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0월 30일, 월요일, 맑음
(범초산장 이야기 815회) 밤에 양파를 심다가 휴대폰을 날릴 뻔...
10월 28일에는 부산아동문학인협회 회원들과 가을 여행을 했다. 목적지는 경북 청도. 원래는 37명 정도가 신청했는데 집안 사정과 아픈 사람이 있어서 30명이 갔다. 맨먼저 유천에 있는 이호우, 이영도 생가를 보러 갔다. 오누이 문인의 집이었는데도 제대로 된 안내판 하나 없어서 아쉬웠다. 청도군에서 생가를 매입했다니 잘 관리해서 볼거리를 만들어주면 좋겠다. 와인터널이나 소싸움 경기장, 용암온천에는 사람이 몰려도 유명 문인이 살던 집은 한산한 걸 보면 우리 나라는 정신문화보다 물질 문화를 더 우선하고 있다. 그나마 생가 근처에 이호우, 이영도 시비가 서 있어서 기념 사진을 찍었다. 그래도 청도 와인터널 부근에 시비가 많이 서 있다니 다행이다.
청도 읍성은 복원중이었다. 임진왜란 전에 읍성을 쌓았지만 정작 왜군이 몰려오자 군수가 산으로 달아났다니 성을 쌓아봤자 헛일이다. 무기나 성벽보다 더 강한 것은 정신력이 아닐는지... 다른 곳과는 달리 석빙고 내부를 들여다 볼 수 있어서 좋았다. 흙으로 돌 위를 덮었는데 세월이 지나는 동안에 허물어져서 볼 수 있게 되었단다. 조상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는 건축물이다. 점심은 운문사로 가다가 동곡에 있는 산동관에서 먹었다. 돼지고기야 어디서나 먹는 것이지만 후식으로 청도반시를 내어 놓은 것이 주인의 배려였다. 홍시로 유명한 곳이라 맛있게 먹었다. 여행을 가면 그 지방 막걸리도 맛보는데 여기서는 동곡 막걸리가 나왔다. 부산 생탁과는 조금 다른 맛이었다.
이어서 찾아간 곳은 박하담 고택과 선암서당 마침 같이 간 서곡 박지현 선생님이 박하담 16대 손이라 조상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고택에서는 남녀가 유별하여 자는 방이 달랐지만 서로 만나고 싶을 때는 몰래 드나드는 문이 있었다고 해서 엄격한 규율 뒤에 숨은 인간의 욕망을 더듬어 볼 수 있었다. 민병도 갤러리를 찾아가기 위해 청도천을 따라 가을 길을 걸어가는 것도 낭만적이었다. 징검다리를 건너는 멋진 길도 있었다. 민병도 갤러리는 개인 미술관이었는데 아주 잘 꾸며 놓았다. 그림과 시, 시조, 동시까지 쓰는 예술인이라 놀라웠다.
마지막 코스로 운문사를 찾아갔다. 거기는 가을 단풍이 절정이었다. 부산에서 못 본 단풍을 제대로 보았다. 정다운 문우들과 사진을 참 많이 찍었다. 제자들과도 곳곳에서 틈만 나면 찍었다. 그날 하루동안에 일년 내내 찍을 사진을 다 담았다.
손수자 선생님이 보내준 떡과 한정기씨가 준비한 시루떡을 맛있게 먹었고 강경숙씨가 어머니 돌아가신 중에도 사과와 배를 보내주어서 감사한 마음으로 먹었다. 그리고 간사들이 애써 준비한 덕분에 간식 잘 먹고 편안하게 여행을 마쳤다. 구옥순 회장님과 이자경 사무국장, 양경화 간사 등 여러분에게 감사드린다. 10월 14-15일 한국아동문학인협회 창녕 세미나, 10월 21-22일 계몽아동문학회 황금펜 시상식에 이어서 부산아동문학인협회 가을 여행까지 하고 나니 범초산장에서 일할 시간이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밤에 휴대용 전등을 켜놓고 양파를 심었다. 어정어정하다간 양파를 제때 못 심고 넘긴다. 어두운 곳을 전등으로 비추어 가며 겨우 겨우 심어 놓고, 물을 주려고 계곡으로 갔다. 한 손으로 물통을 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휴대폰을 켜서 비추었고... 물을 주고 있는데 갑자기 전화가 왔다. 한 손으로 화면을 밀어서 열다가 그만 떨어뜨리고 말았다. 아차! 순간적으로 일어난 일이다. 휴대폰이 물그릇 속에 퐁당! 놀라서 후다닥 꺼냈지만 이미 물이 들어갔는지 화면이 꺼져버렸다. 다시 켜니 화면은 안 나오고 우르릉 진동을 하며 몸살을 했다. 아무리 해도 원래대로 돌아오지 않아서 답답했다. 어쩔 수 없이 배터리를 빼내고 휴대폰을 이불 밑에 넣어서 말렸다. 전기 보일러를 켜서 따뜻하게 하고 아침에 일어나서 켜 보았더니 뜻밖에도 정상으로 회복되었다. 물이 많이는 안 들어갔던 모양이다. 배터리를 본체와 분리해서 말린 것이 도움이 된 것 같다. 하마터면 새 전화기를 살 뻔 했는데 다행이었다. 전화기가 없으니 세상과 완전히 단절된 것 같아 불안했다. 연락도 안 되고 알람도 할 수 없고... 긴급한 상황이라면 낭패를 당할 뻔 했다. 전화기를 잘 다루고 분실하지 않도록 조심해야겠다. 시간을 억지로 짜내어 마늘을 두 고랑, 양파는 세 고랑을 심었다. 겨우 일을 다 마쳤다. 그러고 보면 땅은 겨울에도 쉬지 않고 일 한다. 범초산장에도 가을이 깊어가고 있다. 단풍이 조금씩 들고 있다. 문학 세미나도 좋았고, 문우들과 함께 한 여행도 낭만적이었지만 역시 나는 범초산장에 머무는 시간이 제일 행복하다. 산장이 없었다면 나는 참 허전한 마음으로 심심하게 살았을 것이다. 일하고 표고버섯 라면을 끓여 먹었다. 반주는 노봉방 술 한 잔. 술이 달달해서 마시기에 좋다. 도라지 집 개가 새끼를 6마리 낳았다. 강아지를 보니 참 귀엽다. 어찌나 마음에 드는지 한 마리를 사서 키우고 싶었다. 하지만 한 번 샀다간 평생을 책임져야 하는 법. 먹이를 챙겨 주고 외롭지 않게 하려면 산장에 꼼짝없이 매여 있어야 한다. 나도 그런 생활을 바라지만 아직은 아닌 것 같다. 제자들에게 동화 지도를 해야 하니 산장에만 머물 수는 없다. 곰곰이 생각한 끝에 당장은 키우지 않기로 했다. 사실은 개를 키우기 위해 산장을 마련한 것인데 무턱대고 사서 키우다가 뒷감당을 못하고 팔아버릴까 두렵다.
동그라미 계원들이 산장에 놀러왔다. 이홍식씨가 물탱크를 만들 때 용접을 해주어서 내가 소머리를 사서 한 턱 냈다. 양산 축협마트에 가서 반 마리를 6만 5천 원에 사왔다.
하루 전부터 찬물에 담가서 피를 빼내고 큰 솥에 로즈마리, 초석잠, 어성초, 꾸지뽕 등 약초를 넣고 3시간 정도 고았더니 고기가 연해졌다. 쇠고기가 이렇게 야들야들 맛이 있다니! 계원들이 잘 먹었고 나도 덕분에 몸보신했다. 범초산장에도 감이 익어가고 있다. 딱 5개가 열렸다. 내년에는 더 많이 열리겠지. 내가 감을 좋아하니 11월 중에 감나무를 한 그루 더 심어야겠다. 가을이 깊어갈 때 빨갛게 익은 감을 보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