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이야기

[스크랩] 나만 기계치가 아냐! (553회)

凡草 2014. 1. 13. 22:22

 

 

< 범초산장 일기; 553회>

 

나만 기계치가 아냐!

 

< 2014년 1월 13일, 월요일, 맑음 >

 

강추위가 이어질 때는 산 정상이나 능선보다 둘레길이 덜 춥고 걷기가

편하다.

혹한기에는 우리 집에서 가까운 오봉산 둘레길을 걷기로 했다.

그러면 많이 춥지도 않고 점심 먹기에도 편하다.

오늘은 우리 집에서 출발하여 양산경찰서- 계곡 오솔길- 작은 오봉산-

둘레길- 임경대 갈림길- 물금 파출소까지 걸었다.

식사 시간 포함하여 모두 4시간 30분이 걸렸다.

 

 

산으로 올라가기 전에 길에서 누가 버리고 간 끈과 철사를 보았다.

다른 사람이 보았다면 대수롭지 않게 지나쳤겠지만 주말마다 산장에

가기 때문에 그게 예사로 보이지 않았다.

 

 

 

시골에 가서 생활해보면 도시에서는 쓰이지 않는 것들이 두루 쓰인다.

비닐봉지, 종이봉지, 못 쓰는 천, 끈, 철사 등과 같은 고물을 다 요긴하게

쓸 수 있다. 그래서 주워 배낭에 넣었다.

 

 

 계곡을 올라가는데 바위를 기어오르는 마삭줄이 보였다. 마삭줄도

담쟁이처럼 벽을 잘 탄다. 사람이든 식물이든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은

예술적으로 보인다.

 

     마삭줄 군락지

 

 

     큰으아리 덩굴

 

     개산초 잎

 

 

  작은 오봉산 아래 임도에 올라서니 뜻밖에도 응달진 곳에 눈이 남아 있었다.

제법 길게 뻗어 있어서 즐거운 마음으로 눈을 밟았다.

오봉산은 530미터 정도 되는 낮은 산이라 눈이 전혀 없을 줄 알았는데

이렇게 눈이 있어서 신기했다. 며칠 전에 양산 도심에는 눈 대신 비가

내렸는데 여기에는 눈이 내렸던 모양이다. 양산 시민들에게 여기에

눈이 있다면 믿을까?

 

 

 사람 마음도 남이 모르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 오래 겪어보아야 다 알 수

있을 것이고.

  오봉산 둘레길은 그리 험하지 않아서 트레킹하듯이 가볍게 걸었다.

가끔 오르막이 있긴 해도 높은 산에 비하면 이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다.

소풍 가듯이 오솔길을 즐겁게 걸었다.

 

 

 

 

 점심을 먹을 때는 양지 바른 곳에 신문지를 펴고 앉으니 따뜻했다.

다른 지방에는 오늘도 강추위가 심하지만 부산과 양산은 그다지 춥지 않으니

좋다.

물금파출소가 있는 물금 삼거리까지 걸어갔다가 버스를 타고 범어중학교

쪽으로 돌아왔다.

 

 

 등산을 마치고 나면 스파앤 목욕탕에 간다.

6천원 내면 바디풀이랑 온탕, 좌욕탕, 습식 사우나, 산소탕, 건식 사우나 등을

골고루 이용할 수 있어서 좋다.

 그런데 옷장 키를 받아서 손에 찰 때마다 신경이 쓰였다.

그전에 발에 찼다가 미끄러져서 열쇠 고리 뾰족한 부분에 크게 다친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 뒤부터는 키를 발에 안 차고 손에 차는데 그래도 뾰족한 부분이 거슬렸다.

탕에 들어가서 키를 손에 차고 있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다.

‘뾰족한 부분이 돌출되지 않도록 하면 좋은데 어떻게 할 수 없을까?’

 

 

키를 요모조모 돌려보다가 문득 작은 홈이 있는 것을 보았다. 그 속에 뾰족한

부분을 집어 넣었더니 딱 맞았다. 그랬더니 위험하지 않았다.

왜 이걸 진작 몰랐을까? 이 목욕탕을 이용한지 벌써 3년이 넘었는데 여태

이걸 몰랐으니 난 분명히 기계치가 맞다.

기계를 잘 다루는 사람에 비하면 기계에 대해서는 많이 서툴다.

그래도 시골을 오가면서 고쳐야 할 게 많아서 이것 저것 기계를 만지다보니

좀 나아졌다.

 

 

나는 기계치라서 이걸 몰랐지만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차고 있을까 궁금해서

이 사람 저 사람 키를 찬 모습을 힐끔힐끔 살펴보았다. 어떤 사람은

내가 알몸을 훔쳐 보는 것을 보고 이상하게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저 녀석, 00 아냐?

그러거나 말거나 옷장 키를 어떻게 차고 있는지 눈여겨 보았다.

그런데 열 사람에 8명 정도는 뾰족한 부분이 튀어나온 채로 차고

있었다. 아하, 나만 기계치가 아니구나! 저런...

 

그렇다고 내가 일일이 강의를 해줄 수도 없고 그냥 모른 척 했는데

서너 살 먹은 아기를 데리고 온 아빠가 잘못된 방법으로 키를 찬 채

아이 몸을 씻어주고 있었다. 저러다 잘못하면 아이 몸에 상처를 줄 수도

있는데 어떡하지? 나는 슬며시 말을 걸었다.

“여보세요, 혹시 키를 바르게 차는 방법을 아세요?”

내가 말을 걸자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래서 내가 발에 찼다가 다쳤던 사실과 바르게 차는 방법을 가르쳐주었더니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이거 알고 보면 아무 것도 아닌데 왜 이걸 진작 목욕탕 측에서 홍보를

하지 않았을까? 그러면 다칠 일도 없는데. 아마 일 년에 한 두 명은

다치는 일이 발생할 것이다.

목욕을 다 끝내고 나오다가 카운터에서 일하는 분에게 키를 바르게

사용하는 방법을 아느냐고 물었더니 모른다고 했다. 나는 바른 방법을

말해주고 사진을 찍어서 게시해주면 좋겠다고 부탁했다. 그렇게 하든

안 하든 내가 찾아낸 방법을 알려주고 나오니 속이 후련했다.

 

 

 

 일요일에는 동그라미 계원들이 범초산장에 놀러왔다.

바깥 날씨는 추워도 난로가 있으니 모여서 즐겁게 놀 수 있었다.

낮에는 수제비를 끓여 먹고 저녁에는 고등어구이와 새우구이를 해먹었다.

마음 맞는 사람들이 모여서 먹으니 맛도 있고 즐거웠다.

 

 

 

 

 

 물을 뜨려고 계곡으로 내려가니 살얼음이 얼었는데도 물속에는 물고기들이

꽤 많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물이 몹시 추운데도 물고기들이 헤엄치고

있는 걸 보면 생명력이 대단하다. 우리는 옷을 두툼하게 입고서도 춥다고

야단인데 저 애들은 얼음 물 속을 돌아다니는구나. 추워도 춥다 소리 하면 안 되겠다.

 

 

토요일에는 아내와 운문령에 차를 세워놓고 가지산에 올라갔다.

지나간 수요일에 비가 왔기 때문에 가지산에는 눈이 내렸을 것이다.

그래서 아내와 눈구경을 하러 갔다.

역시 가지산에는 많은 눈이 남아 있었다.

 

 

아내는 처음이고 나는 올 겨울 세 번째 눈길 등산이다.

환상적인 눈길을 기쁜 마음으로 걸었다.

하얀 눈속을 걸으니 마음도 깨끗하게 정화되는 느낌이다.

 

 

 

 

 

 쌀바위 아래 대피소에 들어가서 라면과 어묵을 사 먹고 집에서 준비해 간

군고구마도 먹었다.

 

 

 

 대피소에는 그전에 본 풍산개 강아지가 아직도 두 마리 남아 있었다.

 토실토실하고 귀여웠다. 사람들이 오징어랑 이것 저것 주니 잘 받아 먹었다.

 

 

 

 

 

  산을 잘 타고 와서 저녁에는 양산 우리 집 부근에 새로 생긴 의령소바를

사 먹었다. 윈드와 자굴산에 갔다가 의령소바를 맛있게 먹은 적이 있는데

그 생각이 나서 갔다.

 

 

  이 집도 맛이 있었다. 등산도 하고 별미도 먹고  즐거운 하루였다. (*)

출처 : 글나라
글쓴이 : 凡 草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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