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9월 3일, 월요일, 비
(범초산장 이야기 887회) 양하 꽃대를 기다리며...
영화 <빈센트>를 보았다. 독일 영화인데 ‘이탈리아 바다를 찾아’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이 영화에는 투렛증 환자, 강박관념 장애자, 거식증 환자 - 세 사람이 주인공이다.
‘투렛증’은 틱 현상이 더 심한 병인데 사랑의 결핍과 억압을 받으면 발병한다. 주로 엄격하고 규율을 강요하는 부모 밑에서 자란 자녀들이 이 병에 잘 걸린다. 못하면 못하는 대로 그냥 놓아두면 될 텐데 남보다 더 잘하기를 강요하고 자신의 방식대로 따를 것을 고집하면 이런 병이 생긴다. 가난하고 능력없는 부모보다는 사회적으로 출세하고 잘난 부모 밑에서 크는 자녀가 이런 병에 걸릴 확률이 많으니 아이러니컬하다. 내가 대학생 시절에 병원장 집에 가서 가정교사를 한 적이 있는데 그 집 아들이 소아마비 환자였다. 아버지인 의사가 온갖 예방주사를 다 놓아주고 너무 신경을 쓰다 보니 아들이 소아마비에 걸렸다. 무엇이든 지나치면 안 한 것만 못하다.
‘강박 관념’은 완벽주의자들이 잘 걸리는데, 무엇이든 너무 잘하려고 하고 무결점을 지양하다 보면 이 병에 걸린다. 집안이 지저분하고 책상 위가 어질러져 있으면 어떤가? 완벽주의자들은 무엇이든지 깨끗하게 하면 보기 좋고 위생적으로도 낫다고 하지만 정신 건강에는 해로울 수 있다. 강박 관념에 걸리면 모든 것이 불편하게 느껴지고 부딪치는 일마다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이건 정신적인 문제라서 몸이 아무리 건강해도 잘못하면 일찍 생을 마감할 수도 있다.
나도 한 때 사람들한테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아서 공황장애에 걸린 적이 있는데 참 힘들었다. 사람들 만나기가 두려웠고, 특히 대중 앞에 서면 가슴이 떨리고 서 있기조차 힘들었다. 그 당시 예술대학에 출강하고 있었는데, 해운대에서 대연동에 있는 예술대학까지는 10킬로미터도 안 되는 거리였지만 차를 몰고 가다가 공황장애 증세가 나타나면 운전을 할 수가 없었다. 금방이라도 실신을 할 것 같아서 호흡이 가빠지고 식은땀이 났다. 도저히 더 갈 수가 없어서 차를 갓길에 세우고 한참 쉰 다음에 억지로 차를 몰고 갔다. 매주 한 번 그런 고통을 겪으며 강의하러 다녔다. 그래도 결강 한 번 안 하고 출강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갈 때는 엄청 힘들고 죽을 것 같았는데 돌아올 때는 거짓말처럼 룰루랄라 콧노래를 부르며 오는 것이었다. 그게 마음에서 오는 병이었으니 그랬을 것이다.
그 뒤 범초산장과 산을 자주 찾으며 마음의 병을 극복했다. 자연은 역시 위대하다. 사람 속에서 얻은 병을 자연이 치료해주었다. 지금이야 운전도 잘 하고 많은 사람 앞에 서더라도 아무렇지 않다. 결국 마음먹기 나름인 셈이다. 사람이 한 번 호되게 아프고 나면 또 아플까 봐 미리 걱정을 하게 되고, 또 그런 증세가 생길 경우에는 극심한 공포감을 느끼게 된다. 이런 경우, 머리 어느 한 구석에 ‘공포 회로’가 생긴다. 그런 사람은 조금만 힘들어도 공포 회로가 작동하여 몸이 아픈 것을 느낀다. 마음의 병이 몸의 병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그까짓 것 아파봐라, 난 견딜 수 있다. 이런 배짱이 필요한데 그게 안 되기 때문에 힘든다. 대중 앞에 서면 얼굴이 빨개지고 호흡이 가빠지는 사람은, 차라리 말을 잘 못하고 부끄러움을 많이 탄다고 솔직하게 이야기하면 나은데 그걸 감추려고 하니까 더 힘들어진다. 마음의 병은 육체적인 운동을 많이 해야 고칠 수 있다. 강인한 체력을 기르면 나약한 마음도 조금씩 강해진다. 어쨋거나 세 환자의 엉뚱하고 사건이 많은 여행 이야기를 보면서 이런 저런 생각도 해보고 좋았다. 세상의 모든 환자들에게 마음과 몸의 평화가 깃들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이번 여름에는 방학이 끼어 있어서 본의 아니게 하루만 일하고 6일을 쉬었다. 늘 동동거리며 바쁘게 살다가 하루만 일하고 6일을 쉬니 늘어질 것 같고 지루할 줄 알았는데 그렇지는 않았다. 범초산장에 가서 3-4일을 일하고, 석산리 범초텃밭에도 가야 하고, 등산 하루, 신세계백화점 동화교실 출강, 글나라 동화교실 초등학생반 지도에다 별님반 동화교실 수강생 지도 등..... 6일도 나름 바빴다. 그래도 평소보다는 시간적인 여유가 있어서 어떤 날은 1시간 정도 낮잠을 자기도 하면서 느긋하게 지냈다. 그동안 바쁘게 살아왔으니 나이 들어서 이런 보상이라도 받아야 하지 않나 스스로 위안을 삼았다.
오늘은 양산 시청에 여권을 신청하러 갔다. 이제는 해외여행을 하고 싶은 생각이 별로 없어서 근 10년 동안 여권을 안 만들었는데, 동화 공부하는 어느 분이 초대를 해서 내년 1월에 5박6일 일정으로 일본을 다녀오려고 준비중이다. 나야 세계 어느 유명 관광지보다 범초산장이 제일 좋지만 아내에게 모처럼 점수를 딸 것 같다.
범초산장에 가서 밭을 새로 만들었다. 끝물인 토마토와 오이 덩굴을 제거하고 배추 심을 자리를 확보했다. 밭은 언제든지 재활용이 가능하니 참 좋다. 농작물을 심을 때마다 새로운 밭을 만들어야 한다면 큰일이지만 시든 잎과 줄기를 걷어내고 퇴비를 넣으면 새밭이 되니 신기하다.
올해는 폭염이 오래 지속되었어도 물을 충분히 공급해주었더니 염주가 잘 크고 있다. 동화팔찌를 또 만들어볼 생각이다.
8월 21일에 쪽파 씨를 사다 심었는데 비가 자주 와서 파랗게 싹이 나왔다. 파김치를 좋아하니 조금 더 크면 직접 담아먹을 작정이다. 어려운 동화도 쓰는데 파김치쯤이야. 후후-.
비가 장마철처럼 많이 오니 범초산장 계곡이 폭포로 변했다. 물이 많이 내려오니 보기에 참 좋다. 산장에 앉아 있으면 유명 카페 못지않다. 창밖으로 빗물이 줄줄 흘러내리고 실내에서는 음악이 흐르니 커피나 뽕잎차를 한 잔 하고 있으면 행복이 따로 없다. 사람이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큰돈이 없어도 된다. 돈으로 살 수 없는 행복이 주위에 쫙 널려 있다.
맥문동이 꽃을 피웠고, 양하 꽃대가 올라오고 있다. 여태 양하를 몇 년째 키웠어도 꽃대를 못 보았는데 올해는 제주도에 있는 분한테 오래 된 뿌리를 2만 원 어치 사서 반그늘에 심고 물을 주면서 열심히 관리했더니 드디어 꽃대가 올라오고 있다. 조금 더 올라오면 초장에 무쳐서 먹을 참이다. 무엇이든 힘껏 준비하고 노력한 다음에 인내심을 갖고 기다리면 이루어진다.
간식으로 갈아먹는 천년초는 범초산장 여기저기에 널려 있다. 이것도 모종을 5킬로그램을 샀더니 석산리 범초텃밭에 심고도 남아서 갈아 먹으려고 냉장고에 넣어놓았다. 오래 지나니까 썩어가기 시작해서 할 수 없이 빈땅 아무 데나 묻어 놓았더니 잘 크고 있다. 아로니아, 복분자랑 갈아 먹는 간식 재료가 모자랄 때마다 천년초를 캐어 먹고 있다.
내 건강의 원천은 뽕잎밥인데, 밥을 할 때 암 예방을 위해 율무를 넣는 것은 물론이고 목이버섯도 몇 개 넣는다. 한 번 사 놓으면 오래 먹는다. 건조한 것이라 상할 염려가 없고, 쫄깃쫄깃 해서 식감도 좋다. 요새는 금자씨 일기를 보고 밥 할 때 아로니아도 반 줌 집어넣는다. 아로니아는 7-8월에 한 번 수확하면 한 되 이상 나오는데 떫어서 그냥 먹기는 그렇고 지퍼팩에 담아서 냉동실에 넣어두면 일년 내내 간식으로 갈아 먹을 수 있다. 밥 할 때 넣어도 되고. 한 번에 한 사람당 20알 정도가 적당하다. 너무 많이 먹어도 안 좋다.
2일에는 동그라미 계원들이 모임을 산장에서 했다. 그날은 오리구이를 점심에 저녁은 고등어, 갈치구이를 먹었다. 한 달에 한 번은 서로 건강을 확인하고 밥을 같이 먹어서 좋다.
오늘은 양산 시청에 다녀와서 글나라 동화교실 가을학기 교재를 찾으러 부경복사점에 갔다. 우리 아파트 부근에 있어서 장보기 카트를 끌고 가서 담아 왔다. 단골이라 만 원을 깎아주어서 감사했고, 명심보감 교재를 한 권 덤으로 얻었다.
이 책에서 본 구절을 하나 소개한다. < 하루에 착한 일을 하나 했을지라도 복이 금방 오는 것은 아니지만 재앙은 조금 멀어질 것이고, 하루에 악한 일을 하나 했을지라도 재앙이 금방 오지는 않지만 복은 조금 멀어질 것이다. 착한 일을 하는 사람은 봄날 정원의 풀과 같아서 자라는 것이 보이지는 않지만 날마다 크고 있고, 악한 일을 하는 사람은 칼 가는 숫돌과 같아서 닳는 것이 보이지 않지만 날마다 이지러져 가고 있다. 결론은 남한테 야박하게 굴지 말고 선하게 살라는 말이다.>
광주에 사는 동화작가 윤미경씨가 보내준 <이승사자의 타임포켓>을 읽었다. 중상을 당하거나 몸이 아파서 식물인간이 된 사람의 영혼을 소재로 동화를 썼는데 너무나도 실감나고 이해하기 쉽게 써서 마음에 들었다. 심장이 약해서 입원한 윤은우가 눈을 단짝 친구인 찬솔이에게 주고 생을 마감하게 되는 줄거리인데, 다른 작가라면 쉽게 쉽게 결말을 마무리 지었을 텐데, 윤미경씨는 치밀한 구성으로 독자가 무릎을 칠 만큼 섬세하게 그려내었다. 영혼과 저승사자에다 이승사자까지 등장시켜 명품 동화를 만들어내었다. 덕분에 이 책을 읽으며 오후 시간을 즐겁게 보냈다. 작가가 힘들게 쓰고 나면 수많은 독자들이 행복해진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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