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3회>
세 번째 도전
< 2013년 2월 2일, 토요일, 맑음 >
2012년 12월 24일 528차 산행 때 양산 능걸산 계곡에 갔다가 길을 잃어 혼이 났는데 오늘 다시 같은 코스에 도전하기로 했다. 이보다 앞서 2012년 12월 17일 526차 산행 때도 능걸산 뒷산에 갔었는데 숨어 있는 계곡을 찾지 못하고 다른 곳으로 나온 적이 있었다. 이 부근 계곡이 깊고 험해서 결코 만만치 않은 산이라는 것을 느꼈다. 숨어 있는 계곡이 ‘절골’인데 두 번이나 제대로 찾지 못했기 때문에 오늘 세 번째 같은 산을 찾게 되었다. 수첩에 적은 기록으로는 이번이 534차 산행이다. 등산 초보 시절에는 잘 적지 않아서 아마 다 합치면 600차는 넘을 거다. 산에 가지 않아도 이 수첩만 보면 힘이 난다.
오늘 올라가야 할 능선
오늘은 지난번과 달리 우선 날씨가 좋아서 마음이 홀가분했다. 12월 산행 때는 영하 7도의 날씨에다 눈길이라 고생했는데 날씨가 많이 풀려서 오늘 양산 지역 기온은 최저가 영상 6도라 그리 춥지 않았다. 날씨가 많이 풀렸기 때문에 오늘 산행은 순조롭게 잘 될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더구나 두 번이나 실패했기 때문에 왜 실패했는지 이유를 알게 되어서 전철을 밟지만 않으면 된다.
밭에 내려앉은 까마귀 떼들, 길조인가 흉조인가?
이번 코스를 세 번째 도전하면서 되돌아보니 내 인생은 무엇이든 한 번으로 명쾌하게 해결하지 못하고 여러 번 도전하면서 힘겹게 살아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 입시를 볼 때도 첫 번째는 부산대학교 법학과를 지망했지만 허무하게 떨어지고 말았다. 집이 가난했던 탓에 학비 면제를 받으려고 실업고등학교에 진학하다 보니 인문고등학교와는 실력차가 너무나 컸다. 그 학교에서는 전교 수석을 했지만 입시를 쳐보니 우물 안 개구리였다.
첫 해는 보기 좋게 낙방을 하고, 다시 재수를 한 끝에 눈높이를 낮추어 부산대학교 국문학과를 지원했다. 말이 재수였지 학원에도 안 가고 혼자 독학을 했고, 집안 형편이 어려워서 문제집도 제대로 사보지 못했다. 게다가 용돈을 벌려고 초등학생들을 모아 과외지도를 한 탓에 공부할 시간마저 부족했다. 몸은 어디 건강했는가? 폐결핵을 앓고 있어서 마리아 구호재단 병원에 가서 약을 받아 치료를 하느라 병과 싸우면서 입시 공부까지 해야 했다. 병든 몸과 가난한 환경, 입시라는 높은 벽 앞에서 삼중고의 고통을 겪으면서 두 번째 입시를 보았다. 그때도 가능성은 불투명했다. 1차 필답고사에서 합격이 되었지만 2차 신체검사에서 폐결핵 환자라고 불합격 판정을 받아 떨어지고 말았다. 그날 부산대학교 정문을 나오면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결국 3수를 해야 했는데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라 집안 형편이 어려워서 결핵 치료도 제대로 받지 못했기 때문에 x선 사진 찍을 돈도 없었다. 다시 입시철은 다가오고 있었고, 몸속은 어떻게 되었는지 알 수가 없어서 고민을 하다가 신체검사가 없는 교육대학을 지원하게 되었다. 지금은 모르겠지만 그 당시에는 신체검사가 없어서 합격이 되었다. 교사를 하겠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던 내가 신체검사가 없고 일찍 졸업해서 취업할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교육대학에 갔고 19년 7개월을 교사로 근무했다. 내 희망과는 다른 길로 갔지만 이것이 내 운명이다 생각하고 열심히 일했더니 모두들 나를 보고 딱 선생할 사람이라고 인정해주었다.
그러나 대학교에 다니면서도 결핵약을 복용해야 했고, 체계적인 치료를 받지 못하고 주먹구구식으로 약만 한 웅큼씩 먹은 탓에 위가 서서이 나빠졌고 졸업한 뒤에는 햇병아리 교사라 모르는 게 많아 밤낮으로 학교 일에 매달리다 보니 위궤양을 앓다가 복막염으로 위 일부 절제 수술까지 받았다. 그 뒤에도 선천성 심장병을 치료하기 위해 심장 수술을 받는 등... 30대를 전후해서 대수술을 두 번이나 받았다. 그러고 나니 건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매일 아침 맨손체조 30분에다 산행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계속해 왔다. 벌써 아득한 30년 전의 일이다.
지금은 비교적 건강한 편이다. 감기나 몸살도 잘 걸리지 않으니까. 운동을 몇 십 년째 꾸준히 하고 있는데다 나만의 몇 가지 건강 비법 덕분에 오십견도 없었고 아직 노안도 없이 현역에서 활동하고 있다.
문학은 학교 교사가 된 뒤에 뒤늦게 시작했다. 초등학생들을 지도하다가 나도 동시를 알아야 제대로 가르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동시 지도서를 읽었고 그러다가 동시 습작을 하게 되었다. 동시는 습작을 한 지 2년 만에 쉽게 등단했지만 동화 등단은 참 쉽지 않았다. 1979년부터 무려 7년이나 떨어진 끝에 1986년에야 신춘문예를 통과했다. 7전8기의 힘든 과정이었다. 그래도 그 무수한 습작 시절을 거쳤기 때문에 지금은 후배들을 지도할 수 있는 노하우를 갖게 되었다.
오늘 능걸산 코스에 세 번째 도전하면서 내 지나간 인생을 돌이켜보니 나는 언제나 도전하면서 살아왔고, 비록 힘들긴 했지만 그 과정을 나름대로 즐기면서 살아왔다고 자평했다. 힘든 일이 나를 가로막을 때 그냥 포기해버리면 편할지 몰라도 그래서는 얻는 것이 없다. 안일하고 나약하게 살아갈 뿐이다. 성공할 때까지 도전하면서 살아야 육체적으로 나를 성장시킬 수 있고 정신적으로는 한층 더 성숙한 사람이 될 수 있다. 힘든 일은 나를 가르쳐주는 훌륭한 선생님이다.
올라가야 할 산이 점점 다가오고 있다... 긴장도 되고 기대도 되고...
지난번에 양계장 농장 부근에서 헤매다가 아무 데나 올라갔기 때문에 오늘은 지도에서 본 혜월사를 찾았다. 어렵지 않게 혜월사를 찾을 수 있었다. 혜월사는 큰 절이 아니라 조립식으로 지은 작은 절이었다. 그래서 찾기가 쉽지 않았다. 혜월사를 찾고 나니 바로 등산로가 이어져 있었다. 무난하게 등산로를 찾아 산으로 들어가니 마음이 편안했다. 안정된 마음으로 걸으니 힘도 들지 않고 여유가 있었다. 저번에는 초반에 길을 못 찾아 우왕좌왕하다 보니 심리적으로 불안했고 눈길까지 있어서 바짝 긴장하면서 걸어야 했다. 그러다 보니 빨리 내려가야겠다는 급한 마음이 들었고 길도 없는 곳으로 내려가서 된통 고생했다.
오늘은 여유가 있으니 급하게 허둥댈 필요가 없었다. 문학 수업도 마찬가지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 혼자 주먹구구식으로 습작을 하다 보니 자꾸만 마음이 급해졌고, 고생 끝에 등단해봐야 이미 진을 다 뺀 참이라 대작을 쓰긴 어려웠다. 내가 큰 작가가 못 된 것도 어찌 보면 이런 내 이력과 무관하지 않을 성 싶었다. 하지만 경험 많은 선배가 핵심을 잘 짚어주면 불안해하지 않고 여유있게 공부하다가 쉽게 등단할 수 있고, 노하우를 전수받아 좋은 작가로 발돋움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혜월사에서 능걸산까지는 지루하게 이어지는 긴 오르막이었지만, 이미 한 번 가본 길이라 아무 걱정하지 않고 물을 마셔 가면서 느긋하게 올라갔다. 오르막길은 내 체력을 단련시켜주는 런닝매트다. 돈 안 들고 달리는 공짜 런닝매트!
드디어 지난번에 올라와본 능걸산 정상! 두 번째 등정이다. 오늘은 눈도 없고 시야가 확 트였다. 오룡산, 신불산, 천성산, 영축산이 주위에 뺑 둘러서 있다. 준비해간 도시락을 맛있게 먹고 커피까지 한 잔 마셨다. 산에서 마시는 커피는 가장 맛이 좋다. 산 아래서 마실 때보다 몇 배나 향이 진하게 느껴진다.
곧 이어서 습지 보호지역. 아직 눈과 얼음이 녹지 않은 구간이 있어서 조심해야 한다. 내리막길에서는 아차 하면 미끄러진다. 이럴 때는 게 걸음으로 걸어가야 한다. 한 발 두 발 걸음마 걷듯 조심조심 내려간다. 지금은 눈과 진흙탕 길이지만 봄에 오면 온갖 야생화가 지천일 것 같다. 마침내 지난번에 헤맨 곳까지 왔다.
한 번 실패했지만 이번에는 전철을 밟지 않을 것이다. 스마트 폰으로 다시 한 번 지도를 검색해보고 절골 쪽으로 내려갈 길을 살펴보았다.
습지 보호구역에서 한참 더 직진해야지 섣불리 내려갔다간 저번처럼 또 고생하게 될 것이다. 저번에는 초조한 마음에 서둘러 내려갔다가 화를 자초했다. 오늘은 마음에 여유가 있으니 엉뚱한 코스에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그때 라디오에서 배따라기의 ‘그댄 봄비를 무척 좋아하나요?’와 이은하의 ‘봄비’가 연속으로 흘러나왔다. 산길도 좋고 내가 좋아하는 비에 대한 노래도 나와서 참 행복했다. 이제 곧 봄이 오겠지. 엊그제 봄비 같은 비가 내려서 좋았는데 오늘도 춥지 않아서 봄날에 산행하는 것 같다. 다음에 산에 올 때는 비를 소재로 한 노래를 몇십 곡 mp3에 담아와서 들어봐야겠다. 그러면 산과 비를 한꺼번에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제법 걸어갔는데도 도무지 내려가는 길이 보이지 않았다. 깃발이 달려 있어야 할 텐데 어디에도 없다. 이제 내리막길이 끝나고 다시 오르막길인데도 없으니 어떻게 된 건가? 혹시 지나친 건가? 깃발은 없고 내려가는 길 비슷한 게 있었지만 선뜻 들어가지 않았다. 에덴벨리 골프장이 어디에 있을까? 높은 곳으로 올라가면 골프장이 없을 텐데.....
조금 혼란스러웠지만 안 되면 다시 되돌아오기로 하고 계속 직진했다. 산을 두 개나 더 넘고 나니 이윽고 에벤벨리 골프장이 보였다. 지도에서 볼 때는 습지구역에서 조금만 더 가면 에덴벨리 골프장이 있고 평지 같은 길로 보였지만 실제로 가보니 작은 산봉우리를 두 개나 넘어야만 했다. 이걸 와보지 않고 어떻게 알 것인가? 역시 경험보다 더 좋은 스승은 없다.
골프장 가까이 내려가니 바로 오른쪽에 절골로 내려가는 깃발이 나를 환영하듯이 여러 개가 붙어 있었다. 만약에 여기에 이게 있다는 것을 미리 알았다면 전혀 걱정하지 않고 여기까지 왔을 텐데....... 중간에 내려갈 만한 길이 몇 번 보였지만 유혹 당하지 않고 참은 것이 참 잘 했다. 좋은 기회를 노리려면 온갖 유혹에 쉽게 흔들리면 안 된다.
드디어 찾았구나! 세 번 만에 성공이다.
처음 찾아가서 올라간 산도 기분 좋지만 이처럼 여러 번 고생 끝에 올라간 산은 몇 배나 더 기쁘다. 오늘의 성공은 성취감이 대단하다. 여태까지 이런 성취감이 나를 키워 왔다. 한참 내려가니 등산객 몇 사람이 보였다. 평일에는 아무도 없더니 토요일이라 몇 사람이 보였다.
이제 길 따라 밑으로 내려가기만 하면 끝! 길고 긴 내리막길이었지만 별로 지루하지 않았다. 왜? 아는 길이니까. 이처럼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은 천지 차이다. 비가 온 뒤의 계곡이라 물이 철철 넘친다. 저 계곡물조차 내 성공을 축하해주는 것 같다.
라라라- 콧노래를 부르며 흥겹게 내려갔더니 벧엘병원 후문이 보였다. 문이 활짝 열려 있다.
저번에는 문이 굳게 잠겨 있어서 계곡을 돌아 내려가느라 큰 고생을 했는데 일이 잘 풀리는 날은 문까지 열려 있다.
저 밑으로 돌아 내려가야 한다면 또 고생을 하겠지, 에휴!
유유상종이라고 악재는 악재끼리 뭉쳐 다니고 호재는 호재끼리 몰려다닌다. 그러니 매사에 감사하고 긍정적인 마음을 가져서 호재가 올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해줘야겠다. (*)
* 오전 10시 9분경 석계 한성아파트 앞에서부터 걸었다. - 좌삼리 마을- 혜월사- 능걸산- 습지 보호구역- 에벤벨리 골프장- 절골 - 벧엘 병원- 좌삼리 버스 정류소- 약 6시간을 걸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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