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초산장 일기; 576회>
단단한 사람도 때로는 부드러운 것이 필요하다
<2014년 5월 12일, 월요일, 비온 뒤에 갬>
토요일에 범초산장에 갔더니 영갑씨가 와서 화장실을 둘러보고 이런 말을 했다. “김선생님, 화장실 뒷쪽이 허술하니 시멘트로 보강 작업을 좀 해주시구요. 지난주에 시멘트 바른데다 물을 몇 번 뿌려주세요.“ “시멘트에 물은 왜 뿌려야 합니까?” “그래야 시멘트가 더 단단해집니다. 그냥 두면 야물어지지 않아요.” 아, 그렇구나! 내가 시멘트에 대해서 뭘 알아야지. 나는 영갑씨가 시킨 대로 물뿌리개에 물을 떠서 시멘트 바른데다 듬뿍 뿌려주었다.
시멘트에 물이 촉촉하게 스며드는 걸 보고 있노라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 시멘트를 사람에 비교한다면 마음이 단단하고 의지가 강한 사람일 거야. 그처럼 단단한 사람도 부드러운 것이 없으면 한 번에 무너질 수도 있겠지. 부드러운 것이란 무엇일까? 음악일 수도 있고, 사랑의 손길일 수도 있고, 휴식이거나 웃음일 수도 있을 거다. 물이 시멘트를 더 굳혀주듯이 사람도 더 강해지려면 부드러운 것을 섞어주어야 할 것이다.>
물을 뿌려주고 나서 시멘트 보강 작업을 했다. 모래는 계곡에 가면 얼마든지 있으니까 삽으로 떠다가 시멘트와 섞은 뒤 돌멩이를 섞어서 발랐다. 이젠 태풍이 불어도 화장실이 날아갈 염려는 없겠지.
지난주에 충청남도 보령에 살고 있는 여여행님으로부터 미역취 모종을 15000원 어치 사서 범초산장에 들고 갔다. 다른 때 같으면 천천히 여유있게 심었을 텐데 하필 화장실 공사를 하느라고 바빠서 심을 틈이 없었다. 화장실 공사를 다 마쳐 놓고 자투리 시간에 심으려니 바빴다. 저번에 여여행님한테 맥문동 모종도 산 적이 있는데 양을 많이 주더니 이번에 산 미역취도 돈보다 훨씬 많이 보내서 심느라 떡을 쳤다. 만 원 어치가 한보따리여서 심어도 심어도 끝이 없었다. 언제나 심는 것을 좋아하더니 이번엔 제대로 걸렸다. 아무리 심어도 끝이 없어서 나중에는 한 구멍에 몽땅 몰아넣고 흙으로 덮었다. 그러면 안 되는데 시간은 없고 심기는 다 심어야 하니 대충 흉내만 냈다. 심고 나서 물도 충분히 못 주고 그냥 집으로 돌아왔는데 이번 주에 산장에 가보니 고맙게도 몇 포기에서 어린 싹이 나오고 있었다. 여여행님은 모종이 죽지 않도록 잎을 다 자르고 뿌리만 보냈다.
나는 적당히 심었지만 그래도 죽지 않고 싹이 올라오다니? 선생이 잘못 가르쳤지만 제자가 열심히 해서 성공하는 것과 흡사했다. 앞으로 몇 포기나 올라올까 궁금하지만 대충 심어 놓고 결과를 바라는 것은 우물에서 숭늉 찾는 격이나 다름 없다. 미역취를 심어 놓으면 잡풀을 막아주고 나물로도 좋다는데 이번에는 기대하기가 곤란하다. 미역취 심은 자리를 바라보면 얼굴이 화끈하다.
뽕나무 옆에 이름 모를 나무가 한 그루 있다. 아직 어린 나무다. 키가 작고 이제 싹이 조금 나왔다. 내가 분명히 모종을 구해서 심은 것 같은데 이름을 알 수가 없었다. 저게 뭐지? 밤나무인가? 아냐. 굴피나무? 내가 그걸 심었을리가 없고, 그렇다면 뭘까?
아무리 생각해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다른 모종을 많이 사서 심을 때 같이 온 나무라서 심고는 잊어버렸나 보다. 할 수 없이 세울한테 카톡으로 물어보니 ‘마가목’이란다. 아차, 그래 마가목을 심었지.
내가 심어 놓고도 무슨 나무를 심었는지 모르니 이 일을 어찌할꼬? 심어만 놓으면 다 되는 게 아니다. 제대로 심어야 하고 심고 나서는 자식처럼 잘 돌보아주어야 한다. 마가목을 볼 때마다 홀대한 자식처럼 미안한 마음이 든다.
아욱
양산에서 겨울에 아욱 모종 세 포기를 구해서 산장에 갖다 심었는데 봄에도 별로 자라지 않고 꼬장꼬장하더니 이제는 부쩍 자라서 잎을 뜯어 국을 끓여도 될 정도가 되었다. 세 포기만 있어도 충분하다. 그러니 어린 싹이 작다고 무시할 게 아니고 빨리 빨리 안 큰다고 타박할 일이 아니다. 참고 기다려주면 언젠가는 보답을 한다. 꽃도 그렇고 나무도 그렇고, 사람도 마찬가지다. 당장 보답 안 한다고 서운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범초산장에 화사하게 핀 작약
나는 제자들을 많이 가르쳤지만 가르친 것으로 만족한다. 나도 사람이기에 보답을 받으면 솔직히 기분은 좋지만, 공짜로 가르쳐준 것이 아니니 보답을 기대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올해는 스승의 날이 되기도 전에 벌써 제자 몇 명이 축하를 해주어서 더 이상 축하를 받지 않아도 되겠다. 남 따라 형식적으로 축하해주는 것은 정말 곤혹스럽다. 선물 대신 마음이나 문자로만 축하를 해주어도 감사하다.
범초산장을 찾아온 이상미, 김미숙, 한세경, 김하늬....
인터넷으로 배우는 어느 제자가 보내준 마음의 선물
아카시 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해마다 아카시 꽃을 따서 효소를 담아야지 하고 생각은 하지만 그러다가 시기를 놓쳐서 못 담고 지나쳤는데 이번 주에는 어떻게든 시간을 내어 아카시 꽃을 따서 병에 넣고 설탕을 부었다. 마침 범초산장 주변에 아카시 꽃이 많아서 멀리 갈 필요없이 쉽게 땄다. 이렇게 담으면 될 것을 여태까지 한 번도 못 담았다니! 사람이 성공하려면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하고 하겠다는 의지를 실천에 옮겨야 한다. 부뚜막에 소금도 집어 넣어야 짜다는 속담처럼 마음은 굴뚝 같아도 실천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꿩 잡는 게 매라는 말이 있듯이 머리로 많은 것을 알고 있는 사람보다 많이 배우지 않았어도 직접 몸으로 실천하는 그 사람이 바른 사람이요, 똑똑한 사람이다.
호장근
호장근 뿌리를 산에서 캐어 산장에 갖다 심었다. 작년에 한 번 심었는데 실패해서 다시 도전했다. 이번에는 살아나려나...
동전만 하던 연이 점점 커지고 있다
산장 마당에 풀이 엄청 자라서 예초기로 베었다. 머리가 이발을 안 해서 수북하듯이 엉망이던 풀밭이 좀 깨끗해졌다.
뽕나무가 있는 범초산장
붓꽃이 슬슬 피어나기 시작한다. 다 피면 퍽 아름다울 것이다.
앵두부산님표 속새와 카모마일이 잘 크고 있다. 속새 새순이 나오는 것도 이쁘고 이제 막 꽃을 피운 카모마일도 정겹다. 아직 몇 송이 안 되어서 그냥 두고 보지만 꽃이 많아지면 차로 마셔봐야겠다.
속새
카모마일 꽃
산장에 뜯어 먹을 게 많지만 그냥 숲속에서 맑은 공기를 마시고 있다가 하루 자고 돌아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자연은 말없이 나를 지켜보면서 감싸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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