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凡草텃밭 이야기 687회)
2016년 2월 4일, 목요일, 맑음
<행운은 누구에게 올까?>
2월 1일 월요일은 산에 가는 날이었다. 그동안 강추위가 계속 되어서 마음이 조금은 위축되었다. 감기를 살짝 앓고 난 뒤라 높은 산보다는 오봉산처럼 낮은 산을 걸으려고 생각했는데 문자가 왔다. 글나라 동화교실 해님반 회원인 옥녀씨가 산에 따라 가도 되느냐고 물었다. 나 혼자라면 오봉산에 가는 것이 편한데, 화명동 쪽에서 오려면 호포에서 금정산을 올라가는 코스가 제격이었다. 교통편도 거기가 유리하고. 그래서 금정산에 가기로 하고 호포에서 만났다. 호포역을 빠져 나와 고당봉 쪽으로 올라가는데 날씨가 아주 포근했다. 햇살도 따뜻하게 비추고 바람이 불지 않아서 산행하기에는 딱 좋은 날이었다. 고당봉 아래까지 올라가는 동안에는 다른 때와 별로 다를 것이 없었다. 옥녀씨는 눈이 쌓인 산에 가보고 싶다고 했는데 금정산에서 눈구경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여긴 눈이 오지 않을뿐더러 설령 눈이 왔다고 해도 금방 녹아버려서 눈구경을 하기는 어려웠다. 그러면 다음에 가지산이나 신불산에 가보자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고당봉 밑까지 접근했는데, 갑자기 눈앞이 얼음궁전으로 변했다. 눈속에서 설인이나 백곰이 스르르 나타날 것만 같았다.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 풍경이 쫘악- 펼쳐졌다. 우리를 맞이한 것은 늘 보던 그런 나무가 아니라 하얀 얼음을 뒤집어 쓴 수백 수천 그루의 나무였다. 크리스마스 트리 같은 나무를 보니 과연 여기가 금정산이 맞나 싶었다. 내가 금정산을 그토록 많이 올라다녔지만 이런 광경은 10년 만에 한 번 보기가 어려웠다. 1000미터 이상 되는 산에 가야 이런 풍광을 볼 수 있지, 770미터 정도 높이에서는 보기 어려운 모습이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조화인가? 눈도 녹지 않은 채로 있어서 완전히 겨울산 풍경이었다. 밤 사이에 누가 이런 진풍경을 만들어놓았을까? 나 혼자였더라면 다른 곳으로 갔을 테니까 이런 멋진 풍경을 보지는 못했을 것이다. 옥녀씨가 산에 가자고 하는 바람에 이런 절경을 볼 수 있어서 참으로 감사했다. 그래서 그날은 옥녀씨를 ‘얼음공주’라고 불렀다. 특별한 일이 아니면 매주 월요일마다 산행을 계속해왔기에 그런 행운을 누릴 수 있었다. 그러고 보면 행운이 느닷없이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부단한 노력을 계속하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선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날 아무 생각 없이 산에 올랐다가 멋진 풍경을 우연히 볼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꾸준히 산을 찾은 사람이 환상적인 풍경을 볼 확률이 높지 않겠는가?
그날이 682차 산행이었는데, 그 동안 여러 번 이런 서리꽃(상고대)를 보았다. 금정산에서는 이번이 처음이었지만 천성산에서, 가지산에서, 신불산에서 종종 보았다. 한 번은 겨울에 아내와 구미 금오산을 찾아간 적이 있었는데, 산 정상 부근에서 장엄한 서리꽃 터널을 보고 전율이 오도록 감동한 적이 있다. 나무마다 수정 같은 고드름이 주렁주렁 달려 있었는데 바람이 불 때마다 풍경처럼 뎅그렁- 뎅그렁- 딩동- 댕동- 경쾌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자연이 빚어낸 환상적인 서리꽃 풍경 속에서 나무가 만든 모빌이 내는 소리를 들으니 꿈속인가 싶었다.
산을 오르면서 건강을 유지하고 아름다운 풍경까지 덤으로 볼 수 있어서 감사하다. 산을 부지런히 오르다보니 감기도 가볍게 지나간다. 그날 산에 다녀온 뒤로 감기를 완전히 몰아냈다. 아플 때 산에 가면 덧날 것 같지만, 경험으로 미루어 보면 낫는 경우가 더 많았다.
산은 건강을 지켜주는 영양제요, 병을 치료해주는 치료제이며, 감사와 행복을 세트로 묶어놓은 선물 꾸러미와 같다.
점심도 혼자 먹을 때보다 두 사람이라 반찬이 두 배로 늘어나서 맛있게 먹었다. 날씨가 점점 풀리고 있으니 산에 가는 일이 더 즐거울 것 같다. (*)
|
'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凡草 텃밭 이야기 711회) 우리 나라에서 제일 재미있는 시상식 (0) | 2016.06.07 |
---|---|
[스크랩] (凡草텃밭 이야기 700회) 제자들과 함께 간 계몽아동문학회 봄 문학 기행 (0) | 2016.04.18 |
[스크랩] (凡草텃밭 이야기 645회) 다랭이 마을의 기적 (0) | 2015.06.08 |
[스크랩] (범초산장 일기 624회) 동양화보다 더 멋진 한라산 눈 풍경 (0) | 2015.02.11 |
[스크랩] (범초산장 일기 618회) 가슴에 지퍼 달린 다람쥐 (0) | 2015.01.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