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2월 22일, 금요일, 맑음
(범초산장 이야기 929회) 봄의 문을 여는 변산바람꽃
2주에 한 번 정도 통도사 옥련암에 물을 뜨러 간다. 이 물을 먹고 3장군이 나왔다고, 일명 '장군수'다. 물을 뜰 때가 되어 물통을 들고 가서 물을 뜨고 부근에 있는 서운암까지 한 바퀴 돌았다. 풍광이 좋아서 걷기에 좋은 길이다. 물을 뜨고 멋진 경치까지 보니 일석이조다. 다른 곳은 바람이 차지만 이곳은 높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안온하다. 따스한 봄기운이 느껴졌다. 곧 아지랑이가 스멀스멀 올라올까?
물을 뜨고 나서 집으로 바로 오지 않고 울주군 삼동면으로 변산바람꽃을 보러 갔다. 좀 멀기는 해도 해마다 봄을 보러 가는 발걸음이라 가볍기만 하다. 해마다 2월 20일 전후에 보러 가는데 올해는 날씨가 따뜻해서 물을 뜨러 간 김에 혹시나 싶어서 갔다. 아직은 좀 이르기는 해도 역시 내 기대를 저버리지는 않았다.
하얀 꽃망울이 막 눈을 뜨고 있었다. 얼었던 땅에서 제일 먼저 올라오는 꽃이다. 다래 덩굴이 우거진 숲속에서 하얀 꽃잎을 펼친 변산바람꽃! 돌틈에서 갸웃이 고개를 치켜든 꽃을 숨 죽이고 지켜보았다. 날씨가 풀리면 더 많이 올라오겠지만 오늘은 이것만으로도 행복했다. 몇 년 전에는 변산바람꽃 군락지가 많이 넓었는데 계곡을 개발하면서 흙을 갖다 덮는 바람에 자꾸 좁아졌다. 만약에 여기가 다 없어진다면?? 아무리 멀어도 네가 어디서든 피기만 하면 찾아가리라 -. 아직 확 피지는 않았어도 자신이 살아있다고 외치는 꽃이다. 날이 추워서 손이 시렸지만 손이 시린 줄도 모르고 사진을 연방 찍었다.
이 꽃을 보아야 봄이 시작되는 듯 하다. 다른 꽃이 하나도 피지 않을 때 변산바람꽃은 홀로 피어난다. 이 꽃을 보러 와야 봄이 문을 연다. 나는 봄을 맞는 통과의례처럼 해마다 이 꽃을 보러 간다. 올해도 변산바람꽃을 보고 나니 봄을 제대로 맞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나에게 봄을 선사하는 고마운 꽃이다.
돌아오는 길에는 통도사 앞에 있는 <류가네 다슬기>에 가서 다슬기 찜국을 점심으로 먹었다. 한 그릇에 7천 원이다. 걸쭉한 들깻국에 다슬기가 많이 들어 있어서 맛있게 먹었다.
2월 18일에는 대학 친구들과 만나 점심을 같이 먹었다. 등산 대장을 하던 문윤오씨가 몸이 아팠다가 회복되었는데 한동안 못 보아서 얼굴도 볼 겸 몇 명이 모였다. 문윤오씨 친구인 고지태, 지금 트레킹 대장을 맡고 있는 한윤갑, 장재영, 나 - 이렇게 다섯 명이 범초산장으로 갔다. 원래는 철마에 있는 윤갑씨 농장으로 가려고 했는데 농막이 수리중이라 범초산장으로 장소를 바꾸었다. 다음에는 한 대장 농장에 꼭 가보고 싶다. 친구들은 범초산장을 둘러보더니 성공한 사람이라며 나를 추켜세워서 조금은 쑥스러웠다. 동화교실이나 범초산장은 그냥 좋아서 하는 일인데...
글나라 동화교실 해님반 회원들과 번개를 했다. 방학중이라 한 번도 못 보았는데 오랜만에 제자들 얼굴을 보았다. 다들 건강한 얼굴이어서 반가웠다. 화명동 중국요리점 ‘비연’에서 점심을 먹었다. 밥값은 은영씨가 냈고, 커피는 정영혜씨가 쏘았다. 감사한 마음으로 성의를 받았다. 해님반 제자들 덕분에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유산슬이 내 입맛에 딱 맞았다.
밥을 먹고 부근에 있는 장미공원을 한 바퀴 돌아보았다. 물속에 잠자고 있던 수련이 조금씩 올라오고 있었고 산수유가 꽃망울을 터뜨리는 중이었다. 그래, 봄이 점점 다가오는구나! 엄지손톱보다 작은 산수유 꽃망울! 너의 노란 꽃술 끝에 봄이 대롱대롱 묻어온다.
글나라 사무실에 명월초를 심어두었는데 너무 많이 번져서 엄청 커졌다. 깨끗이 단장 할 겸 잘라서 효소를 담기로 했다. 가지치기 하면서 효소도 담고... 일석이조는 언제나 기분 좋은 일이다. 이제 날씨가 풀렸으니 범초산장으로 달려 가서 2-3일 자고 올 것이다. 한겨울에는 추워서 일주일에 한 번 정도 가서 둘러보고 일하다 왔는데 봄이 다가왔으니 숲속에서 자며 봄꿈을 꿀 것이다. 벌써부터 생각만 해도 가슴이 부푼다 - .
경주에 사는 조동화님이 새 시집을 보내주었다. <쥐똥나무 열매 만한 시들> (초록숲) 감사한 마음으로 다 읽었다. 짧지만 좋은 시들이 많아서 즐거웠다.
<모래시계> 조동화
늘 태초의 시간으로 돌아가 왔던 길 되짚어 떨어지는 폭포
<희망의 땅> 조동화
끙끙거리며 두 손을 짚고 일어선 바닥 그곳이 바로 희망의 땅일 줄이야!
<봄햇살> 조동화
나무들이 막 차 스푼만한 잎들을 내밀어 햇살을 떠먹기 시작하는 어제오늘 산중턱 너럭바위에 앉으면 내게도 햇살은 마치 그 옛날 할머니 끓여주시던 숭늉 맛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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