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이야기

[스크랩] 고양이 발걸음으로 다가오는 봄 ==3==3 368회

凡草 2011. 2. 18. 17:26

 

 

368회

 

고양이 발걸음으로 다가오는 봄

 

( 2011년 2월 18일, 금요일, 맑음 )

 

그 어느 해보다 춥던 겨울이 슬슬 꼬리를 내리고 있다.

체면상 단숨에 확 달아나지는 못하고 슬금슬금 눈치를 보며

뒷걸음질을 하고 있다.

겨울이 워낙 힘자랑을 하다 보니 봄이 더디게 다가오고 있다.

봄은 고양이 발걸음으로 살금살금 다가오고 있다.

점심을 먹고 바람을 쐬러 화명동 연못가로 나갔다.

 

 

어제 비가 와서 그런지 땅바닥에 물기가 남아 있다.

겨우내 메말랐던 풀들은 빗물을 머금고 원기를 회복하는 중이다.

겨울동안 부산에는 통 비가 내리지 않았는데 지난 월요일에

눈이 오고 나서 연달아 비까지 내렸다.

봄이 다가오니까 비도 자주 오는 느낌이다.

 

 

큰개불알풀이 어느새 꽃을 피웠다. 수내 범초산장은 분지 모양의

지형에다 남향이라 진작 큰개불알풀이 꽃을 피웠지만, 여기도

한 두 송이 피었다.

 

 

갈퀴덩굴도 봄이 완연해지기 전에 새순을 뽑아 올리고 있다.

큰 풀들에게 치여서 그늘 속에 묻히기 전에 빨리 자랄 모양이다.

작은 풀의 생존 전략이 가상하다.

 

 

까치는 무엇을 저리 먹고 있을까?

땅을 콕콕 쪼아보며 봄이 어디만큼 오고 있는지 짐작하는 듯하다.

 

 

목련은 꽃망울이 점점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고 있다.

저러다 어느 날 툭 터져버리겠지.

목련 꽃망울을 보면 목련꽃차를 마실 날이 머지 않은 것 같아 기대가 된다.

산수유 가지를 보니 자잘한 꽃망울이 빼곡하게 맺혀 있는데 성질 급한

꽃망울은 벌써 터져 나왔다. 노란 꽃수술이 앙증맞다.

 

 

교실로 들어오니 텅 빈 교실이지만 겨울만큼은 썰렁해보이지 않는다.

저 빈 공간에 곧 여러 사람들이 와서 자리를 채우겠지.

조금 있으니 아이들이 하나 둘 와서 책을 읽는다.

책을 읽는 아이들의 표정에 봄이 담겨 있다.

인생의 긴 겨울을 헤쳐 나갈 아이들이 늘 봄빛처럼 따스한 마음을 안고

살아가면 좋겠다.

 

요즘 김애란씨가 지은 장편동화 ‘일어나’를 읽고 있는데

이 책에 나오는 좋은 구절을 소개한다.

 

“그래. 세종대왕은 시각 장애를 앓고 있으면서도 훈민정음을

창제했던 거야.“

나는 말없이 세종대왕을 생각했다.

“그래. 너도 할 수 있어.”

미르는 한참 동안 말없이 골목만 내려다보았다.

“넌 할 수 있어. 내가 도와줄게.”

나는 마법을 외듯 중얼거렸다.

그랬다. 분명 나는 나와 미르에게 마법을 걸고 있었던 것이다.

아빠가 그랬다. 무슨 일이 일어나길 진심으로 바란다면

그 일이 일어날 거라고. 자꾸 입 밖으로 말하라고.

말은 마법과 같아서 말대로 된다고 말이다.

엄마도 그랬다. 말이 씨가 된다고. 그래서 난 마법을 걸듯이,

씨앗을 심듯이 정확하고도 조심스럽게 연신 말했다.

미르야, 넌 할 수 있어. 내가 도와줄게, 라고.

                           (*)

출처 : 글나라
글쓴이 : 凡 草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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