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1월 14일, 화요일, 맑음
(범초산장 이야기 818회) 나를 부자로 만들어 주는 산장
11월 11일 토요일에 참샘회 회원들이 범초산장에 놀러오기로 했다. 내가 잘 해줄 수 있는 것은 약초삼계탕이다. 산장에 온갖 약초가 있으니 재료 준비는 아무 문제가 없다. 엄나무, 인진쑥, 구기자, 꾸지뽕나무, 어성초, 로즈마리, 초석잠, 금강초 등을 준비하여 닭과 함께 가마솥에 넣고 끓였다. 요즘 가을 가뭄이 심해서 비가 통 안 내린다. 물탱크에 받아둔 물도 거의 다 써 간다. 할 수 없이 통을 들고 물을 받으러 도라지집에 갔다. 옆집에 지하수가 있으니 염치불구하고 물이 필요하면 뜨러 간다. 고맙게도 늘 선선히 떠 가라고 해서 마음 편하게 떠 온다. 그 집 아주머니가 꽃밭을 잘 가꾸어서 여러 가지 꽃이 많이 피었다. 물도 뜨고 꽃도 감상한다. 얼마 전에 과수원집에 가서 오가피 열매를 만 원 어치 사왔는데 우리집 오가피 나무도 열매가 열렸다. 첫 수확이다. 내가 심고 따는 열매라 보람이 있다.
비가 오지 않아서 계곡 물이 조금 밖에 안 남았다. 물이 필요할 때는 도라지집에서 떠 오면 되지만 내가 좋아하는 비가 오지 않으니 아쉽다.
닭죽에 넣을 은행을 쉽게 까는 방법을 찾아내었다. 펜치 볼록한 부분에 은행을 넣고 망치로 살짝 치면 껍데기가 잘 까진다. 그 전에는 이로 깠는데 이를 보호하려고 지금은 이렇게 깐다. 참샘회원들에게 은행도 맛보이려고 한 알 한 알 정성껏 깠다.
점심 때 참샘회원이 왔는데 6명 가운데 바빠서 3명만 왔다. 구문희, 강 숙, 황미향씨가 왔다. 해마다 우리 부부를 초대하여 식사 대접을 하는데 조금이라도 빚을 갚으려고 했는데 반밖에 안 와서 서운했다. 2시간 반 정도 고았더니 닭은 먹기 좋게 익었다. 약초를 넣어서 담백했다. 모두 맛있게 먹어줘서 준비한 보람이 있었다. 닭죽도 잘 되었다. 모두 보신 음식이라며 잘 먹어서 기뻤다.
진이도 인기 스타가 되어 사진 촬영을 받고 있다. 멍멍! 잘 좀 찍어줘요~~ 참샘 회원들에게 마음의 빚을 갚으려고 했는데 선물을 한 보따리 들고 와서 도로 빚을 졌다. 이 사진 말고도 떡과 과자까지 가져왔다. 은행을 한 그릇 까서 죽에 넣어주었는데 몇 배가 되어 돌아왔다. 아이구, 혹 떼려다 도로 붙이고 말았네! 참샘회 회원들이 가고 나서 저녁에는 딸과 사위가 찾아왔다. 내 생일이 평일이라 휴일에 차려주려고 방어 회를 사왔다. 딸은 요리 솜씨가 상당해서 방어회 말고도 냉동 참치 회를 토치로 녹여 멋진 요리를 선보였다. 출장 요리사 저리 가라다. 노래 잘 하고 요리까지 잘 해서 대견스럽다. 이렇게까지 안 해도 되는데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지나간 생일 중에는 가족이 대충 챙겨준 적도 있어서 그때는 조금 서운한 마음이 들기도 했는데 최근 몇 년간은 융숭한 대접을 받고 있어서 이것도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참 이래도 문제고 저래도 문제다. 간소한 생일을 보내는 것이 좋다는 것을 이제야 깨달았다. 나이 드니 나도 조금 철이 드는구나 싶다. 음식 사진을 올려놓고 바로 화장실 사진을 공개해서 좀 그렇긴 하지만, 나는 이 낙엽을 보고 퍽 흐뭇했다. 화장실 옆에는 큰 단풍나무가 한 그루 있는데, 요즘 낙엽이 엄청 많이 떨어지고 있다. 이 낙엽들을 공짜로 주워서 화장실에 채워서 냄새를 없애고 항아리에 가득 담아 두면 볼일 보고 나서 변기 속에 던져 넣을 수 있다. 이러면 위생적으로 좋고 나중에는 거름으로 쓸 수 있다. 내가 떨어지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단풍나무가 낙엽을 무수하게 뿌려주니 풍성한 낙엽을 볼 때마다 부자가 된 기분이다. 산장에 오면 이런 기분을 느낄 때가 아주 많다. 250평 밖에 안 되는 산장인데도 아무 것도 아닌 나를 종종 부자로 만들어주니 고맙다.
서리가 내렸는데도 케일은 여전히 잎이 싱싱하다. 올 때마다 한 봉투 따 가서 쌈을 싸 먹는다. 더울 때는 벌레가 많아서 잎에 많은 구멍이 났는데 이제는 벌레도 없어서 잘 크고 있다. 추위를 이겨내는 케일이라 몸에도 좋을 성 싶다. 다른 때 같으면 월요일에 나 혼자 등산을 갔는데, 지난 월요일에는 진이와 함께 산에 갔다. 여태 비닐 끈으로 묶어서 산보 훈련을 시켰는데 애견 마트에 가서 13000원을 주고 깔끔한 끈을 샀다. 그 끈에 묶어 산으로 데리고 갔다. 생각보다 졸졸 잘 따라왔다. 안 따라가겠다고 말썽을 부리지도 않는다. 고분고분 잘 따라오니 신통하기만 하다. 이렇게 어린 강아지가! 집에만 갇혀 있다가 산으로 가니 참 좋아하였다. 공덕산 정상까지 올라가니 눈앞에 철마산이 보였다. 거기까지 갈까 하다가 혹시 무리가 될까 봐 참았다. 아직 어린 강아지를 혹사시키면 안 되니까. 사람이 하고 싶은 일이 있어도 참아야 할 때는 참아야 한다.
2시간 정도 걷고 내려왔는데, 기대 이상으로 잘 걸었다. 이제부터 산에 가는 것은 전혀 문제가 안 되겠다. 진이와 함께 자주 산에 갈 작정이다. 내려오다가 도라지집 아주머니를 만났는데 진이 생일이 2017년 9월 20일쯤 된다는 것과 엄마 개는 진돗개와 아키다의 교배종이고, 아빠 개는 노란 진돗개라고 했다. 그러고 보니 피는 못 속인다. 진이 귀끝에 노란 색이 묻어났다. 크면 노란색이 더 살아날 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두 달이 채 안 된 강아지가 그토록 잘 걷는 것을 보고 놀랐다.
진이는 먹성이 좋아서 사과, 감 등 가리지 않고 잘 먹는다. 초콜릿이나 양파, 오징어, 새우 등 개에게 해로운 것 말고는 내가 먹는 것을 나누어 줄 작정이다. 산에 갔다 오느라 수고해서 상으로 개껌을 던져주었더니 아주 좋아하며 뜯었다.
2017년 건설문학상 공모전에 15매 내외 동화 2편을 보냈는데, 동화 부문에서 당선되었다. 제자들을 지도하느라 바쁘다 보니 내 글이 안 써져서 한동안 자신감이 떨어졌는데, 상을 받고 나니 조금은 자신감이 회복되었다. 이번 글은 응모자격에 제한이 없었지만 가명으로 응모했다. 등단작가라 걸려봤자 본전이고 떨어지면 망신이라 조심스러웠다. 하필 마감날 무렵에 동길산 시인으로부터 마을 버스에 대한 글을 청탁 받아서 그 원고를 30여 매 써 보내고 나니 겨우 4일 밖에 남지 않았다. 시간이 촉박했지만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고 부랴부랴 구상해서 두 편을 급하게 마무리 하여 인터넷으로 접수했다. 그게 마감날인 9월 15일 밤이었다. 수상자 발표를 시월 말에 한다고 해서 떨어진 줄만 알았는데 11월 7일에야 최우수상에 뽑혔다고 주최측에서 연락을 했다. 이번에 뽑힌 동화는, 건설에 대한 내용을 써야 해서 무엇을 써보낼까 궁리하다가 땅 파는 두더지를 주인공으로 썼다. 제자들 가르치는 나를 모델로 하여 두더지 속에 녹여내었다. 또 하나는 집을 잘 짓는 비버아저씨와 집 짓는 기술을 배우고 싶어하는 수달을 등장시켜서 이야기를 전개시켰다. 이것도 어떻게 보면 스승과 제자 이야기다. 결국 내 이야기를 의인화 동화로 바꾸어 쓴 셈이다. 작품을 쓸 충분한 시간이 없었는데도 상을 받게 되니 어리둥절하기도 하고 내 글솜씨가 아직은 녹슬지는 않았구나 하는 생각도 든다. 상 받은 턱을 내려고 오늘 해님반 회원들에게 밥을 샀다. 많은 제자들에게 일일이 다 사줄 수는 없고 지금 배우고 있는 해님반과 달님반, 그리고 신세계 동화교실 회원들에게 사줄 생각이다. 나도 여태 많이 얻어 먹었으니 이런 기회가 와서 감사하다. 제자들도 좋은 자극을 받아 열심히 쓰기를 바란다. 미국에 있는 손녀가 할로윈 데이 행사를 했단다. 닌자 거북이를 좋아하는지 그 옷을 입었다. 딸도 병원 잘 다니고 사위와 손녀가 건강해서 반갑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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