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1월 5일, 일요일, 맑음
(범초산장 이야기 816회) 강아지 선물
내가 어릴 때 집에서 개를 키웠다. 작은 주택이라 마당에 묶어 놓았다. 학교에 갔다 오면 날마다 개와 놀았다. 형들은 나이 차이가 있어서 나하고 놀지 않았고 내 친구는 개였다. 개를 풀어서 공을 던져 물어 오라고 시키기도 하고 '손'하고 말하면 앞발을 내미는 동작과, 일어서, 앉아 같은 훈련도 시켰다.
그 당시에는 학원에 안 다녔기 때문에 학교에 갔다 오면 개와 노는 시간이 많았다. 다만 아쉬웠던 일은 개와 정이 들만 하면 엄마가 생활비로 쓰려고 개장수에게 개를 팔았다. 한 번은 팔아버린 개가 줄을 풀고 달려온 적이 있어서 다시 돌려 보내느라 엄청 많이 울었다. 그때 마음 먹기를, '내가 크면 주택에 살면서 개가 죽을 때까지 키워야지' 하고 다짐했지만, 커서도 그 다짐은 이루기 어려웠다. 주택에 조금 살다가 아파트로 이사 갔기 때문에 개를 키울 형편이 안 되었다. 내가 아무리 키우고 싶어해도 아내가 반대하니 뜻을 이룰 수 없었다. 말티즈를 10년 정도 키우기는 했지만 그건 개가 아니라 애완용 장난감이었다.
개를 키우기 위해 밀양 노루실 전원 주택을 샀고 2006년 3월 4일에 (범초산장 이야기 117편 참고) 진돗개 잡종인 '진이'를 데리고 들어가서 5년 정도 키우긴 했어도 끝까지 키우지 못하고 도중에 팔아버렸다.
돈 때문에 그 집을 팔아야만 해서 진이를 더 이상 키울 수가 없었다. 내가 키운 개 중에서 진이는 정말 충성심이 강한 개였다. 나와 가족을 정말 잘 따르는 개였기에 팔고 나서도 마음이 짠했다. 진이는 <똥쟁이, 너도 진돗개니?>라는 내 동화에도 등장했다. 지금도 진이가 눈앞에 삼삼하다.
요즘 이신아씨가 쓴 <히끄네 집>을 재미있게 읽었다. 이 귀여운 고양이를 보니 우리 집에서 키우던 <달리>가 생각났다. 딸이 키우던 고양이를 대신 맡아서 키워주었는데, 지금은 딸이 시집 가면서 데리고 가 버렸다. 고양이도 나름 매력이 있고 키워볼만 했다. 그래도 나는 고양이보다는 개가 더 좋았다. 고양이는 산책 시키기도 어렵고 손이 많이 간다.
지난 주에 도라지집 강아지를 보고 이뻐서 키워보고 싶었지만 죽을 때까지 키울 자신이 없어서 단념했는데, 11월 1일 수요일 오후에 전화가 걸려왔다. 받아보니 아내였다. "무슨 일로 전화했어?" "도라지집에서 강아지를 한 마리 주겠다고 하네. 키워볼까?" 아내가 친구와 범초산장에 놀러 갔다가 도라지집 강아지를 본 모양이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강아지가 운명적으로 다가오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좋지. 개는 그냥 얻는 게 아냐. 돈주겠다고 해." "개집과 목줄도 사야 하니 토요일에 가져간다고 할게." "고마워." 아내가 어쩐 일로 강아지를 키우라고 하다니! 기뻐서 펄쩍 뛸 것만 같았다. 곧 내 생일이 다가오는데, 이보다 더 좋은 선물이 있을까! 이번에는 어떤 일이 있어도 죽을 때까지 키워야지! 개를 위해서라면 어떤 희생이라도 치르겠다고 마음먹었다. 혹시 멀리 여행 갈 경우가 생기면 연갑씨에게 먹이를 부탁할 수 있으니 밀양에시 키울 때보다는 여건도 좋다. 범초산장은 시내라 언제든지 들어갈 수 있으니 먹이 주기도 쉽고. 그래서 어제 도라지집에 가서 강아지를 받아왔다. 아내가 암컷은 임신을 해서 강아지를 낳으면 처분하기가 곤란하니 수컷을 키우자고 해서 그 말대로 했다. 이름은 '진이'라고 지었다. 밀양에서 끝까지 다 못 키운 한을 풀기 위해서 같은 이름을 붙였다.
아내도 강아지가 귀여운지 자꾸 만지면서 놀아주었다. 개집을 만드는게 과제였는데, 철제 평상을 개조해서 푹신한 집을 그 안에 넣어주니 개집이 해결되었다. 도라지집에서는 강아지를 공짜로 준다고 했지만, 그냥 받기는 미안해서 인사 치레로 2만 원을 드렸다. 진돗개 잡종이고 아직 생후 두 달 정도라 어리지만 봄이 되면 등산도 같이 갈 것이다. 벌써부터 가슴이 뛴다. 어린 생명을 위해 나도 최선을 다할 작정이다. 고구마를 캐었다. 잡초도 못 뽑아주고 거의 방치하다시피 했는데 제법 굵은 것도 보였다. 미안한 마음으로 캤는데 생각보다 굵어서 땅에게 감사했다. 내년 봄에 먹을 상추를 심었더니 가을에 따 먹고 있는 상추 밑에 올라왔다. 신구 교대다. 어린 상추도 강아지처럼 보인다. 아침에 일어나니 첫 서리가 내렸다. 앞집 지붕이 하얗다. 이제부터 겨울 월동 준비를 하라는 신호로 보았다.
추위를 많이 타는 석류, 월계수나무, 무화과 등을 비닐로 싸주었다. 밭 구석에 굴러다니는 비닐포대, 비닐 조각을 주워서 감아주었다.
아침 기온이 많이 내려갔다. 실내 온도가 9도였다. 하우스 안에 작은 방을 하나 만든 덕분에 그리 춥지는 않았다.
날씨가 추워졌어도 아직 피어있는 꽃들이 있다. 너희들의 생명력이 대단하다. 더 추워지기 전에 머위 잎과 아주까리 잎을 땄다. 올해 마지막 쌈이 될지 다음 주도 있을지는 모르겠다. 밭에 서리가 내리는 것은 한 해 동안 고생했다고 푹 쉬라는 메시지 같다. 사과를 좋아하지만 감도 좋아한다. 올해는 장마가 심해서 감 농사도 잘 되지 않았다고 하던데 이렇게 굵은 알이 영글자면 농장 주인이 얼마나 고생했을까! 감사한 마음으로 깎아 먹었다. 참 달달했다. 사무실에 키우는 명월초가 엄청 많이 번졌다. 동화교실에 오는 제자들에게 삽목하라고 많이 나누어주었는데도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더 늘어났다. 남에게 베풀면 그만큼 더 들어오는 것 같다. 명월초 잎을 따서 효소와 멸치액에 버무려 반찬으로 했다. 율무 잡곡밥에 반찬은 세 가지라도 맛있게 먹었다.
진이가 새로 생겼으니 범초산장에 더 자주 가야겠다. 나를 구속하는 개가 아니라 자연에 더 오래 머물게 하니 그 또한 감사하다. 아인슈타인이 생전에 일본에 강연하러 갔다가 전보를 배달해준 종업원에게 팁 대신 이런 쪽지 한 장을 주었단다. <조용하고 소박한 삶은 끊임없는 불안에 묶인 성공을 좇는 것보다 더 많은 기쁨을 가져다 준다.> 이 쪽지가 얼마 전에 경매를 통해 7억원에 팔렸다나. 소박한 삶을 강조한 아인슈타인 말에 공감한다. 행복은 돈으로 살 수 없고 작은 것에 기뻐할 때 누릴 수 있다. (*)
부산일보에 2017년 10월 20일 금요일에 발표한 글 <남들처럼 살면 나는 사라져 버려 >
- 우리 삼촌은 자신감 대왕 / 김미희 / 한겨레아이들
우빈이 삼촌은 백수다. 좋은 대학을 나오고도 취직을 못한 채 빈둥빈둥 놀고 있다. 부모는 속이 바짝바짝 타들어가는 데도 삼촌은 시를 쓰면서 시간을 보낸다. 숲에 가서 매미와 놀고 논에서는 메뚜기 주례를 서주기도 한다. 동네 사람들은 머리가 어떻게 된 게 아니냐며 고개를 갸웃거린다. 삼촌은 이런 일을 하며 사는 것이 기쁘다. 남들이 보기에는 돈도 안 되고 시덥잖은 일이지만.
꼭 좋은 학교를 나오고 좋은 직장에 다녀야만 행복할까? 이 책을 읽어보면 자신이 즐겁고 신 나는 일을 하며 살아야 행복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남을 따라 하고 남들처럼 살려면 나는 사라져 버린다. 남들 눈에 맞는 나, 남이 좋아하는 나로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누구를 위해 살아야 하는가? 남의 기분이나 맞추며 살기 위해 태어난 것일까?
이 책 속에 나오는 ‘네모 나라 이야기’는 삼촌 이야기 못지않게 재미있다. 아기가 없어서 몹시 기다리던 네모 왕에게 엉뚱하게도 동그라미 아기가 태어난다. 네모 나라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법을 어긴 아기이기 때문에 죽이거나 버려야 한다. 신하들이 왕과 왕비에게 아기를 데리고 왕궁을 떠나라고 떠들어댈 때 왕비가 지혜를 발휘하여 아기를 구해낸다. 동그라미 아기도 다르게 보면 네모가 될 수 있다면서.
네모 나라 이야기도 남과 똑같은 모습으로 살지 않아도 된다는 교훈을 준다. 남들이 모두 네모라도 나는 세모나 동그라미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누가 뭐라고 하든지 꿋꿋이 밀고 나가야 한다. 내 얼굴과 성격이 세모인데도 억지로 네모에 맞추기 위해 살아간다면 그것만큼 불행한 일도 없다. 나는 나답게 살아야 행복한 인생이 된다. 김재원 (동화작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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