋아한다.

 

 


뽕나무는 내 어머니를 닮았다.

아버지는 많이 배운 분이었고 한학과 성명학에도 능통한 분이었지만

생활력이 없어서 중년 이후에는 거의 놀다시피 했다.

그러다 보니 우리집 생계는 어머니 혼자 꾸려 나갔다.

어머니는 달걀 행상도 하고 길가에서 노점도 했으며 한 때는

제주도 배가 오가는 부둣가에서 험상궂고 거친 노동자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구멍가게를 열기도 했다.

처음에는 부두 청소를 해주고 얼굴을 익힌 다음에 부두 한켠에

작은 구멍가게를 내어 우리를 먹여 살렸다.

어머니는 바위에 붙어사는 따개비처럼 생명력이 참 강했다.

나는 고등학교 다닐 때 어머니 구멍가게에 채워 넣을 물건을

국제시장에서 사다 나른 적이 있었는데, 한창 사춘기라

여간 부끄럽지 않았다.

하지만 어머니 가게 일을 도우면서 가장은 생활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몸으로 배웠다.

어머니는 한 마디로 치마만 입었을 뿐이지 여장부였다.

성격이 부드럽고 남한테 두루 잘하면서도 먹고 사는 일이라면

어떤 일도 마다 하지 않는 분이었다.

아버지는 당신 체면을 생각해서 아무 일도 못하는 분이었지만.

나는 막내라서 어머니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랐는데 어머니의 모든 면을

닮고 싶었다.

생활 형편이 어려워도 남한테 절대로 징징 짜지 않는 긍정적인 모습,

내일 굶어 죽더라도 오늘은 환하게 웃을 수 있는 마음의 여유,

주위 사람을 종종 웃기는 유머 감각,

속담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탁월한 말솜씨,

남에게 내가 꼭 해야 할 말을 당당하게 하는 용기,

오늘은 찢어지게 가난해서 저녁 해 먹을 쌀조차 없지만

내일은 나아질 거라는 희망을 갖고 살아가는 인내심,

설이나 명절 때면 은혜 입은 사람에게 고무신 한 짝이라도 돌리는 인정,

우리보다 더 어려운 이웃이 보이면 따뜻하게 품어주는 사랑,

나는 그런 어머니의 모습을 뽕나무에게서 보았다.

 


뽕나무는 하나도 버릴 게 없는 나무다.

사람을 위해 자신을 아낌없이 다 나누어준다.

6월에 열리는 검붉은 오디는 사람과 동물이 골고루 나누어 먹는데,

최근에 오디에서 특별한 노화방지와 항암 성분이 발견되어 주목을

받고 있다.

잎은 나물로도 먹을 수 있고,

뽕잎 차는 혈액순환에 큰 도움이 되며,

가지는 겨울에 밥을 할 때 뽕잎 대신 쓸 수 있으며,

뿌리는 약재로 쓰이니

나무 전체가 약나무라고 보아도 틀린 말이 아니다.

비단을 만드는 누에가 다른 나뭇잎은 안 먹고 뽕잎만 먹는다는

사실만 보아도 뽕나무가 얼마나 좋은지 알 수 있다.

요즘에는 누에를 가루로 만든 제품이 당뇨병 치료와 남자를 위한

기능성 약품으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시골에 가보면 뽕나무가 한쪽 구석에 버려진 채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고

있다. 하늘이 내려준 귀한 약나무를 하찮게 여기는 사람들은

누에보다도 못하다. 누에는 뽕잎을 부지런히 먹고 명주실을 만드는데

사람은 자기 몸을 건강하게 할 수 있는 나무를 천대하고 있으니

벌레와 사람이 뒤바뀐 꼴이다.

나는 뽕잎차를 자주 마시고 있는데 감기 기운이 돌 때도 뽕잎차를 진하게

마시면 감기가 나아 버린다.


이렇게 좋은 뽕나무라서 하동까지 가서 구해다 범초산장에 심었다.

밀양에 있을 때 보니 뽕나무는 심지 않아도 아무 데서나 싹이 올라왔다.

새들이 오디를 먹고 똥으로 배출한 씨가 싹을 틔운 것이다.

바위틈에서도 잘 자라고 길가에서도 잘 자랐다.

한 번은 집안 화단에 돋아나서 없애 버리려고 줄기를 잘라버렸다.

그런데도 뽕나무는 죽지 않고 계속 살아났다.

불사조처럼 강한 나무였다.

뽕나무를 죽이려고 온갖 노력을 다하면서 나는 오히려 그 강인한

생명력에 반하고 말았다.

 


이처럼 귀한 나무를 심어놓고 혼자 좋아하고 있는데 아내가 보더니

한 마디 했다.

“여보, 그거 아무 데나 심지 말고 동주한테 물어보고 심어요.

지저분하다고 잔소리 듣지 말고.“

그 말도 맞기는 맞다. 동주는 미적 감각을 중요시하니 아무 데나 되는 대로

심어서는 안 될 것이다.

나도 그런 것을 감안해서 구석에 심었는데 그래도 보기가 안 좋다면

겨울에 파서 옮기면 될 것이다.

어디로 옮겨 심든 범초산장 안에는 뽕나무가 여러 그루 있으면 좋겠다.

뽕잎차를 만들어 마시고 뽕잎밥을 해먹어서 좋지만 눈으로 보기만 해도

좋은 나무다.

어머니를 닮은 뽕나무가 잘 자라라고 아내와 제자들이 이야기하는 동안에

몇 번 오가며 물을 주었다.

 


지난 8월1일에는 최영희 선생님이 스파게티를 만들어 와서 여러 사람이

함께 먹었다. 이땅바다, 꿈이랑, 배혜경도 같이 와서 모처럼 함께 즐거운

점심을 먹었다.

 

 

 

 

최영희 선생님이 많이 나아서 반갑고 앞으로도 더 건강해지길 기원한다.

참 야종이는 최영희 선생님이 다시 데려갔다. 처음 며칠 동안에는 글나라가

생각나는지 밤에 울더니 요즘에는 안 운다고 했다. 나도 보고 싶지만

사무실보다는 최영희 선생님 집이 더 편할 테니 보내길 잘 했다고 생각한다.

                          (*)


출처 : 글나라
글쓴이 : 凡 草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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