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집

[스크랩] (범초산장 이야기 813회) 작고 못 생긴 것만 땅으로...

凡草 2017. 10. 21. 10:27


  

    2017년, 10월 21일, 토요일, 맑음

 

   (범초산장 이야기 813회) 작고 못 생긴 것만 땅으로... 


     

    돼지감자를 한 소쿠리 캐었다.
    전혀 돌봐주지도 않았는데 저 혼자 컸다.

    알이 제법 굵어서 쪄 먹었더니 먹을 만 했다.

    크고 굵은 것은 먹으려고 캐냈고  알이 작고 못 생긴 것은 도로 땅에 묻었다.

    자잘한 것을 땅에 묻으면서 생각해보았다.

    '흙은 어머니구나! 크고 좋은 것은 다 우리들 먹으라고 주고

     어머니는 제일 안 좋은 것만 먹고......'

     작고 못 생긴 것을 다시 품어서 크고 좋은 것으로 키워주는 흙!

     흙을 만지면서 깊은 정을 느낀다.



               마 주아를 땄다.

               마는 땅 속에 있는 뿌리를 캐어서 먹는 것이지만

               주아도 뿌리 못지 않게 맛이 있다.

               이걸 심어도 마를 번식시킬 수 있는데

               마 줄기에 열매처럼 열린다.

               로즈마리와 남천 밑에서 마가 자라길래 뽑지 않고 두었더니

               몇년째 자라고 있다.

               주아를 따 먹기 위해 일부러 키우고 있다.



   내년 봄에 먹을 상추를 지금 심었더니 싹이 나왔다.

   저 작은 싹들이 겨울을 나는 걸 보면 참 신기하다.

   외투도 없이 겨울을 난다.



    석산리 범초텃밭과 범초산장에 상추를 심어 놓았다.

    겨울이 춥다해도 봄에 먹을 상추를 생각하면 너끈히 참을 수 있다.

    저 어린 상추가 겨울을 나는데 사람이 무엇을 못 참으랴!




   범초텃밭에는 무 씨를 늦게 뿌려서 이제 요만큼 자랐다.

   자주 안 갔더니 배추 모종은 가물어서 다 죽었고

   무는 잘 크고 있다.

   까치들이 배추는 쪼아 먹어도 무는 안 먹는 모양이다.




    조선일보 텔레비전 <자연애 산다> 프로그램에 밀푀유나베 요리하는 장면이 나와서

    아내가 흉내를 내어서 요리를 했다.

    장미꽃 모양의 만두도 나왔는데 그건 다음에 해먹어 보기로 했다.

    원래 본 레시피 대로 안 했지만 맛이 괜찮았다.

    다음에는 내가 그 레시피 대로 요리를 해보고 싶다.


    범초산장에 마늘을 심으러 갔다가 혼자 점심을 먹었다.

    양고추냉이(겨자무) 잎을 따서 쌈을 싸 먹었다.

    쌉쏘롬해서 맛이 좋았다.

    고등어를 한 마리 굽고 고추냉이 잎만 있으면 밥을 맛있게 먹을 수 있다.

    많은 반찬이 없어도 이거면 충분하다.



  

        범초산장 이웃에 있는 과수원집에 오가피 열매가 많이 열렸다.

        작년에 이 열매로 술을 담았더니 아주 맛있는 약술이 되었다.

        그래서 올해도 담으려고 찾아갔다.

        "오가피 열매 좀 파세요."

        "이웃 사이에 팔기는 뭘, 그냥 따 가세요."

   "아닙니다. 애써 농사 지은 걸 그냥 따면 되나요? 돈 드릴게요."

   나중에 만 원을 드렸더니 감까지 덤으로 주었다.

   주인 아주머니는 내가 딴 걸 보더니 더 따가라고 했지만

   큰 봉투를 들고 갔기 때문에 그만하면 충분했다.

   오가피 열매로 담은 술은 술을 못 마시는 아내도 좋아한다.

   물로 씻어서 물기를 뺀 다음에 30도 술만 부으면 되니 술 담기도 간편하다.

   30도 술을 부어 놓아도 석 달이 지나면 부드러운 술이 된다.

   내가 건강하게 지내는 데는 이런 약술도 한몫한다.

 


   마늘을 한 고랑 심었다.

   다른 집 밭에는 벌써 마늘 싹이 파릇하게 올라왔는데

   내 밭은 좀 늦다.

   부산의 경우, 양파는 시월 말에 심어야 하고

   마늘은 시월초에 심으면 좋은 것 같다.

   심는 시기가 늦었지만 정성껏 심고 잘 자라기를 빌었다.


    배추는 저 혼자서도 잘 크고 있다.

    초록색 잎을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진다.

    쌈 배추 먹을 날도 그리 멀지 않았다.

    한 달 정도만 있으면 된다.

 

    그러고 보니 농작물이 밭에서 크는 기간은 얼마 되지 않는다.

    2-3개월이 전부다.

    농사를 짓는 기간도 그렇다.

    일년 내내 농사짓는 것 같지만 알고보면 나무와 채소가 자라는 기간은

    최대한으로 잡아야 6개월밖에 안 된다.

    겨울이 물러가고 날씨가 따뜻해지는 4월 중순부터 10월 중순까지가

    식물이 자라는 기간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일년내내 크는 줄 안다.

    무슨 일이든 전부를 욕심내지 말고 반만 수확하면 만족해야 한다.

    자연도 반만 만족하라고 겨울이 있다.

    나무와 채소가 방학을 맞아 쉬는 기간이다.

    자녀 교육이든 사업이든 반타작으로 만족하면 고민할 일이 없다.

    

          도라지 꽃이 한 송이 피었다.

          피는 시기가 아닌데도 핀 걸 보니 신통하다.

          남들이 못하는 걸 해낸 도라지다.

          아무도 없을 때 자신만 피어 있으니 도드라진다.




           기온이 점점 내려가고 있지만

           천수국이 많이 피었다.

           저온을 좋아하는 꽃이다.

           다른 꽃들이 모두 시들 때 피어있으니 더 돋보인다.

           나만의 힘을 키워두면 남들이 힘들어할 때 더 오래 버틸 수 있다.

           사람도 까탈스럽지 않고 어디든 적응할 수 있어야 남들이 좋아한다.  (*)           

출처 : 글나라
글쓴이 : 凡草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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