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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凡草산장 이야기 759회) 행복은 불행 뒤에 숨어 있어!

凡草 2017. 1. 30. 20:27


2017년, 1월 30일, 월요일, 맑음

 

(凡草산장 이야기 759회)  행복은 불행 뒤에 숨어 있어!


 

 1월 29일 일요일에는 혼자 범초산장으로 갔다.

 아침부터 추적추적 비가 내리고 있었다.

 윗 지방에는 눈이 온다는데 여기는 기온이 높아서인지 비가 쏟아졌다.

 겨울비치고는 제법 많이 내렸다.

 비가 와서 바깥 일을 못하고 난로를 피워 고구마를 구워 먹었다.

 커피와 함께 먹으니 혼자라도 분위기가 최고다.

 하우스 천장에 비 떨어지는 소리도 좋고,

 그윽한 커피 향에 달달한 고구마맛이란...



 1월 21일에 범초산장으로 군고구마 번개를 하러 왔던 회원 가운데

 몇 명이 매화 나무 가지를 받아 가서 꽃병에 물을 붓고 꽂아두었는데

 벌써 뿌이와 고이네 방에서 꽃이 피었단다.

 언젠가 필 줄은 알았지만 벌써 피다니!

 주인을 닮았는지 참 곱기도 하다.

 

글나라 동화교실 해님반 회원 김미라씨가 밴드에 올려놓은 사진이다.

아주 창의적으로 만들었다.

카페 회원 여러분의 행복을 빌어주기 위해 빌려왔다.

- 올 한해 모두 건강하시고 즐거운 일이 많기를 바랍니다.



겨울의 막바지 추위가 한창인데도 범초산장 마당에는

돌나물이 얼었다가 살아나고 있었다.

봄이 머지 않았다는 것을 알려주기라도 하듯이

초록색 잎과 줄기가 앙징맞다.

봄에 돌나물을 초고추장에 무쳐 먹을 생각을 하니 벌써 입안에 군침이 돈다.



점심을 먹으려고 나물거리를 찾아보니

바위취와 부지깽이 나물, 달래가 있었다.

한겨울이라도 살아 있으니 고마운 일이다.

된장과 참기름으로 무쳐서 점심을 맛있게 먹었다.

아직 봄이 멀었지만 혼자서 봄맞이 흉내를 내었다.



물 끓여 먹을 때 다른 재료와 함께 넣으려고 느릅나무 잔가지를 잘랐다.

위염과 여러 가지 염증에 좋은 나무다.

나무 한 그루만 있으면 나와 아내가 먹는 데는 충분하다.



저녁은 집으로 돌아와서 먹었다.

아내 생일이 2월 2일인데 평일이라 앞당겨 축하를 했다.

음식점에 가지 않고 집에서 오붓하게 치렀다.

정미가 사온 달걀 모양의 케이크가 이뻤고,

봉현이가 미역국과 갈비찜을 맛있게 만들었다.



오늘은 연휴 마지막 날이자 내가 매주 등산가는 날이다.

어디로 갈까 하다가 어제 비가 왔기 때문에

가지산을 선택했다.

평지에 비가 오면 높은 산에는 눈이 내리거나 서리꽃이 맺힐 가능성이 높다.

서리꽃(상고대)은 1000미터 정도 되는 높은 산에서 볼 수 있는데

아무 날이나 있는 게 아니고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고,  습기가 많은 날 아침에 주로 생긴다.


어제 비가 와서 습기가 많았고, 가지산은 1000미터가 넘기 때문에

분명히 서리꽃이 맺혔을 것이다.

<눈꽃이나 서리꽃을 보려면 비가 온 다음날을 노려라.>

이게 산을 많이 타본 사람들이 경험으로 알고 있는 노하우다.

비가 온다는 것은 어찌보면 궂은 일인데

서리꽃은 행운이므로

불행 뒷면에 행복이 붙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안 좋은 일을 당하고 나면 기운이 빠지고

의욕이 꺾이지만,

그걸 잘 참아내고 더 분발하면

얼마 안 가서 행복을 맛볼 수 있다.

나도 이런 일을 많이 겪어 봐서 시련을 당해도 낙심하지 않는다.


지난 1월9일에 가지산으로 눈을 보러 갔다가 만족한 결과를 못 보았기에

오늘 재도전하기로 했다.

아내와 같이 가면 힘들다거나 조금만 걷자고 하기 때문에

오늘은 혼자 배낭을 꾸렸다.

스마트 폰으로 검색을 해보니 양산터미널에서 언양까지 가는 직행 버스가

오전 8시 20분에 있었다. 완행을 타면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린다.

평소에는 9시가 넘어야 집을 나가는데

이 직행 버스를 타려고 잠을 두 번이나 설쳐가며

새벽부터 일어나 부산을 떨다가 이른 아침을 먹고

7시반에 집을 나섰다.

양산 터미널에서 언양가는 버스를 타고

언양 터미널까지 가서 내린 다음에 거기서

석남사 가는 버스로 갈아탔다.

조금 불편하지만 운전 안 하고 자유롭게 갈 수 있으니

이또한 행복하다.


석남사 절 밑에서 산을 올려다보니 말짱해서 오늘도 눈 구경을 못할 줄 알았다.

그래도 일단 내가 선택한 일이니 후회는 안 하기로 했다.

이러면 이런 대로 저러면 저런 대로 좋게 생각하는 것이 내 성향이다.

그러나 석남사 매표소로 들어가 산길을 따라 올라가 보니

먼 산등성이가 희끗희끗했다.

저러면 분명히 눈꽃이 피었다는 증거다.

그걸 보자마자 힘이 났다.

야, 신 난다! 야호!

한 번도 쉬지 않고 거의 논스톱으로 귀바위까지 올라갔다.

대단한 장관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환상적인 풍경을 보고 나니 새벽부터 설친 피로가 단숨에 사라졌다.

이만한 절경을 따뜻한 남쪽 어디에서 구경할 수 있단 말인가?

더 무엇을 바라랴!

산이 나에게 다가올 수 없으니 내가 산을 찾아가는 것이 맞고,

서리꽃을 산밑에서 편안하게 볼 수 없으니 어쩔 수 없이 높은 산을 올라가야 한다.



추위와 힘든 것을 두려워해서는 이런 풍경을 절대로 볼 수 없다.

용기있게 나서야 뜻밖의 행운을 얻을 수 있다.


지난 번에 손이 시려 고생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오늘은 철저히 준비했다.

양말도 두 켤레를 신고 장갑은 세 켤레나 넣었다.

그래도 혹시나 몰라서 주방에서 쓰는 1회용 비닐 장갑까지 챙겼다.

그걸 안에 끼면 상당히 보온이 된단다.

얼굴 보호대, 아이젠, 스패치 등... 준비할 수 있는 것은 다 갖고 갔다.

완전히 중무장이다.

높은 산에서 고생하지 않으려면 장비가 좋아야 한다.


다행히 오늘은 그전보다 춥지 않아서 땀을 흘리며 걸었다.

쌀바위를 지나서 위로 더 올라갔는데도 별로 춥지 않았다.


 

서리꽃 숲으로 들어가니 완전히 겨울 왕국에 초대된 기분이었다.

얼음공주가 금방 나타날 것 같은 분위기!

판타지 동화가 따로 없다.

이토록 하얀 궁전에 누가 살까?

오늘 두둑한 보너스를 받은 기분이다.

이 순백의 기운을 잘 담아가서 글도 열심히 써야지.


나는 불과 몇 시간을 투자해서 산 등성이에 올라섰지만

저 나무들은 밤새도록 찬 공기를 불러모아 서리꽃을 만들지 않았을까?

나무들이 애써 준비한 전시회를 공짜로 보기가 미안했다.

경건한 마음으로 사진을 찍고 하나 하나 눈여겨 감상했다.

똑같은 서리꽃 풍경 같아도 자세히 보면 모두 다르다.



바위 봉우리가 하얀 모자를 쓰고 있다.

겨울나무들에게 받은 선물인가 보다.

나무들이 정성들여 짜준 모자.

햇빛을 받고 찬란하게 빛난다.


연휴라 그런지 사람들이 많이 올라왔다.

용기 있게 나선 사람들은 모두 큰 선물을 받았다.

연신 싱글벙글 웃는 얼굴이고

쌍쌍이 와서 사진을 찍으며 좋아한다.

나는 혼자 왔지만 부럽지 않았다.

산이 내 친구요, 연인이니까.

나무들은 내 자식이 아니던가!

혼자 정신 나간 사람처럼 연방 웃었다.




늘 라디오를 들고 다니며 듣느라 불편했는데

좋은 집이 생겨서 배낭 옆에 달고 다니며 들었더니

손이 자유로와서 편했다.

라디오가 있으니 심심하지도 않았다.

작은 행복에 크게 만족한다.


정상까지 갈 수 있었지만

멋진 경치를 충분히 감상해서

무리하지 않으려고 중봉까지만 갔다가 돌아섰다.

끝장을 보려고 하는 것보다 적당히 참을 줄 아는 것도 지혜다.

그만하면 많이 보았다. 올 겨울은 이것으로 다 채웠다.

눈 풍경을 못 보아서 허전했던 마음을.

산을 내려와서 버스를 타고 오는 동안에도 내내 행복했다.

오늘은 엔돌핀과 도파민이 다른 날보다 몇배로 많이 나왔을 거다.

설 연휴 최고의 선물을 받았으니까. (*)








출처 : 글나라
글쓴이 : 凡草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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