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이야기

지금은 대기중!

凡草 2010. 9. 8. 17:48

 

 

지금은 대기중

 

<2010년, 9월 8일, 수요일, 구름>

 

큰형님이 돌아가셨다.

나와 11살이나 차이가 나는 형님인데 내가 어릴 때부터

우리집의 가장 노릇을 하였다.

아버지가 고등학교 1학년 때 돌아가신 뒤부터

내가 결혼할 때까지 어머니와 함께 큰형님 집에서 살았다.

나는 큰형님에게 은혜를 갚으려고 용돈도 몇 번 드렸고,

큰집 조카가 대학 들어갈 때 학자금을 보태주기도 했지만

막상 돌아가시고 나니 더 잘해드리지 못한 것이 후회된다.

 

사실은 내가 좀 더 잘해드릴 수 있었는데 그러지 못한 것은

나와 큰형님 사이에 ‘술’이라는 장애물이 있기 때문이었다.

아버지는 살아 계실 때 술을 워낙 좋아하셔서 어머니가

고생을 많이 하셨다.

나는 그걸 보고 술을 절제하기로 굳게 결심하였는데

삼형제 중 나만 빼고 큰형님과 둘째 형님은

술을 좋아하였다.

내가 제삿날이나 명절 때 큰집에 가면 큰형님과 둘째 형님은

어김없이 술을 많이 마셨다.

나에게도 술을 어찌나 권하는지 정말 고역이었다.

 

그래서 큰형님을 자주 만나 식사를 대접하고 싶어도 술이

약하기 때문에 부담이 되었다.

큰형님이 돌아가신 것도 술로 인한 간암 때문이었다.

내가 생전에 큰형님께 술을 적게 드시라고 충고하면 큰형님은

늘 이렇게 말씀하셨다.

“야, 술 안 먹고 오래 사는 것보다 내가 먹고 싶은 만큼

먹고 죽을 테니 걱정 마라. 너나 오래 살아라.”

 

 

나는 어릴 때 아버지가 술 때문에 엄마와 다투는 걸 많이 보았고

집안 형편이 기울어지게 된 것은 모두 아버지 탓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술에 대한 혐오증이 컸다.

그래서 술도 남보다 늦게 배운 편인데 지금도 술을 만취가 될

정도는 마시지 않는다.

어쨌거나 술을 즐기던 큰형님이 돌아가시고 나니

어른 한 분이 없어지고 말았다.

이제 남은 분은 나보다 네 살 많은 둘째 형님 뿐이다.

부모님은 이미 다 돌아가셨고 장인 장모도 돌아가셨기 때문에

둘째 형님한테라도 잘해드려야겠다.

 

 

큰형님을 화장하고 납골당에 모셨는데 흔히 납골당을 하늘공원이나

추모공원이라고 부른다.

이 세상에서 고생을 많이 했기 때문에 하늘에 가서라도

편히 쉬라는 뜻으로 그렇게 부르는 것일까?

삶과 죽음은 종이 한 장 차이였다.

영락공원에 가서 보니 산 사람들은 의자에 앉아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고, 죽은 자는 전기로 속에서 한 줌 재로 태워지고

있었다.

게임 하듯이 죽음을 생방송으로 보여주는 영락공원.

죽음을 실감시켜주기라도 하듯 유골을 항아리에 담아서

건네준다.

영락공원에 와서도 산 자는 배가 고프면 먹어야 하고

죽은 자는 모니터에 줄지어 등장한다.

끝없이 줄을 서서 대기중인 죽은 자들.

산 자도 눈 감고 아무 말이 없으면 죽은 자가 되는 것을.

이미 죽음의 선고를 받고 대기중인 사람들.

언젠가는 죽을 텐데 돈이며 보석이 다 무슨 소용이 있을까?

살아 있을 때 공원에 놀러 가듯이 즐거운 마음으로

살 수는 없을까?

영락공원에서 돌아오며 날마다 하루하루를 이벤트 하듯이

즐겁게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기왕이면 좋은 말 하고

남한테 잘해주면서.

나 역시 지금 전기로 대기중이니까.

 

 

지난 5일 일요일에는 범초산장 이웃 사촌인 최사장과 함께

밀양 노루실에 다녀왔다.

최사장이 꾸지뽕나무를 전문적으로 키우는데 꾸지뽕나무

중에서도 열매가 열리는 암나무는 극히 드물다며 암나무를

구하기 위해 폭우를 뚫고 남해까지 간 적이 있다고 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노루실에서 본 꾸지뽕나무가 생각났다.

처음엔 그게 꾸지뽕나무인 줄도 모르고 잎이 감나무를 닮아서

감나무인 줄 알았는데 열매가 틀려서 세울에게 물었더니

꾸지뽕나무라고 했다.

그 이야기를 했더니 최사장이 한 번 가보자고 했다.

그래서 일요일에 시간을 내어 노루실로 달려갔다.

반장집이 낡았는데 새로 지어서 번듯했다.

반장집 아주머니와 반가운 인사를 나누고 꾸지뽕나무 가지도

구한 다음에 부산으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 큰형님이 막 임종했다는 말을 전화로 연락받고

병원으로 달려갔다.

 

 

범초산장에 심은 배롱나무가 벌써 꽃을 많이 피웠다.

내년에나 꽃을 볼 줄 알았는데 어느새 자리를 잡고 꽃을 피웠다.

내가 살아 있을 때 나무를 열심히 심어 놓으면 나는 가도

나무는 남아 있겠구나!

 

아내가 범초산장에 따라와서 풀을 열심히 뽑았다.

그늘에서 쉬라고 해도 스스로 뽑았다. 일구덩이라 따라가기

싫다고 하더니 그냥 앉아 있기는 심심한 모양이다.

 

 

 

달개비와 까마중은 뽑지 말고 살려두라고 일렀다.

까마중 열매가 익을 날이 기대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