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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凡草텃밭 이야기 667회) 아무리 가물어도 싹은 트고...

凡草 2015. 10. 17. 18:39

 



(凡草텃밭 이야기 667)

 

20151017, 토요일, 맑음

 

<아무리 가물어도 싹은 트고...>

 

가을 가뭄이 심각하다.

도시 사람들은 수도를 틀면 물이 나오니 가뭄을 별로 느끼지 못하지만

밭 작물들은 가뭄 때문에 말라 죽거나 싹이 트지 않는다.


 텃밭에 핀 고려엉겅퀴 꽃


나도 범초텃밭에 마늘을 심어 놓고 비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는데

하늘은 놀리기라도 하듯 날마다 햇볕만 쨍쨍 내리쬔다.

범초텃밭은 물이 주변에 없어서 비가 올 때 플라스틱 통에 받아 놓는

정도인데 마늘을 심어 놓고 받아놓은 물을 두 통 다 뿌렸지만 역부족이었다.

밭의 반에 반도 적셔주지 못한 정도이니 어쩔 수 없이 비가 오기만을

기다려야 할 처지다.

    

 


그런데도 밭에 가보니 상추 씨앗과 마늘 싹이 돋아나고 있었다.

비가 온 뒤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살려고 나오는 애들을 보니 눈물겨웠다.

어떻게든 살려고 나오는구나생명은 참으로 강하다.

텃밭을 가꾸어 보면 열매가 열려서 거두는 재미도 쏠쏠하지만 맨처음에

싹이 터서 나오는 모습이 더 신기하고 경이롭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듯이 그 조그만 씨앗에서 파릇파릇한 싹이 돋아나오는

것을 보면 천지개벽이 따로 없다. 그야말로 내가 조물주라도 된 듯이

천지창조를 경험하는 순간이다.

싹이 트는 장엄한 순간을 한 번이라도 목격한 사람은 그때부터 텃밭의

노예가 된다고 해도 후회하지 않는다.

비가 오래 내리지 않는데도 흙을 뚫고 싹이 올라오는 것은 불가사의가

아닐 수 없다. 무엇이 저들을 저렇게 들끓게 만드는가? 밭에 서 있으면

소리 없는 아우성이 느껴지고 저들의 열정을 고스란히 이어받고 싶다.




     대파가 여릿여릿 하더니 슬슬 제 모습을 갖추어 가고 있다.

    곧 매운 맛을 볼 수 있겠구나.




  

비가 오면 양파 모종을 심으려고 잡초가 우거진 밭을 손보았다.

일부는 깨끗이 쳐내고 우선 적당히 풀만 베어내기도 했다.

한 번 더 와서 삽으로 뒤집어 놓으면 되겠다.

밭을 돌보는 동안 햇볕을 쬐며 일광욕을 하고 운동까지 해서 좋다.



도깨비바늘이 한 구석에 살아 남았다.

잡초라고 구박하며 마구 뽑아내었는데도 여전히 살아있다.

그런데 벌이 도깨비바늘 꽃에 떼를 지어 모여든다.

아, 저놈도 벌을 모으는 재주가 있구나.

벌을 잡기가 힘든데 도깨비바늘에서 대여섯 마리 잡았다.

세상에 쓸모없는 잡초는 없다는 것을 알았다.




가을은 수확의 계절이다.

부지깽이 손마저 빌려야 할만큼 바쁘다.

자투리 시간마저 아껴 써야 한 톨이라도 더 거두어들일 수 있다.

오가피 열매를 땄다.

가시에 찔려가며 열심히 땄다.

덜 익은 것은 놓아두고 익은 것만 땄다.

오가피 열매로 술을 담아 놓으니 먹을 만 해서 올해도 술을 담았다.

이런 것도 그냥 놓아두면 다 익자마자 땅으로 떨어져버려서 먹을 수가 없다.

손을 부지런히 놀려야 먹을 것이 나온다.

농사를 지어보면 사람이 저절로 부지런해진다.

게으르면 아무 것도 거둘 것이 없다.

열매는 언제까지나 사람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때에 맞추어 심고 때가 되면 거두어야 한다.

늦게 심어도 안 되고 너무 빨리 거두어도 제대로 익은 것을 먹을 수 없다.


까마중을 따서 효소를 담았다.

계속 열리는 까마중 열매.

오늘은 열매하고 줄기를 따서 병에 넣고 설탕을 부었다.

까마중을 키운 보람이 있다.

    


 


올해도 천성산 화엄벌 억새를 보러 갔다.

해마다 가을이면 찾아가는 억새의 명소다.

내가 너무 일찍 찾아간 탓인지 아니면 올해 비가 적게 온 탓인지 몰라도

억새가 작년만큼 풍성하지 않았다.

그래도 다른 곳보다는 눈요기 거리가 많았다.

  

       누리장나무 열매


  

많든 적든 억새가 바람에 흩날리는 모습은 환상적이다.

도시에 그냥 맴돌고 있는 것보다는 뭔가 색다른 풍경을 보아서 좋았다.

산이 아름답게 화장을 한 모습이다.

가을여자 같다.

천천히 걸어 나도 가을 속으로 들어갔다.

가을은 낭만과 서정이 넘치는 계절이다. (*)



출처 : 글나라
글쓴이 : 凡 草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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