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이야기

[스크랩] (凡草텃밭 이야기 698회) 소나무와 더덕

凡草 2016. 4. 11. 20:57




                               (凡草텃밭 이야기 698)

 

                              2016411, 월요일, 흐린 뒤에 갬

 

                                     <소나무와 더덕>

 

소나무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나는 썩 좋아하지는 않는다.

범초산장 둘레에 소나무가 몇 그루 있고, 하우스 앞에는 반송과

아기손바닥소나무가 있다.

산장을 인수하기 전에 후배가 심어 놓은 조경수다.


이 두 소나무 옆에 이웃 농장에 있던 최상철씨가 기념으로

더덕을 몇 뿌리 갖다가 심어주었다.

지금은 최상철씨가 농장을 팔고 떠났고

그 농장을 김송권씨와 민들레 화원 부부가 인수했는데,

사람은 떠났어도 더덕은 여전히 그 자리에서 새순을 밀어올렸다.


저 더덕은 천덕꾸러기처럼 수난을 많이 당했다.

내가 산장을 인수하기 전에 후배는 소나무를 해친다며 더덕을

파 없애라고 했다. 나는 차마 산 생명을 파 없앨 수는 없어서 지지대를

세워 주고 되도록 소나무쪽으로 줄기를 안 뻗도록 했다.

그래도 더덕은 줄기를 왕성하게 뻗어서 종종 소나무를 타고 올라갔다.



이번에는 아내가 더덕이 소나무를 다 덮는다며 뿌리를 파서 먹자고 했다.

할 수 없이 겨울에 더덕을 파서 먹었는데 어찌된 일인지

봄에 그 자리에서 또 줄기가 올라왔다. 나는 내심 반가웠다.

더덕이 저토록 생명력이 강한데 어떻게 없앤단 말인가?

사실은 난 소나무보다 더덕 꽃을 보는 게 더 좋았다.

그래서 이젠 범초산장의 당당한 주인이니 내 마음대로 하고 싶었다.

나는 보란 듯이 지지대를 세워 소나무를 타고 올라가도록 해놓았다.



내 머리 속에는 벌써 보랏빛 방울같은 더덕 꽃이 피었다.

올해는 뒷밭에도 더덕을 많이 심어 놓았지만 눈만 뜨면

얼른 볼 수 있는 곳에 더덕을 놓아두고 싶었다.

사람마다 취향이 다른 법이다.

누구는 소나무를 제일 좋아하지만 나는 더덕꽃을 더 좋아한다.

소나무를 죽이지는 않으면서 더덕꽃도 보고 싶다.


 

봉현이가 대만 공연을 마치고 돌아왔다.

축제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어 혼잡한 가운데

마술공연을 보다가 큰공이 다리를 쳐서 하마터면 무대에 서지 못할 뻔 했는데,

다행히 큰 부상이 아니라서 공연을 무사히 할 수 있었단다.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큰 무대도 서 보아야 하고

견문을 넓혀야 한다.

그런 면에서 대만 원정 공연은 여러 모로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아내와 범초산장에서 멍게비빔밥을 해먹었다.

요 근래 몇 년 동안 먹어본 비빔밥 중에서 최고의 맛이었다.

이 요리는 아내가 만들었는데, 짚신나물을 넣어서 지은 밥에

표고버섯과 양파를 볶아서 넣고, 초고추장을 한 두 숟가락 넣은 다음에

마지막으로 돌나물을 얹어서 달걀 프라이와 함께 비벼 먹었다.



아내가 멍게를 좋아하기 때문에 금요일 저녁에 내가 사다 주었는데

먹고 남은 멍게로 만든 비빔밥이었다.

산장에서 직접 딴 돌나물이 아삭아삭해서 맛이 더 좋았다.

다음에 또 한 번 해먹어야겠다.


 

은우 생일잔치를 앞당겨서 토요일에 범초산장에서 했다.

아들 부부가 모처럼 산장에 왔는데

아이들이 오자 조용하던 산장이 떠들썩해졌다.

아이들은 아파트에 갇혀서 소리도 마음껏 못 지르다가

산장에 오자 제 마음대로 악을 쓰고 뛰어다녔다.

아이들은 좋을지 몰라도 듣는 나는 곤혹스러웠다.

아들 부부가 밤늦게 돌아가고 나자 다시 평온을 되찾았다.




손자 손녀를 오랜만에 보아서 반가웠지만 있을 때는 정신이 없었다.

내가 세 아이를 키울 때는 어떻게 적응을 하고 살았는지

지금은 도무지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다.





 

배유안씨가 새 책을 내어서 나에게 보내주었다.

추사 김정희와 소치 허련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참 좋았다.

책을 한 번 잡자 확 팔려 들어 가서 끝까지 단숨에 읽었다.

오랜만에 아주 좋은 책을 읽었다.

추사는 진도에 살던 허련이 그림을 그려서 직접 들고

서울에 올라오자 만난다.

허련은 초의선사의 추천을 받아 추사를 찾아온 것이었다.

나 같으면 아직 신인이라 해도 친절하게 대해주었을 텐데

추사는 냉랭하게 대하면서 깊이도 없는 그림을 들고

무슨 자랑을 하러 왔느냐며 비웃었다.

허련은 심한 모멸감을 느꼈고, 그대로 돌아가 버릴까 하다가

서울까지 찾아온 것이 억울해서 사랑방에 며칠 더 머물기로 하면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결과적으로 보면 추사는 허련의 부족한 점을 묘하게 자극하고 질책하면서

대화가로 성장하도록 돕는다.

추사는 벼루에 구멍이 날 정도로 서예와 수묵화에 정진했는데

그것도 하나 둘이 아니라 열 개가 넘었다.

허련도 그런 치열한 작가 정신을 직접 눈으로 보고 감동을 받아

정진한 끝에 중국 동쪽에서는 최고의 화가로 인정을 받게 된다.

나는 이 글을 읽고 허련을 대가로 만든 것은

추사의 냉정하면서도 몸으로 보여준 가르침 때문이었음을 깨달았다.

나는 추사와 달리 제자들에게 칭찬을 많이 하고 편안하게 대해주지만,

칭찬만이 능사가 아니라 때로는 질책도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했다.


 

조립 앵글 부속품을 산장으로 배달시켜서 받았다고 지난주 일기에 썼다.

410일 일요일 오전부터 나 혼자서 앵글을 조립하기 시작했다.

나는 인터넷으로 주문해 놓고도 나사로 조립하는 방식이 아니라

그냥 손쉽게 끼워서 조립하는 앵글인 줄 알았는데,

막상 포장을 풀어서 조립해보려고 하니

나사와 볼트로 조여서 조립하는 제품이었다.

어쩐지 값이 좀 싸더니 그런 제품이었구나.

이제 와서 다시 반품할 수도 없고 울며 겨자 먹는 식으로

내가 설명서를 보고 조립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설명서를 난해한 수학 방정식처럼 어렵게 설명해 놓아서

도무지 알아먹을 수가 없었다.

내가 설명서를 썼더라면 세 살 먹은 아이도 조립할 수 있도록 했을 텐데

왜 이렇게 어렵게 써 놓았는지 모르겠다.

나는 설명서를 치워 버리고 대충 짐작으로 조립해 나갔다.

가로 150센티미터, 세로 60센티미터, 높이 150미터

이런 것을 두 개 조립해야 하는데 처음 하나는 시간이 되게 오래 걸렸다.



그걸 한 번 해보고 나니 요령이 생겨서

두 번째 것은 시간이 반밖에 안 걸렸다.

앵글 사이에 끼워 넣는 합판은 크기가 안 맞아서

톱으로 조금 잘라내어야만 했다.

시행착오 끝에 다 만들고 나니 성취감이 들었다.



기계치에다 손재주가 전혀 없던 내가 범초산장에 와서

이런 저런 자질구레한 일을 하다 보니

이런 것도 조립할만큼 손재주가 늘었다.

그러고 보면 사람은 날 때부터 무엇을 잘하는 것이 아니라

학습과 경험에 의해서 잘하게 된다.

무슨 일에 아무리 서투른 사람도 자꾸 하다 보면 늘기 마련이다.

잘못 한다는 말을 다르게 표현하면 노력이 부족하다는 말이 될 것이다.




앵글을 다 조립하여 창고 안에 넣어 놓고

하우스 안에 있던 온갖 짐들을 갖다 넣었더니 말끔하게 정리가 되었다.

창고 짓고 앵글 만드느라 돈은 좀 들었지만

덕분에 오래도록 편하게 쓸 수 있게 되었다. (*)




출처 : 글나라
글쓴이 : 凡草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