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초산장 일기; 611회)
미스 부산 뽑기
<2014년 12월 7일, 일요일, 구름 뒤에 맑음>
벌써 12월이다. 이제 올해도 20여일 밖에 안 남았다. 부산도 며칠째 영하의 온도로 내려가서 김장을 하러 산장으로 갔다. 다른 곳은 벌써 첫눈이 내렸다는데 부산에는 눈이 오지 않았다. 눈 구경 하기가 참 어려운 곳이다. 올해도 하루 날을 잡아 한라산에 눈구경을 가야 할 판이다.
산장 마당에는 아직도 민들레 꽃이 피고 있었다. 영하의 날씨인데 저 민들레는 무슨 할말이 저리 많아 아직도 꽃을 피우는가?
김장을 하기 위해 먼저 배추 밑동을 칼로 잘랐다. 모두 40여 포기가 되었지만 작고 속이 덜찬 것은 빼고 30여 포기만 골랐다. 남은 배추는 겨우내 밭에 그대로 두었다가 쌈배추로 할 것이다.
그전에는 경험이 없어서 뿌리를 깊이 안 잘랐는데 이번에는 배추 밑동에 붙여 바짝 잘랐다. 뿌리를 깊이 잘라야 흙이 덜 묻고 씻기에도 편하다. 작년에는 배추에 흙이 많이 묻어서 여러 번 헹구느라 힘이 들었다. 배추 포기가 파는 것보다는 작아서 작년에는 한 포기를 4등분 했는데 올해는 2등분만 했다. 배추를 계곡 물에 씻어서 돗자리에 나란히 늘어놓았다.
범초산장에는 계곡이 옆에 있으니 무엇을 씻기에는 아주 편하다. 물은 생명의 근원이다. 밥 하고 빨래 하고 설거지 하고 차 마시고 목욕하고 농작물 키우고...... 물이 없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아내가 소금물을 만드는 동안 잠시 배추 감상을 했다. 배추들이 참 예쁘다. 생머리와 파마머리, 커트를 한 여성들 같다. 꼭 살아서 웃는 듯 하다.
자, 지금부터 미스 부산 선발 대회를 열겠습니다. 1번 북구에서 온 김00양, 늘씬한 키에 수려한 외모입니다. 2번 남구에서 온 박00양, 팔등신 몸매에 지적인 이미지입니다. 3번 서구에서 온 한00양, 균형 잡힌 몸매에 교양이 수준급입니다. 4번 해운대구에서 온 최00양, 깜찍한 미모에 S라인이 멋집니다. 5번 사하구에서 온 이00양, 재치있는 말솜씨와 화사한 미소가 일품입니다. ................................
한참 배추를 들여다보고 있는데 난데없이 고함 소리가 들렸다. “여보, 빨리 안 거들고 뭐해요?” “어, 알았어!” “꾸물거리지 말고 빨랑 빨랑 움직여요.” “알았다니까.” 곱상스런 배추들을 무지막지하게도 소금물에 풍덩 빠뜨려야 했다.
하늬는 주택에 살 때까지 집에서 키우다가 아파트로 이사간 다음부터는 산장에서 키운다. 우리가 없는 사이에 여기 저기 헤집고 다녀서 시커먼 검댕 투성이가 되었다. 이건 완전히 '개데델라'와 같다.
날씨가 추우니 하우스 안에서 절이고 김장을 담기로 했다. 난로를 피워 고구마도 구워 먹고 쌈배추에 굴을 싸서 저녁을 맛있게 먹었다.
내가 가꾼 배추가 알이 작기는 해도 속이 노랗고 고소해서 파는 배추 부럽지 않았다. 농약을 안 치고 화학 비료도 뿌리지 않았기 때문에 무공해 배추다. 올해는 물도 자주 뿌려 주지 않았는데 그만하면 잘 컸다. 이 배추가 제대로 안 컸으면 할 수 없이 사서 김장을 했을 텐데. 다행히 이 정도라도 잘 커주어서 감사하다. 하느님은 내가 간절히 빌지 않았어도 말없이 다 들어주신다. 교회나 성당에 나가지 않아도.
<말하기 듣기> 최영재
속 시원히 다 말하라 하신다 사람들은 실컷 말한다
하나님은 듣기만 하신다 단 한 번 말하지 않으신다
그런데도 이 세상 사람들의 기도를 다 기억하시고 소원을 이루어 주신다
오늘 아침에 일어나 밥을 먹은 뒤에 절인 배추를 물에 씻었다. 흙이 별로 나오지 않아 한 번만 씻어도 되었다. 그러고 나서 아내는 찹쌀 풀을 쑤어 표고버섯 멸치 우려낸 물에 개더니 거기에 또 고춧가루와 젓갈과 마늘 다진 것, 새우 가루 등...갖은 재료를 뒤섞어 김치 치댈 양념을 만들었다. 김치 양념을 보니 김치가 얼마나 몸에 좋은 음식인 줄을 알겠다. 거의 종합 식품이었다.
아내와 나란히 앉아 김치 한 포기씩을 들고 양념을 치대었다. 둘이 하니 금방 끝났다.
아내는 배추에 함께 버무려 넣으려고 무를 손질했다. 무가 크지 않고 앙징맞게 생겼지만 맛은 좋았다. 내가 직접 키운 배추와 무로 김장을 하니 기분이 그저 그만이었다. 황제가 먹는 김치 못지 않다.
무까지 다 집어넣자 김장 일이 끝났다. 이제 맛있게 먹을 일만 남았다. 차에 김치 보물을 싣고 집으로 향했다.
석산리 범초텃밭 옆에 김덕홍씨가 농사 짓는 350평 밭이 있는데 나보고 빌려쓸 사람을 구해달라고 해서 인터넷에 희망자를 모집했더니 조인효씨가 신청을 했다.
김덕홍씨 집으로 같이 가서 경운기를 50만 원에 인수하고 내년 밭 임대료 20만 원도 선불로 주었다. 조인효씨는 좋은 이웃이 되어서 고맙다며 점심을 샀다. 나보다 10살이나 더 어려서 동생처럼 대하기로 했다. 인상 좋은 동생을 알게 되어 기뻤다.
김덕홍씨 밭을 둘러보니 어찌나 넓은지 끝이 없었다. 햐, 이렇게 넓은 밭이라면 무엇이든지 다 심을 수 있겠다.
큰 매실나무가 세 그루, 뽕나무도 4그루나 되었다. 산딸기도 지천이고...... 조인효씨는 하루 아침에 부자가 된 기분이라고 했다.
옆에서 보는 나도 더불어 행복했다. 내 밭과 동생 밭을 오가며 의좋은 형제처럼 사이좋게 지내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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