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6월 16일, 토요일, 흐림
(범초산장 이야기 869회) 나만의 차 만들기
진이는 여름이 싫을 거다. 두텁던 털옷을 입고 있다가 털갈이를 하는지 털이 거의 다 빠졌다. 날씨는 더워지고 털이 몸을 덮고 있으니 얼마나 거추장스러울 것인지.... 게다가 진드기가 자꾸 달라붙어 피를 빠니 징글징글할 거다. 아내가 종종 잡아주고 약을 뿌려주지만 돌아서면 또 붙을 테니....
그래도 저 혼자 산장에서 잘 크고 있다. 일주일에 한 번은 약수터에 데려가서 풀어준다. 진이는 계곡물에 뛰어들어 목욕을 하고 아무 데나 뛰어다니며 묶여 살던 스트레스를 푼다. 어디 개만 그러해야 할 것인가! 사람도 일주일에 한 번은 마음껏 쏘다니며 쌓인 스트레스를 풀어야 하리라.
지난 겨울 강추위가 대단해서 월계수 나무가 죽은 줄 알았는데 다시 살아나고 있어서 반가웠다. 월계수 나무 주위를 삼잎국화와 파드득 나물, 뽕나무 등이 가리고 있어서 낫으로 확 잘라서 앞을 틔워주었다. 종종 살펴보지 않으면 작은 나무는 키 큰 식물들이 햇빛을 가려서 시들어 죽는다.
싸리꽃이 한창이라 산에 등산 갔을 때 한 봉투 따왔다. 싸리꽃은 신장에 좋고 고혈압을 낮춰주며 골다공증에도 도움이 된다. 산에서 공짜 약을 얻어온 셈이다. 싸리꽃을 주전자에 넣고 끓이면 빨간 색으로 변해 보기에도 좋다. 싸리꽃을 후라이팬에 덖어서 말리면 차 재료가 된다.
나는 녹차잎과 뽕잎을 덖어두었다가 싸리꽃과 섞어서 나만의 차를 만든다. 녹차를 많이 마시면 빈혈이 올 수 있고, 살찐 사람은 좋을지 몰라도 마른 사람은 몸이 차게 되어 안 좋다. 그래서 다른 차와 섞어 마시는 것이다. 뽕잎은 혈관 순환에 좋지만 맛이 보통이라 녹차와 싸리꽃이랑 섞으면 맛이 더 좋다.
생잎은 주전자에 끓여서 마실 수 있지만 늘 끓이는 게 불편해서 온수에 우려 마시려고 덖어둔다. 저녁에 책을 읽거나 글을 쓸 때 입이 심심하면 간식 대신에 나만의 차를 우려 마신다. 따뜻하니까 건강에도 좋고 기분 전환도 된다.
오래 전에 글나라에 다녔던 박철희씨가 시집을 펴냈다. 60대 후반에 글공부를 하러 와서 대단한 분이라고 생각했는데 팔순 기념으로 시집을 내었단다. 지금은 제주도에 살고 있는데 부산에 사는 문우에게 부탁해서 시집을 보내주었다. 더 놀란 것은 아직도 소녀 감성을 갖고 있었다. 꽃편지를 보니 이 분은 전혀 나이를 먹지 않았다. 이런 편지를 받으니 나도 소년이 된 기분이다. 큰 보물을 받은 것 같아서 하루 종일 기뻤다.
고구마와 갓이 잘 크고 있다. 6월 1일에 모종을 사다 심은 상추도 많이 컸다. 도라지꽃이 피기 시작했다.
고추가 달리기 시작했다. 고추에 진딧물이 너무 많아서 자리공과 식초, 매실, 소주 등을 섞어 천연농약을 만들어서 뿌려주었다.
어린 모종을 사다 심은 레몬밤이 자리를 잡았다. 호장근도 아주 많이 컸다.
주말마다 산장에 와도 지루하지는 않다. 이것저것 돌아볼 게 많고 손볼 곳이 많다. 유명 관광지를 찾아 가지 않아도 아쉽지 않다. 직접 키우는 즐거움이 그보다 더 크니까. 텃밭 가꾸는 것은 은근히 중독성이 있다. 그래서 박노해 시인도 이런 시를 쓰지 않았을까!
< 세 가지 선물 >
나에게 선물하고 싶은 것은 단 세 가지
풀무로 달궈 만든 단순한 호미 하나 두 발에 꼭 맞는 단단한 신발 하나 편안하고 오래된 단아한 의자 하나
나는 그 호미로 내가 먹을 걸 일구리라 그 신발을 신고 발목이 시리도록 길을 걷고 그 의자에 앉아 차를 마시고 저녁노을을 보고 때로 멀리서 찾아오는 벗들과 담소하며 더 많은 시간을 침묵하며 미소 지으리라
그리하여 상처 많은 내 인생에 단 한 마디를 선물하리니 이만하면 넉넉하다
해마다 부처꽃이 올라오는데 올해는 통 안 보여서 서운했는데 오늘 보니 딱 한 줄기가 올라왔다. 이거라도 반가웠다. 그래도 아주 죽지는 않았구나! 부처꽃은 물을 좋아하기 때문에 물을 떠다 뿌려주었다.
어제 양산 시장에 가서 깻묵을 사러 갔다. 작년에 이홍식씨가 깻묵을 몇 개 갖다줘서 밭에 뿌렸더니 확실히 잘 크고 있다. 식물한테 좋은 거름이 틀림없다. 참기름집에 가서 깻묵을 사러 왔다고 했더니 한 자루에 만 원이라고 했다. 들여다보니 대략 5개가 들었다.
원래 값이 그런가 보다 하고 만 원을 주고 돌아섰더니 배를 잡고 웃으면서 잔돈을 받아가란다. 무슨 말인지 영문을 몰라서 어리둥절 하자 놀려주려고 그랬다며 3천원만 내란다. 실제 값을 알고 나니 더 고마웠다.
남이 한 번 말하면 의심하지 않고 그대로 믿는 것이 순진하지만 그게 꼭 나쁜 것만은 아니리라. 남이 말할 때마다 진위를 가리기 위해 촉각을 곤두세우는 것보다 그냥 믿어주는 것이 마음 편하다. 세상을 영악스럽게 사는 것보다 어수룩하게 사는 편이 정신 건강에는 더 낫다고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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