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9월 3일, 토요일, 비온 뒤에 개임
(凡草산장 이야기 728회) 주말마다 즐거운 캠핑
토요일이면 어김없이 범초산장으로 간다. 아내도 토요일만 되면 으례 가는 줄 알고 준비한다. 여름에 몹시 더울 때는 금요일 저녁에 가기도 했는데 이젠 많이 선선해져서 토요일 오전에 간다.
산장에 가기 전에 꼭 하나 해놓고 가야 할 일이 있는데 그것은 미국 딸로부터 걸려 오는 화상 전화를 받는 것이다. 큰딸은 토요일 9시만 되면 꼭 전화를 한다. 가까이 사는 아들은 한 달이 넘어도 전화 한 통 없는데 큰딸은 미국 뉴욕주에 사는데도 매주 전화를 한다. 아내와 30분 이상 온갖 이야기를 주고 받으니까 말이 미국에 살고 있을 뿐이지 옆집에 사는 것과 다름이 없다. 이번 주에는 새로 이사 간 집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큰딸은 그동안 셋집에서 살았는데 드디어 자기 집을 사서 이사를 했다. 사위와 둘이 버니까 은행 융자를 받아서 샀는데 집이 괜찮아 보였다. 큰딸이 슬슬 자리를 잡아 가는 것 같아 마음이 놓인다.
우리 집이 버젓이 있는데도 주말마다 시골에 가니 꼭 1박2일로 캠핑을 가는 기분이다. 하긴 범초산장은 완전한 집이 아니고 잠시 쉴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곳이니 계곡 옆에 야영하러 가는 것과 흡사하다. 숲이 울창한 곳에 산장이 있어서 주말마다 산사를 찾아가는 기분으로 손꼽아 기다린다. 산장을 마련한 지 벌써 7년이 지났는데 신기하게도 한 번도 가기 싫었던 적은 없었다. 공기 좋고 물이 1급수이니 하루 자고 나면 몸이 가뿐하고 새로운 힘이 솟는다.
거기다 그냥 캠핑만 하는 것이 아니라 적당한 노동도 하고 밭에서 나오는 먹거리를 수확할 수 있으니 일석삼조다.
범초산장에서 먹는 것은 도시에서 먹는 것과 조금은 다르다. 국수를 먹어도 넣어먹는 재료가 무공해 산야초다. 오늘은 점심에 비빔국수를 해 먹었는데 매실발효액과 고추장을 양념장으로 만들고 차조기를 썰어 넣어서 비벼 먹었다. 차조기 비빔국수는 다른 곳에서 맛보기 어려운 맛인데 아내는 차조기를 조그만 넣어 먹었지만 나는 듬뿍 넣어서 아주 맛있게 먹었다. 환절기에 몸이 적응을 못해 배탈이 나기 쉬운데 차조기를 넣어 먹으면 배탈 설사를 예방할 수 있어서 도움이 된다.
저녁에는 갈치 호박 조림을 먹었다. 아내와 내가 즐겨먹는 음식인데 밭에서 딴 호박에다 갈치를 넣고 고추가루, 마늘, 양파 등으로 끓여내면 맛좋은 갈치 호박 조림이 된다. 언젠가 통영에 가서 이 음식을 맛보고 반해서 호박이 나오는 철에 가끔 해먹는다. 갈치 호박 조림은 밥도둑이라 밥 한 그릇을 뚝딱 비우게 되는데 나는 아무리 맛이 있어도 한 그릇 이상은 먹지 않는다. 맛있는 요리를 해준 아내에게 감사한다. 나도 다음에는 갈치 호박 조림을 한 번 만들어 볼 생각이다.
밥은 발아현미에 쥐눈이콩과 율무, 랜틸콩 등을 넣고 비단풀, 한련초, 뽕잎까지 얹어서 했다. 요즘 비단풀이 한창이라 밥에도 시험삼아 넣어 보았는데 밥이 구수해서 맛있게 먹었다.
염주가 까맣게 익어가고 있다. 다 익으면 드릴로 구멍을 뚫어 감사기도를 올릴 수 있는 팔찌를 만들어 볼 생각이다.
지난 주에는 바람이 많이 불었는지 율무와 들깨가 쓰러져 있었다. 산장에 가면 내 손을 필요로 하는 것들이 많다. 일일이 세워서 줄로 묶어 주어야 한다. 오이도 줄기를 많이 뻗어서 밑으로 처져 있었기 때문에 줄로 다시 묶어주지 않으면 오이를 기대할 수가 없다. 뭐든 한 번 해 놓고 돌아서면 끝이 아니다. 수시로 점검하고 살펴보아야 제대로 수확을 거둘 수 있다. 농사를 지어보면 대충대충 살던 사람도 세심하고 꼼꼼한 성격으로 변하게 된다.
땅은 신기한 힘을 지니고 있어서 얼마 전에 깨끗이 베어 먹은 부추가 다시 또 수북하게 자랐다. 아무리 베어 먹어도 죽지 않고 살아나는 불사조같은 부추다. 부추술을 담아 먹으면 정력에 좋다고 하던데 근거가 있을 성 싶다. 검은 비닐로 몇 달간 덮어 씌워 놓아도 죽지 않을 만큼 생명력이 강하다.
지난 주에 무 심을 밭을 만들고 씨를 뿌렸는데 오늘 와 보니 벌써 싹이 돋아났다. 하늘이 물을 뿌려준 덕분이다. 마술사처럼 아무 것도 없었는데 싹을 꺼내어 보여주는 땅! 그 땅이 좋아서 주말마다 캠핑을 하러 온다. 배추도 일주일 사이에 조금 더 컸다.
쪽파도 새파랗게 돋아났다. 5천 원어치 씨를 사서 심었는데 저렇게 많이 돋아나다니.... 도시에서 5천 원으로 무엇을 사면 이처럼 기쁠까? 저 5천 원은 한 번 사고 나면 없어지는 게 아니라 두고 두고 불어나서 입을 즐겁게 해준다. 처음에는 그냥 5천 원이었지만 하룻밤 자고 날 때마다 그 돈이 자꾸 불어나서 나중에는 몇 만원으로 둔갑하게 되니 참으로 신기한 땅이 아닐 수 없다. 눈이 즐겁고 입을 기분좋게 해주는 텃밭은 꼭 어머니 같다. 어머니는 돌아가시고 안 계시지만 나는 텃밭을 일구며 어머니 사랑을 맛본다.
아들이 오랜만에 놀러 오면서 손자 은우와 손녀 세희가 따라왔다. 아들이 우리 자동차 엔진 오일을 갈아주는 동안에 내가 봐주었는데 만화 영화를 틀어주니 잘 보아서 별로 힘이 안 들었다.
고구마 꽃을 보았다. 드물게 피는 꽃이라 신기했다. 시골을 좋아하다 보니 남들이 보기 어려운 꽃도 본다. 오늘 하루도 캠핑을 잘 마쳤다. 선물처럼 감사한 하루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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