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1회>
무엇을 배우는데 나이 제한은 없어!
< 2013년 11월 4일, 월요일, 맑음 >
가을이 깊어가고 있다. 지난 토요일에는 아내가 단풍 구경을 가자고 해서 밀양 표충사 쪽으로 갔다. 표충사 부근에 있는 은행나무 단풍길이 아주 좋기 때문에 그것도 보고 산에 있는 단풍도 볼겸 차를 타고 달려갔다. 밀양 IC를 빠져 나와 표충사 앞으로 갔더니 아직 단풍이 절정은 아니었다. 올해는 날씨가 따뜻한 탓인지 은행잎이 곱게 물들지 않았다. 1-2주 더 있어야 절정이지 싶었다. 그래도 가을 수채화 같은 길을 달려 주차장에 차를 세워 놓고 필봉으로 올라갔다. 푸른 잎만 보다가 빨간 단풍잎이 나타나면 입이 벌어졌다. 가을에는 역시 단풍이 제격이다. 단풍을 보니 제대로 가을을 보내는 기분이다.
요즘 날씨가 아주 좋아 산길 타는 것도 전혀 힘들지 않았다. 점심 먹을 때가 되어 편편한 바위 위에 자리를 잡고 싸간 도시락을 먹었다. 밥을 먹는 동안 머리와 등에 햇살이 쏟아져서 따뜻했다. 여름에는 그리 덥더니 가을에는 햇살이 따스해서 좋다.
밥을 다 먹고 사자봉 부근까지 갔다가 되돌아 내려왔다. 약 5시간을 걷고 주차장에 내려와서 손삼현님 댁으로 갔다.
가을꽃; 용담
손삼현님은 9월부터 내가 가르치는 글나라 동화창작교실에 다니게 된 분인데 연세가 자그마치 72세다. 글나라 동화교실 역사상 최고령이다. 배우러 오시겠다고 처음 전화를 했을 때 난 나이보다는 집이 멀어서 잘 다닐 수 있을까 염려했다. 해운대에서 화명동까지는 지하철을 타도 1시간 20분이나 걸린다. 왕복 2시간 40분에 배우는 시간 2시간을 합치면 무려 5시간이나 된다. 그런데도 올 수 있겠다고 해서 다니시라고 했더니 잘 다니고 있다. 지난 주 화요일에는 공부 시작하기 전에 밤을 삶아 오셨길래 어디서 난 밤이냐고 물었더니 밀양 시골집에서 직접 딴 밤이란다. 밀양은 나하고 인연이 깊은 곳이다. 내가 밀양에 있는 시골집을 5년이나 갖고 있었고, 그 집에서 출퇴근을 하기 위해 해운대에서 잘 하던 학원을 화명동으로 옮겼다. ( 더 자세한 이야기는 지나간 범초산장 일기에 다 들어 있으니 찾아서 읽어보기 바란다.)
그래서 밀양 어디에 시골집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주소를 가르쳐주시며 한 번 놀러 오라고 하셨다. 나는 마침 토요일에 밀양을 가기로 생각한 터라 손삼현님한테 미리 문자로 물어보았더니, 주말마다 가는 전원주택인데 금요일에 들어갈 거라며 놀러 오라고 하셨다. 그래서 집 구경을 한 뒤 차 한 잔만 얻어 마시고 바로 나오겠다고 말씀드려 놓았다. 쇠뿔도 단김에 빼라는 말이 있듯이 적극적으로 살아가자는 게 내 생각이다. 삶은 밤에서부터 시작된 말이 씨가 되어 밀양 전원주택을 직접 찾아가게 되었다. 내가 그 댁에 가서 폐를 끼친다면 나도 갚으면 될 테니 마음에 큰 부담은 없었다. 스마트폰에 주소를 적어넣었더니 바로 그 집 앞에 세워주었다. 네비 못지 않게 똑똑한 스마트폰이다. 밀양시 산외면 다죽리. 내가 한 번도 안 가본 마을이었다. 대나무가 많아서 다죽리인가.
손삼현님은 나와 아내를 반갑게 맞아주셨다. 집에 아들과 두 사람만 있었다. 얼마나 반갑게 대해주셨는지 그만 사진을 못 찍고 말았다. 차를 한 잔 대접 받고 350평 집터를 골고루 돌아보았다. 새로 지은지 3년 되는 주택인데 은행나무가 많고 풍광이 좋았다. 수내 범초산장처럼 낮으막한 산들이 집 주위를 빙 둘러싸서 아늑해 보였고 집터가 높아서 멀리 고속도로가 한눈에 보였다. 손삼현님은 주말마다 자영업을 하는 아들이 모시고 온다고 했다. 아들이 대단한 효자다. 매주 어머니를 모시고 밀양에 와서 자고 간다니 아무나 쉽게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집구경을 다하고 그만 가겠다고 일어섰더니 저녁을 먹고 가라며 붙잡았다. 나와 아내는 집에 일이 있다며 그냥 나왔다. 손삼현님은 직접 기른 무와 파를 뽑아주며 효소 한 병까지 선물로 주었다. 내가 효소를 한 병 들고 가서 드렸는데 혹 떼려다 혹 붙인 꼴이 되고 말았다. 집으로 돌아오며 손삼현님을 다시 보게 되었다.
나이 들어서 고향 마을에 전원주택을 아담하게 지은 일이며, 문인화를 여태 그려왔는데 다시 동화창작교실에 나온 의욕은 보통 열정이 아니다. 배우는데 나이 제한이 없지만 여태 나이든 분들이 쉽게 마음을 먹지 못했다. 나는 아무리 나이가 든 분이라도 받아줄 자세가 되어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이를 의식하고 배우러 오지 않는다. 기회는 열려 있지만 문을 열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손삼현님과의 인연이 더욱 소중하고 감사하다. 앞으로 손삼현님이 먼 거리일망정 즐겁게 배우러 다니시면 좋겠다. 건강도 잘 챙겨서 아프시지 않으면 더 말할 나위 없겠고. 손삼현님 전원주택 모습은 언젠가 기회가 되면 다시 가서 찍어올 생각이다.
요즘 매주 월요일마다 꾸준히 산을 찾았다. 억새가 깃든 산도 가고 단풍이 곱게 물든 산도 찾아갔다. 날씨가 화창해서 등산에 최적이었다. 화엄벌 억새는 올해 여름에 비가 적게 와서 작년보다는 못했다. 천성산 홍룡폭포로 가는 길에서 당산공원을 보았다.
1바퀴 돌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3바퀴 돌면 무병장수한다는데 시간이 없어서 1바퀴만 돌았다. 비단 당산공원 뿐만 아니라 무엇이든 오래 꾸준히 해야 효과가 있을 것이다.
밀양 필봉을 타고 내려오다가 신당인 듯한 집을 보았다. 옛날에는 저 집에 많은 사람이 몰려들어 소원을 빌었을 텐데 그 사람들 다 어디 가고 먼지만 쌓였을까? 할머니 흰머리처럼 잡풀만 부스스하다. 저기에 소원을 안 빌어도 되는 세상이 되었는가? 낡은 신당을 보니 왜 그런지는 모르지만 허전하고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이번 주에는 범초산장에 가서 꾸지뽕나무 잎을 땄다. 어차피 땅에 떨어질 잎이라 따서 씻은 다음에 쪄서 말리기로 했다. 그러면 꾸지뽕 차가 된다. 가을에 부지런히 뽕잎차를 만들어 두어야 겨우내 마실 수 있다.
요즘 저녁마다 뽕잎차를 마시고 있는데 녹차보다 더 좋다. 우선 속이 편안하고 아무리 마셔도 빈혈이 오지 않는다. 산장에서 녹차 나무를 키워보니 늦가을에 꽃을 피운다. 추울 때 꽃을 피우는 걸 보니 속이 냉하고 찬 사람보다는 살이 찌고 열이 많은 사람이 녹차를 마시면 좋을 것이다. 나는 녹차 분석을 안 해보았지만 자연 현상으로 미루어 판단할 수 있다. 뽕잎은 더울 때 꽃이 피고 잘 자라니 속이 냉한 사람이 마셔도 좋을 것이고.
목이 아플 때 끓여 마시려고 꽈리를 땄다. 목감기에 꽈리를 10개 이상 넣어서 끓여 마시면 좋다. 치자 열매도 마찬가지 효과를 갖고 있다.
나는 말을 많이 하는 직업이라 목감기에 대비해 미리 약재를 준비해 두고 있는데 작년에는 다행히 안 아프고 넘어갔다.
범초산장에 절정인 구절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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