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집

[스크랩] (범초산장 이야기 928회) 나를 가로막는 것은....

凡草 2019. 2. 16. 20:47

       2019, 216, 토요일, 맑음

 

     (범초산장 이야기 928) 나를 가로막는 것은....

 


  아직은 바람이 차다.

그래도 나무와 꽃들은 봄맞이 준비를 하고 있다.

산수유 꽃망울이 조금씩 부풀어 간다.

 

할미꽃도 털외투가 하루가 다르게 커지고 있다.

춥다고 마냥 웅크리고 있지 않는다.

 

친구들과 반송동 무지산을 올랐다가 내려오면서

밭에서 키우는 토끼를 보았다.

토끼들이 철망 안에서 사료를 먹고 있었다.

풀을 뜯어 주었더니 잘 받아먹었다.

 

그 토끼를 보니 진이가 생각났다.

너무 커서 키우기가 버거워졌다.

오끼나와 여행 가기 전에 도라지집에 주었다.

강아지로 받았다가 다 키워서 돌려주었다.

겨울에는 범초산장에 갈 일이 적어서 개를 키우기도 쉽지 않았다.

주고 나니 아쉽기는 하지만 먹이를 안 주어도 되고

누구를 물까 봐 걱정하지 않아도 되니 홀가분한 점도 있다.

 

친구들과 산행을 마치고

동부산역 부근에 있는 <오계절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는데

20년 묵은 가마솥 철판에 고기를 구워 주었다.

돼지고기 질이 좋고 음식도 맛있어서 추천할 만한 집이었다.

 

올 겨울은 그리 추운 날이 많이 없어서

범초산장 계곡도 거의 얼지 않았다.

작년에는 하얗게 얼어서 기하학적인 무늬까지 생겼는데

올 겨울에는 살얼음만 얼었다가 바로 녹았다.

 

퇴비로 쓰려고 깻묵을 물에 불려 놓았다.

아들이 운반해 준 커다란 플라스틱 통이 안성맞춤이었다.

깻묵을 켜켜이 넣고 물을 부어 놓았다.

이렇게 해서 만든 깻묵물은 영양분도 있고

농약 대신 쓸 수 있다.

몇십 배로 희석하여 농작물에 뿌려주면 된다.

 

본격적인 봄이 오기 전에 도라지 뿌리를 구해서

밭에 심었다.

슈퍼 도라지라는데 36000원 주고 4킬로그램을 샀다.

도라지는 꽃이 보기 좋아서 꽃밥 재료로도 쓸 수 있고

뿌리는 기침 감기에 약으로 쓰기 때문에

원래 조금 있었지만 넉넉하게 더 심었다.

 

엉겅퀴도 몇 뿌리 없어서 더 심으려고 지하철을 타고 멀리 갔다.

왕복 3시간이나 걸렸는데 군락지에 가서 15뿌리 정도는 캐었다.



돌아오다가 밥 먹을 때가 되어 부전 시장으로 들어가서

점심을 해결했다.

정식 5천 원이었는데 값에 비해 잘 나왔다.

흰밥이 내 취향은 아니었지만 남이 해준 밥이라 맛있게 먹었다.

 


굵은 도라지 뿌리를 심으려고 호미로 밭을 팠더니

커다란 돌이 박혀 있었다.

호미로는 캐낼 수가 없어서 곡괭이로 파냈다.

엄청나게 큰 돌이었다.

저런 돌이 밭에 들어있었으니 도라지가 뿌리를 제대로 뻗었을까?

아마 두 다리 펴지 못하고 옹송그리며 살지 않았을까?

저걸 계속 그대로 놓아두었다면

그 자리는 도라지가 잘 크지 못했을 것이다.

돌이 있는 줄도 모르고 애먼 도라지만 탓했을지도 모르지.

 

나는 캐낸 돌을 보면서 생각해 보았다.

사람도 마찬가지가 아닐는지......

내 앞을 가로막는 것은 다른 이유 때문이 아니다.

운명이 어쩌고, 환경이 나빠서 어떻고,

남이 나를 방해한다고 투덜거리지만

실제로는 나 자신이 가장 문제다.


자신은 꿈쩍도 안 하고 있으면서,

스스로 힘을 내지 않으면서,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면서 구실을 만들어내니까

하고 싶은 일을 못하는 것이다.

아무리 장애가 많아도 분연히 떨치고 일어나면

그 무엇이라도 못해낼 일이 없다.

 

돌아, 저리 물러가거라.

너에게 내 게으름과 무지를 얹어 보낸다.

 

내가 일하고 있는데 겨울잠에서 깨었는지

두꺼비가 엉금엉금 기어왔다.

작년 여름에 본 것은 회색이었는데

이 녀석은 노란색이었다.

산장에서 움직이는 동물을 보니 반가웠다.

자주 보자, 두꺼비야!

 

월요일과 화요일에 연속으로

점심 약속이 잡혀 있어서

오늘 등산 하러 갔다.

조금 쌀쌀했지만 찬바람을 이기고 올라오는 새순처럼

나도 산을 오르며 체력을 다졌다.

 

21일 비 오는 날에 급하게 뛰다가 넘어져서

크게 다칠 뻔했는데

오른 팔만 조금 삐고 다른 곳은 이상이 없었다.

앞으로 조심해야겠지만

그동안 등산과 체조로 단련한 덕분에

큰 부상을 입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언제 어떤 일이 있을지 모르니까

미리 미리 몸을 강하게 단련해 놓아야 한다.

 

호포에서 고당봉 옆을 지나 계명봉 왼쪽 계곡으로 내려갔다.

물가에서 점심을 먹고

계속 걸어가 노포동 지하철역까지 갔다.

바람이 차가워도 운동 한 번 잘 했다.

 

구포 시장에 가서

새싹 보리 가루 한 봉지를 샀고

달맞이 기름도 만 원 주고 한 병 샀다.

봄동은 2천 원을 주었더니 한 보따리를 주었다.

이렇게 많이 주면 장사하는 사람은 무엇이 남을 것인지?



<위풍당당 질리홉킨스>를 영화로 보았는데,

이번에 책으로 읽어보니 훨씬 더 재미있었다.


영화는 장면으로 술술 지나가지만 책에서는 멋진 문장도 볼 수 있었고,

전개되는 장면을 상상하며 읽어나갈 수 있어서 좋았다.

역시 영상보다는 활자가 사람의 머리를 더 자극하고 지적으로 만들어준다.

 

- 아줌마는 질리를 보고 커다란 미소를 지었는데 마치 잡지에 실린

다이어트 광고의 사용 후사진에 나온 사람의 미소 같았다.

몸은 사용 전인데 미소만 사용 후였다.

 

- 질리는 머리를 써 보려고 생각했지만 질리의 두뇌는 빙하 속 깊이 갇힌

털복숭이 매머드처럼 얼어붙어 있었다.

 

- 저 사람들은 날 종이쪽지처럼 찢어 잘 접어 멀리 날려 버리려는데,

아줌마는 바라만 보고 있을 거예요?

 

- “인생이 그렇게 나쁘면 아줌마는 왜 항상 행복해요?”

  “내가 나쁘다고 했니? 만만치 않다고 했지. 만만치 않은 일을

   잘 해내는 것처럼 행복한 일은 없잖아. 안 그래?

 

    이 외에도 줄을 치고 싶은 문장이 아주 많았다.

   그래서 캐서린 패터슨이 안데르센 상과 린드그랜 문학상까지 받은 모양이다.

    

 

     <가난한 사랑노래>

                               신경림

 

 가난한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

너와 헤어져 돌아오는

눈 쌓인 골목길에 새파랗게 달빛이 쏟아지는데.

가난하다고 해서 두려움이 없겠는가

두 점을 치는 소리

방범대원의 호각소리 메밀묵 사려 소리에

눈을 뜨면 멀리 육중한 기계 굴러가는 소리.

가난하다고 해서 그리움을 버렸겠는가

어머님 보고 싶소 수없이 뇌어보지만

집 뒤 감나무에 까치밥으로 하나 남았을

새빨간 감 바람소리도 그려보지만.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내 볼에 와 닿던 네 입술의 뜨거움

사랑하다고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네 숨결

돌아서는 내 등 뒤에 터지던 네 울음.

가난하다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

가난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

출처 : 글나라
글쓴이 : 凡草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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