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스크랩] 먹고 사는 것

凡草 2013. 10. 9. 23:36

 

 

<537회>

 

먹고 사는 것

 

< 2013년 10월 9일, 수요일, 구름 조금 >

 

모처럼  제 18회 부산 국제영화제를 보러 갔다.

신세계 동화교실 회원 한 분이 표를 구해주어서 아내와 함께

센텀시티에 있는 롯데시네마로 갔다.

 낮 11시 영화인데도 국제영화제 열기가 뜨거워서 빈 자리가 거의 없었다.

 

 

오늘 본 영화 제목은 <딜리셔스>로 영국 영화다.

영국 영화답게 예술성이 강했다.

줄거리를 먼저 소개한다.

 

< 자크는 자신이 아버지라고 여기는 위대한 요리사 빅터 아래서

요리를 배우기 위해 런던에 도착한다.

한 아파트 단지로 이사를 오면서 자크는 무모한 이웃인 크고

아름다운 눈을 가진 아가씨 스텔라와 인터넷을 통한 데이트에 집착하는

할머니 패티를 만난다. 그들은 함께 괴팍하고 외로운 부적응자

삼인조를 이룬다. 스텔라에 흥미를 느끼고 매료된 자크는 그녀를

밖으로 나오게 하지만, 그녀가 외식을 혐오하고 집에 사가지고 가는

나쁜 음식을 수치스럽게 여긴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자크는 스텔라를 위해 아침을 준비하지만 그녀가 먹도록 설득하는 데

실패한다. 스텔라는 자크가 떠난다면 먹겠다고 약속한다.

스텔라의 무질서한 섭생 습관과 경쟁할 수 없음을 깨달은 자크는

자신의 문제를 직시하고 스텔라를 떠난다. 자크가 세인트 판크라스로

향할 때 스텔라는 세상과 그리고 자크와 다시 소통하고자 하는

갈망을 느낀다. <딜리셔스>는 태미 라일리 스미스의 매력적인

데뷔작이다. = 전양준 >

 

자크는 요리를 잘하는 남자다. 멋있게 요리하는 모습이 나올 때마다 감탄했다.

접시에 요리를 담는 게 아니라 예술적인 그림을 그리는 것 같았다.

‘저건 음식을 그냥 입 안에 집어넣는 게 아니라 예술을 먹는 거야.’

이런 생각이 들었다.

자크가 부러웠다. 난 요리를 잘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영화를 보면서 나도 요리를 한 번 배워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아내가 집에 없을 때 냉장고에 있는 음식만 대충 차려 먹는 사람은

아니지만 정식으로 요리를 잘하지는 못한다.

어떤 음식이든지 자유자재로 만들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스텔라는 폭식증 환자다. 폭식증이란 살이 찔까 봐 음식을 먹고도

억지로 토해내는 환자다. 그러다가 배가 고프면 마구잡이로 집어넣는다.

그러고 또 토하고.....

폭식증은 단순한 음식 혐오증이 아니라 정신적인 질환이다.

그래서 자크가 아무리 고쳐주려고 해도 스텔라가 받아들이지 않았다.

나중에 자크가 떠나고 나니 비로소 아쉬움을 느끼고는 찾으러 나선다.

 

 

이걸 보면 인간 관계는 쉽게 풀 수 없는 매듭이다.

끊기 전까지는 결코 풀어지지 않는.

얽히고 설켜서 헤어나오기 어렵다.

좋은 쪽에 해답이 있어도 안 좋은 쪽 오답으로만 가기 쉽다.

 

이 영화는 먹고 사는 문제를 다루고 있다.

돈을 버는 직업으로서의 요리사와 몸매를 유지하기 위해

음식을 거부하는 아가씨가 요리라는 밧줄을 잡고 서로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다.

 

사람은 먹지 않고는 살 수 없다.

먹고 살기 위해서 아귀다툼을 하고 출세하려 애쓴다.

하지만 실제로 먹는데는 그리 많은 돈이 들지 않는다.

입고 자고 타고 다니는데 더 많은 돈이 든다.

산다는 것은 먹고 살아가는 것이다.

사랑은 살아간다는 말에서 나왔다고 한다.

그러므로 산다는 것은 먹고 사랑하는 것이다.

잘 먹지 못하면 사랑도 잘할 수가 없다.

잘 먹는다는 것은, 푸짐하고 영양가 있는 음식을 많이 먹는 것이 아니라

몸에 이로운 음식을 마음 편하게 먹는 것이다.

몸에 이로운 음식이란 기름지고 맛있는 음식이 아니라 투박하고

자연 그대로의 음식이다.

 

영화에서는 미각을 자극하는 음식이 많이 나왔지만 진정한 요리사란

건강까지 함께 생각해야 한다고 본다.

지나치게 많이 가공하고 튀긴 음식보다는 거칠고 싱거운 음식이 낫다.

나는 사 먹는 음식보다는 내가 직접 요리해서 먹기를 좋아한다.

산장에서도 그렇고 도시에서도 가능하면 손수 해먹는다.

그러다보니 돈도 적게 들고 뭘 먹을까 고민할 필요도 없다.

그냥 내 방식대로 음식을 해먹고 있는데 오늘 영화를 보니

기왕이면 요리를 더 잘해보고 싶다.

마지막 장면에서 스텔라가 자크를 찾으러 가는 걸 보니 희망적인

결말이라 마음이 놓였다.

 

 

오랜만에 분위기 있는 영화를 보고 동백섬까지 걸어갔다.

동백섬을 한 바퀴 돌아 해운대 바닷가까지 갔다.

새로 만든 해안 산책로가 참 좋았다.

외국에서 온 관광객도 많이 보였다.

 

 

해운대 바다는 30년 전 결혼하기 전에 아내를 데리고 가서

구혼한 장소다.

그 당시 나는 막내였어도 어머니와 조카 둘을 데리고 살았는데

아내에게 어머니와 조카를 맡아달라고 부탁하면서 이런 말을 했다.

 

 

 

“사람은 누구나 완전한 조건을 갖고 있지 않다고 봐요.

100퍼센트 조건을 갖춘 사람은 없을 겁니다.

내가 50퍼센트라면 간숙씨도 50퍼센트가 아닐까요?

그러니 부족한 사람끼리 같이 살면서 모자란 부분을

채워 나갑시다.“

 

 

내 말을 아내가 받아들여서 결혼하게 되었다.

그때는 낭만적이지 못해 꽃 한 송이 주지 못하고 해운대 바다를

바라보며 프로포즈했지만 아내는 나를 이해하고 같이 살았다.

오늘 아내에게 그때 결정을 후회하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잘 살아왔다고 웃었다.

 

 

비록 낭만적인 프로포즈는 못했고, 어머니와 조카 둘까지

신혼 집에서 같이 살았지만, 아내를 행복하게 해주려고

나름대로 애쓰며 살아왔다.

전업주부로 돈을 벌지 않아도 되도록 했고, 해외 여행도

여러 번 가게 해주었다. 14개국을 돌아본 나보다 아내가

해외여행을 더 많이 했다.

 

 

 

세상 돌아가는 이치란 어렵지 않다.

내가 손해를 좀 보면 남이 그 손해를 메워주려 애쓰지만,

내가 이익을 보려고 하면 남이 손해보지 않으려고 한다.

누구를 만나고 어디를 가든 내가 좀 손해보고 산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하고 적을 만들지 않아서 좋다.

아내도 나에게 처음에는 손해를 보았기에 나한테 대접받고

큰 고생하지 않고 살았다.

어머니가 늘 기침을 하면서도 80세까지 살고 돌아가신

것은 아내 덕분이라 늘 감사하게 생각한다. 내가 결혼하고

7년 뒤였다. (*)

 

 

출처 : 글나라
글쓴이 : 凡 草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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