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6월 5일, 월요일, 맑음
(범초산장 이야기 786회) 마르지 않는 계곡물
비가 너무 오래 안 내린다. 전국적으로 가뭄이 이어지고 있다. 언제 비가 왔는지 기억조차 안 난다. 그래도 범초산장에 가면 계곡물이 마르지 않았다. 저수지도 바닥날 정도인데 아직도 물이 제법 남아 있다. 범초산장을 만든 지 9년째인데 아무리 심한 가뭄에도 계곡물이 마른 적은 없었다. 참으로 감사하다.
나도 제자들을 사랑하고 열심히 가르쳐서 정과 가르침이 마르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통영 미래사 절 앞에서 본 풀인데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서 전문가에게 물어보니 <앵무새깃>이란다. 내가 심지도 않았는데 저절로 돋아난 명아주. 데쳐서 나물로 먹으면 참 부드럽고 맛있다. 요즘 밥 반찬으로 자주 먹고 있다. 공짜로 먹으면서 나도 남에게 거저 줄 것이 무엇인가 생각해 본다. 고추를 언제 심었더라? 한 달도 안 된 것 같은데 벌써 고추가 열렸다! 여기 저기 막 돋아난 고추잎을 솎아서 나물로 무쳤다. Y자처럼 위로 쭉 올라가서 두 줄기로만 튼튼하게 뻗어야 하는데 아무 데나 막 줄기가 나온다. 고추도 호기심이 참 강한 모양이다. 한 분야, 한 가지에만 호기심을 갖는 것은 좋은데 이것 저것 다 호기심을 가지면 성공할 가능성이 낮다. 고추잎을 따주면서 나는 엉뚱한 일에 시간을 허비하지 않았나 반성했다. 한 가지 일에만 매진해야 한다. 옆길로 나가려는 고추잎을 따면서 사람도 그런 경우가 많은 걸 보았다. 고추잎을 따는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이 이리 저리 새어 나가는 시간을 따주어야 한다. 심어 놓기만 하면 쑥쑥 자라는 가지와 오이, 토마토, 고추... 여름이 되기도 전에 벌써 따 먹는다. 아이고, 고마워라! 별로 잘 해 준 것도 없는데 이런 선물을 받다니! 텃밭 가꾸는 보람 중의 하나다.
먹는 것 못지 않게 꽃도 소중하다. 먹거리는 몸을 위한 것이고, 꽃은 마음을 위해 키운다. 사람이 먹는 것만 신경 쓰면 너무 세속적이고 그렇다고 꽃에만 사로잡히면 구름 위를 걸으려는 사람과 같다. 양쪽을 균형있게 맞추어야 한다.
범초산장에 요즘 핀 꽃이다. 노란코스모스(금계국), 큰뱀무꽃, 채송화, 미국채송화(송엽국)... 포체리카(중국채송화)는 아직 많이 안 피었다. 꽃을 보면 마음이 환해진다. 어성초가 '나는 꽃이 아니요?' 하고 묻는다. 약초 꽃도 무리를 지어 피니 보기가 좋다. 염증에 좋은 어성초다. 바위취 꽃도 특징이 있다. 가위 모양이기도 하고 승리의 V자로도 보인다. 잎은 나물로 먹고 꽃은 덤이다.
한종나 회원한테 얻어 온 자색팬스테몬이 꽃을 피웠다. 가뭄이 심한데도 꽃을 피워서 물을 길어다 부어주었다. 수중 모터를 설치하여 물을 줄까 하다가 운동도 할겸 일일이 손으로 길어다가 뿌렸다. 고추, 오이, 가지, 토마토 등.. 먹을 것부터 뿌려주고 그 다음에는 약초와 꽃들이다. 삼지구엽초, 스타치스, 에린지움, 핫립세이지, 배초향, 염주, 해바라기, 들메나무, 일당귀, 호박, 정향풀, 뻐꾹나리, 월계수나무, 비파나무, 무화과, 부처꽃, 연밭 등..... 물 줄 곳이 너무 많아서 물뿌리개 2개를 들고 수십 번 왔다 갔다 했다. 덕분에 운동 한 번 잘 했다. 이 정도로는 몸살하지 않는 내 체력도 감사하다. 통영 갔다 와서 아내와 큰딸, 아들까지 몸살을 했지만 난 아무렇지도 않았다. 다들 편도선이 부었다고 하는데 나만 거뜬한 걸 보면 맨손체조와 오일플링 덕분이다. 감기 잘 걸리는 사람은 오일플링을 꼭 실천해 볼 일이다.
보리수가 흐드러지게 열렸다. 아직 다 익지는 않았지만 시간이 날 때 다 따서 술로 담았다. 눈으로 구경만 했으니 이제는 일할 시간이다. 이것 저것 따고 캐어야 할 게 많다. 일하는 것은 노동이지만 수확의 기쁨이 있으니 즐거운 노동이다. 힘들어도 마음이 즐거우니 덜 힘들게 느껴진다. 보리수 나무에 붙어서 한 알 두 알.... 손으로 일일이 땄다. 혼자서 나무 하나를 다 훑었다. 남의 집에 가서 딸 때보다는 덜 기쁘지만 참을성 있게 끝까지 땄다. 몇년 전에 유진목장에 가서 보리수를 따던 일이 생각난다. 주인은 따지 않고 우리보고 다 따라고 했다. 우리는 이런 횡재가 어디 있나 싶어서 마음껏 땄다. 몇 사람이 경쟁적으로 땄는데 게임하듯이 재미있었다. 오늘은 혼자 따니 재미가 없었다. 그때 본 유진목장 보리수가 좋아서 나도 범초산장에 보리수를 심었다. 세월이 흘러 내가 심은 보리수도 엄청 커졌다. 사람은 혼자보다 어울려야 신이 난다. 아내가 몸살이라 나 혼자 보리수를 땄다. 그래도 익은 보리수를 그냥 놓아둘 수는 없어서 끝까지 땄다. 여기 저기 제 마음대로 돋아난 깻잎 싹을 모아서 한 군데 옮겨 심었다. 거름도 없는 밭에 심어 놓으니 잘 크지 않았다. 고생하는 들깨 싹이 애처로워서 거름을 뿌려주었더니 한결 마음이 놓였다. 원래는 위 사진처럼 척박한 땅이었는데 거름을 뿌려주었다. 이제는 좀 잘 자라려나... 들깨잎도 상추 못지 않게 맛있는데... 금은화도 많이 피었지만 바빠서 딸 시간이 없다. 꽃차로 만들면 목감기에도 좋고 피로할 때도 좋은 차가 되는데... 양파를 캐었다. 작년보다는 알이 굵다. 한 알을 까 먹어보니 내가 기른 양파라 더 맛이 있었다. 당분간 양파는 사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마늘도 캐었다. 줄기를 잡아 당기니 잘 뽑혔다. 어쩌다 줄기가 끊어지면 호미로 캐었다. 작년보다는 알이 굵어서 농사를 지은 보람이 있다. 마늘 캐고 빈 밭에는 구포 시장에서 사온 고구마 모종을 심었다. 하도 가물어서 잘 살아날지 모르겠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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