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초산장 일기; 563회>
새파랗게 질렸지만 죽지는 않았어요
<2014년 3월 2일, 일요일, 흐린 뒤에 갬>
바람은 아직 쌀쌀하다. 그래도 햇살이 내리쬐는 낮에는 포근한 기운이 감돈다. 어젯밤을 산장에서 자고 아침부터 거름을 날랐다.
동주가 거름을 싼 값으로 100포대 샀는데 나보고 50포대를 사라고 권해서 선선히 그러겠다고 했다.
아직 거름이 많이 남아 있어서 당장 필요하지는 않으니 거절할 수도 있지만 동주가 나를 믿고 전화를 했는데 들어주는 것이 예의이리라. 시중에서는 4천 원인데 2천 원에 사라니 조건도 좋은 편이다. 지금 사두면 언젠가는 쓸 수 있으니 10만 원에 50포대를 인수했다.
문제는 산장에 차가 직접 들어가지 않으니 수레로 일일이 날라야만 했다. 도라지집 앞에서 산장 안까지 거리는 약 100미터. 50포대를 2포대씩 날랐으니 25번이나 왔다 갔다 했다. 모두 5킬로미터를 오간 셈이다. 헬스 한 번 잘 했다.
처음에는 50포대가 쌓인 높이를 보고 겁을 집어 먹었다. ‘저걸 언제 다 나르지? 내가 할 수 있을까?’ 한 포대에 20킬로그램이니 두 포대면 40킬로그램이다. 세 포대씩 나르자면 할 수는 있겠는데 무리일 것 같았다.
그래서 여러 번 왔다 갔다 하더라도 2포대씩 나르기로 했다. 몇 번이나 왔다 갔다 해도 도무지 거름 포대가 줄어들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날랐다. 다른 것은 못해도 인내심 하나만은 내 장점이라고 자부하고 싶었다. ‘좋다. 누가 이기나 보자.’
내가 열 살 때 아버지와 쌀 가리는 일을 한 적이 있다. 그때 어머니가 제주도 오가는 배가 닿는 부두에서 가게를 했는데 가게 앞에서 인부들이 보리와 잡곡을 몸으로 날랐다. 인부들이 배에 싣고 온 잡곡 가마니를 갈코리로 찍어 날랐는데 그 구멍 사이로 잡곡이 바닥으로 쏟아지곤 했다. 잘못하면 인부들이 밟아서 미끄러지기도 했다. 그래서 어머니가 인부들을 도우려고 빗자루로 바닥을 쓸어주었는데, 일을 마치고 나서 흙과 모래, 못, 철사 등이 섞인 잡곡을 버리기가 아까워서 집으로 들고 왔다. 그걸 상 위에 수북히 부어 놓고 아버지와 내가 손으로 일일이 잡곡을 골라냈다. 잡곡 무더기 안에는 철사 도막, 지푸라기, 흙, 병뚜껑, 돌 등... 온갖 것이 뒤섞여 있었다.
나는 30분 정도 하면 지루하고 힘들어서 그만 하면 안 되겠느냐고 아버지한테 물었는데 아버지는 그것도 못 참느냐고 야단을 치며 1시간 이상을 시켰다. 산처럼 쌓여 있는 잡곡 무더기는 좀처럼 줄어들지 않았다. 저걸 언제 다 할지 한숨부터 나왔다. 몇 번이나 주리를 틀고 못하겠다고 했지만 아버지한테는 통하지 않았다.
나는 1시간 남짓 하다가 겨우 풀려나서 밖으로 놀러 나갔는데 나중에 집으로 돌아와 보면 아버지는 그때까지도 그 일을 계속 하고 있었다. 아마 3-4시간은 족히 되었을 것이다. 그걸 보고 나는 아버지가 인내심이 강한 분이라는 것을 알았다. 아직 어렸을 때지만 나도 아버지처럼 인내심을 길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 밑에서 그런 산교육을 받은 덕분인지 나도 지금은 인내심이 강한 편이다.
거름 포대를 옮기고 또 옮기고..... 쉬어가며 또 일하고 쉬다가 또 일하고.... 오전 내니 일했더니 거의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면 그렇지. 네가 한없이 늘어나지 않는데 내가 다 못할 이유가 없지.’ 마침내 점심 먹기 전에 일이 끝났다. ‘아버지, 저 잘했지요? 아버지한테 단련 받은 보람이 있어요. 감사합니다.’
오늘 점심은 옻닭이다. 닭 안에 옻나무 가지와 엄나무, 뽕나무가지를 넣고 대추, 은행, 표고버섯을 넣어서 푹 고았다.
언젠가 옻닭을 먹고 부작용으로 혼난 적이 있어서 미리 방비를 하려고 달걀노른자에 참기름 한 숟가락을 개어서 먹었다. 그러면 옻이 오르지 않는단다.
점심을 맛있게 먹고 산장을 한 바퀴 둘러보았다. 차가운 바람을 뚫고 새순들이 왕성하게 올라오는 중이다. 아마 땅 속이 시끌시끌할 것이다. 서로 먼저 나오려고 고개를 디밀고 있으니까. 누군가가 교통 정리를 하고 있지 않을까? ‘자, 줄 서요. 줄을 서. 새치기 하지 말고 차례를 지켜요. 빨리 나가 봐야 잘못하면 얼어 죽어요. 천천히 순서대로 나가요. 저기, 살짝 끼어 드는 녀석 누구야? 엉? 너 죽을래?‘
톱풀이 이만큼 자랐다. 일 년에 한 번만 먹어도 감기에 잘 걸리지 않는다는 톱풀. 등산을 부지런히 하고 산장에 와서 약초를 뜯어 먹은 덕분에 재작년부터 아직까지는 감기에 걸리지 않았다. 내 면역력이 높아진 모양이다. 톱풀이 자라면 쌈을 싸 먹어야겠다.
명이나물 새순이 볼록 솟아오르고 있다. 이런 모습을 보면 생명의 신비가 참 경이롭다. 하늘에서 누가 자석으로 잡아당기나 보다.
머위 새순이 흙을 털고 올라서는데 색깔이 초록색이 아니라 보라색이다. 겨울 추위에 새파랗게 질렸기 때문일까? 그래도 죽지 않고 올라오고 있다. 새파랗게 질렸을지언정 죽지 않은 인내심이 대단하다. 너 역시 인내심이 굉장하구나. 부모한테 배웠니?
큰 꽃들이 햇빛을 가로막기 전에 잽싸게 꽃을 피운 쇠별꽃. 남보다 한 발 먼저 치고 빠지는 기동력을 칭찬해줄만 하다.
물속이라고 다를소냐? 여기도 봐줘요! 어리연이 겨우내 죽지 않고 새눈을 물 위로 내밀고 있다. 고무통을 천으로 감싸주지도 않았는데 안 죽었구나. 미안한 마음과 반가움이 뒤섞여 쭈그리고 앉아서 한참 들여다보았다.
어제 산장으로 들어오면서 종묘상 앞을 지났는데 일당귀 모종이 나와 있어서 16포기를 사와서 심었다. 산장에 천궁은 있지만 맛은 일당귀가 좋기 때문에 쌈 싸 먹으려고 샀다.
일당귀 옆에는 상추 모종을 심었다. 오늘 세어 보니 살아난 것이 21포기다. 이 정도면 우리 가족 먹는데는 충분하다. 더 욕심부릴 필요 없다. 서너뼘 되는 땅에 빼곡하게 자리잡은 상추.
상추가 포실포실 자라는 모습을 보기만 해도 마음이 넉넉해진다. 마치 통장에 거금이 들어있는 기분이다. 돈은 통장 안에 가만히 숫자로 잠들어 있지만 상추는 시시각각 자라고 매일 매일 자라고 푸른 색으로 나에게 희망을 준다. 저 아이들이 한창 자라기 시작하면 뜯어 먹어도 먹어도 없어지지 않는다. 불사조처럼. 화수분처럼. 생명이 다할 때까지 남에게 몸을 바쳐 희생하는 상추여, 너를 씹어 먹으며 나도 너의 마음을 배우고 싶다. (*)
|
'시골집'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남겨 놓고 온 미역국 (566회) (0) | 2014.03.24 |
---|---|
[스크랩] 모란 한 그루 값 (565회) (0) | 2014.03.16 |
[스크랩] 반갑다, 섬쑥부쟁이 나물 (562회) (0) | 2014.02.23 |
[스크랩] 봄이 오고 있다 (558회) (0) | 2014.02.02 |
[스크랩] 낙엽은 나무가 후회하는 눈물인가? (544회) (0) | 2013.11.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