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4월 15일, 일요일, 맑음
(범초산장 이야기 855회) 골담초 막걸리와 골담초 꽃밥
드디어 골담초 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이렇게 될 날을 기다렸는데 바라는 대로 되었다. 언젠가 양산 통도사 서운암에 갔을 때 골담초 꽃이 가득 핀 것을 보았다. 노란 나비떼가 앉은 듯 어찌나 이쁘던지... 나도 골담초를 키워서 꽃을 많이 피우고 싶었는데 3년을 준비하고 기다린 끝에 성공했다.
골담초 꽃은 먹을 수가 있기 때문에 더 좋다. 골담초 꽃 모양이 버선 같아서 버선꽃나무라고도 한다. 골담초는 뼈질환에 좋은 약초인데, 관절염, 신경통, 고혈압에 좋은 효과가 있다. 그 외에도 통증을 가라앉히고 혈압을 떨어뜨리는 작용을 하며, 류마티스 관절염, 요통, 생리불순, 생리통, 감기, 어지럼증에 좋다. 작년에는 골담초 꽃이 많이 피지 않아서 딱 한 번 밥에 넣어 먹었는데 올해는 많이 피어서 여러 번 먹을 수 있게 되었다. 막걸리에 띄워서 먹기도 하고 밥에 넣어 먹기도 했다. 마침 뽕나무 잎이 처음 나와서 뽕잎을 나물로 무쳐 먹었다. 별거 아니지만 범초산장에서 누리는 소확행이다.
토요일에 비가 와서 고추, 가지, 호박, 오이 등을 심으려고 두구동 금정농약종묘사에 들렀더니 주인 아주머니가 20일이 지나서 심어야 안전하다고 팔지 않았다. 참 양심적인 분이다. 다른 가게 같으면 달라는 대로 선뜻 팔았을 텐데 아직 밤 기온이 차다며 며칠만 기다리라고 했다. 나는 앞으로도 다른 곳에서 모종을 사지 않고 꼭 그 집을 이용할 것이다.
다음 토요일에 심기로 하고 범초산장으로 들어가서 준비해간 천궁 종자를 심었다. 철쭉이 너무 많아서 한 그루 뽑아내고 그 자리에 골고루 심었다. 범초산장에 천궁이 세 포기 있지만 더 많이 뜯어 먹으려고 인터넷으로 30여 개를 샀다. 천궁은 십전대보탕의 재료로 쓰이는데, 우울증, 사마귀, 부인병, 모발 관리, 발모, 혈액순환, 진통 효과, 고혈압 등에 좋다.
맨드라미, 나팔꽃, 풍선덩굴, 호랑이콩, 루콜라, 메리골드, 공작초 등을 심고 나서 환삼덩굴 어린 싹들이 많이 널려 있는 것을 보았다. 언젠가 도라지집 아주머니가 우리집 환삼덩굴이 너무 번져서 그 집 밭까지 올라갔다며 뽑으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그때 보니 환삼덩굴이 앵두나무까지 타고 올라가서 숲을 이루었다. 그걸 제거하느라 애를 먹은 적이 있는데, 오늘 보니 아직은 어려서 20-30센티미터 정도 되었다. 이럴 때 뽑으면 간단한 것을 그냥 두고 보다가 나중에는 사방으로 억센 밧줄처럼 퍼져서 감당을 못하게 된다. 수많은 날을 가만히 놓아두면 손바닥만 한 환삼덩굴이 키보다 더 크게 자라서 나중에는 제멋대로 활개를 친다.
술이든 담배든 게임이든 다른 무엇이든 늘어서 좋을 것이 없는 것들은 미리 미리 조심하고 사전에 끊어야 한다. 조금 더 해도 되겠지, 아직은 괜찮겠지 하고 안심하다가 끝내는 손을 쓰지 못할 지경이 되어버린다. 그러기까지는 여러 날의 좋은 기회가 있었는데도 다 날려 버리고 내버려두었기 때문이다. 나쁜 것들은 사실 처음에는 아무 힘이 없다. 약하고 여린 것인데 가만히 놓아두고 키워주기 때문에 악마로 변한다. 악마로 변하기 전에 손을 써야 자신이 편하다.
연갑씨가 땅콩을 키워보라고 권했다. 한 번도 해보지 않아서 어떻게 키우는지 묻자 자루를 가져올 테니 종자만 사오라고 했다. 나는 땅콩 키우기에 도전해 보기로 했다. 무엇이든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것은 즐겁다. 연갑씨는 어린 모종을 사오라고 말했는데, 나는 구포시장에서 땅콩 씨를 사왔다. 껍질채로 심는 줄 알았는데 껍질을 벗기고 심어야 한단다. 씨를 싹 틔우기 위해 모판을 마련하고 물을 뿌려주었다. 모종이 크면 심으려고 자루에 낙엽과 거름을 넣고 모래를 채웠다. 모종이 성공적으로 나오면 자루에 옮겨 심을 작정이다. 잘 될는지 궁금하다.
작년 가을에 만삼 모종을 심었는데 몇 개가 싹을 틔웠다. 잘 자랄지 지켜보아야겠다.
호장근 싹이 나오고 있다. 이것도 몇 번 실패한 끝에 이제는 완전히 자리를 잡았다.
감자싹이 나왔다. 감자는 많이 먹어 보았아도 감자싹은 처음 보았다. 무엇이든 직접 해보지 않고서는 모른다. 비닐 구멍에서 나오지 못한 감자싹을 빼내고 있는데 구멍 속에서 개구리가 튀어나왔다. 감자싹과 친구인가?
들메나무 싹이 나와서 맛을 보려고 몇 잎 땄다. 다섯 그루 심었는데 다 살아서 잘 크고 있다. 취나물보다 더 맛이 있다고 하는데 맛이 궁금하다. 진이는 밀양에 살던 다른 진이보다 심심하지는 않겠다. 도라지집 개가 종종 놀러오기 때문이다. 혹시 진이 밥까지 얻어 먹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혼자보다는 나을 것이다. 4월 15일이 손자 은우 생일이라서 축하하러 갔다. 은우한테 그림책과 수첩, 사탕을 선물로 준비하고 가방 속에 넣어서 숨긴 다음에 무엇인지 알아맞춰 보라고 게임식으로 유도했더니 재미있었는지 선물을 받고는 무척 좋아하였다. 식당에서 밥을 먹고 집에 가서도 수첩을 만지며 놀았다. 수첩에 공룡 그림을 다 그려오면 또 선물을 주겠다고 했더니 공룡 그림을 그리며 놀았다. 우리 집 딸과 아들들은 좋은 대학은 못 나왔어도 큰딸은 미국에 있기 때문에 아이를 안 봐 주어도 되고, 아들은 혼자 벌기 때문에 며느리가 은우와 세희를 키우고 있고, 막내 봉현이는 노래를 하느라 아직 아이를 낳지 않고 있다. 그런 덕분에 아내가 손자 손녀를 보아주지 않아도 되니 효녀 효자들인 셈이다. 좋은 대학 나온 자녀라도 맞벌이하느라 부모가 손자 손녀 봐주다가 대상포진 걸린 사람들도 있던데 거기에 비하면 우리는 행복하다.
신진 시인이 지은 <촌놈 되기>를 다 읽었다. 공감 가는 내용이 많았다.
- 시멘트 독 때문에 야생 붕어며 빙어는 물론, 비단잉어, 금붕어 따위를 일 년 내내 황천길로 내몰아야 했다. 그때는 볏집 가마니로 해독부터 해야 한다는 요령도 알지 못할 때였다. 물고기가 그럴진대 사람도 시멘트 속에 살면 해로울 것은 뻔하다.
- 일리치는 <공생을 위한 도구>라는 책에서 아무리 나누어 써도 부작용이 없는 아름다운 세 가지를 들었다. 자전거와 도서관과 시 - 3가지다.
- 민들레 신진
가장 낮은 자리에서 밝게 웃는 꽃 민들레 바위 틈, 잡초 틈, 소나무 밑동 자투리땅에서도 전신이 웃음 되는 사방연속 무늬 제 영역 없이 남의 발치에서 살아서일까? 마지막은 가장 가벼운 홀씨가 되어 드높이 뜨네.
- 노루 발자국 신진
이장네 밭두렁 노루발자국
샛별이 흘리고 간 낯선 주소
초생달의 머리핀
첫사랑이 깎고 간 발톱
이승에 내민 저승의 꽃잎
사실 이 책은 내용은 좋았어도 그리 재미있는 책은 아니었다. 신진 시인이 30년 이상 김해 대동면과 삼랑진 산중턱에서 시골 생활을 했다는데, 그런 체험을 수필 형식으로 생생하게 풀어내었으면 좋았을 텐데 자신의 주장을 너무 많이 늘어놓아서 시사평론집 같았다. 그래도 <노루발자국> 이 시는 참 마음에 들었다. 이 시를 본 순간 책 한 권 값이 아깝지 않았다. 노루발자국을 이토록 아름답게 표현한 시인이 또 있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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