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2월 1일, 금요일, 맑음
(범초산장 이야기 925회) 산에서 받은 선물
2019년 1월 29일은 외할아버지 제삿날이다. (음력으로는 12월 24일) 다른 제사는 큰집에서 지내지만 외할아버지 제사만은 우리집에서 지낸다. 일 년에 한 번 지내는 제사다. 해마다 유여사가 혼자 장 보고 음식 만들고 바빴는데 올해는 처음으로 장 보러 따라가서 무거운 짐 들어주고 집에 와서는 연뿌리와 우엉 껍질을 깎아 주었다. 처음 해보는 일이지만 어렵지 않게 금방 숙달이 되었다.
제삿날 저녁에는 큰형수와 둘째 형수, 조카 둘이 왔고 아들 부부도 왔다. 손자 은우가 장손이라 술 따르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절도 함께 했다. 외할아버지 음덕 덕분에 올해는 감기 한 번 안 걸렸고 좋은 일도 많이 있었다. 외할아버지, 정말 감사합니다!
범초산장에 갔더니 봄이 다가오는 걸 아는지 할미꽃 꽃망울이 올라오고 있었다. 털외투를 입은 꽃대가 소담스럽다.
배추는 추위를 이기느라 바닥에 납작 엎드려 있다. 아무 것도 덮어주지 않아서 미안한데 다행히 죽지는 않았다. 가끔 한 포기씩 뽑아다 된장국도 끓여 먹고 쌈배추로도 먹는다. 추위를 이긴 배추가 고맙다.
느릅나무가 2014년 4월에 심었는데 이제는 엄청 큰나무가 되었다. 작년에 가지치기를 제대로 안 했더니 완전히 큰나무가 되어서 가지를 잘라 먹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이번 겨울에는 키 높이로 싹둑 잘라주었다. 진작 잘라주었더라면 힘들지 않았을 텐데 가만히 놓아두었다가 뒤늦게 고생했다. 이제는 낮게 잘라놓았으니 가지와 잎을 따서 물 끓여 마시기가 쉽겠다. 느릅나무는 염증에 좋은 나무다.
어제 비가 내렸지만 범초산장에 갔던 날은 비가 오래 내리지 않았는데도 계곡 물이 줄어들지 않았다. 봄이 가까이 다가오는지 물빛도 부드럽게 보였다.
새파란 기린초 잎을 잘라서 첫 봄나물로 무쳤다. 된장에 무쳐 먹으니 고소했다. 봄을 한 접시 먹은 느낌이다.
어제는 부산에 비와 눈이 섞여서 내렸다. 부산에서는 올겨울 들어 첫눈이었는데 날씨가 따뜻해서 쌓이지는 않았다.
눈이 오는 날 반가운 손님이 글나라에 찾아왔다. 인터넷으로 동화를 배우고 있는 오은영씨인데 혼자 오는 줄 알았더니 남편과 딸 둘까지 데리고 왔다. 동화를 배우면서도 한 번도 찾아오지 않았다며 인사하러 왔다. 가족을 모두 데리고 온 이유는 공무원인 남편과 같은 직장에 다니는데 아이를 직장에서 운영하는 유아원에 맡겼다가 오후 6시에 찾아오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같이 오게 되었다고.
동화 배우는 제자가 가족을 다 데리고 온 경우는 내가 동화를 가르치기 시작한 뒤로 처음이었다. 그래서 더 특별한 경험이었다. 글나라 건너편에 있는 ‘다채’ 식당에 가서 저녁을 같이 먹었다. 이야기 중에 한정기씨와 배유안씨를 희곡 교실에서 만났다 하고 밀양 연극촌에서 김향이씨를 만났다고 해서 더 반가웠다. 오은영씨 인상이 좋고 남편이 성실하게 생긴데다 귀여운 6살, 7살 혜승이와 혜지까지 데리고 왔기 때문에 우리 집으로 데리고 가서 차를 함께 마셨다. 이런 것도 나름대로의 인맥 관리법이다.
예전 같으면 밤에 손님을 데리고 집에 들어간다는 것은 어림도 없는 일이었지만 유여사도 나이를 먹으니 마음의 여유가 생겨서 웃으며 맞아주었다.
제자 부부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혜승이의 구연동화도 들었다. 덕분에 밤 시간을 즐겁게 보냈다.
오늘은 어제 비가 왔기 때문에 가지산 운문령으로 눈구경을 하러 갔다. 올 겨울에는 눈을 본 적이 없어서 일부러 시간을 내었다.
운문령은 경찰이 못 올라가게 통제를 해서 석남사 주차장 앞에 차를 대어 놓고 산으로 올라갔다. 예상대로 산에는 눈이 가득 쌓여 있었다. 아이젠을 차고 신 나게 걸었다. 자연이 주는 공짜 선물을 마음 가득 받았다. 감사한 시간이었다.
눈길을 걸으며 라디오를 들었는데 좋은 시를 많이 낭송했다. 눈길을 걷는 것도 행복한데 좋은 시까지 들어서 행복이 두 배로 커졌다.
<혼자> 이정하
혼자 서서 먼발치를 내다보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가만히 놓아 둘 일이다. 무엇을 보고 있느냐 누구를 기다리느냐 굳이 묻지 마라 혼자 서 있는 그 사람이 혹시 눈물 흘리고 있다면 왜 우느냐고도 묻지 말 일이다 굳이 다가서서 손수건을 건넬 필요도 없다 한 세상 살아가는 일, 한 사람을 사랑하는 일은 어차피 혼자서 겪어나가야 할 고독한 수행이거니. * 세상을 살다 보면 혼자 감내해야 할 일이 있다. 힘들더라도 잘 이겨내어야 한다. 징징 짜면 안 된다. 혼자 잘 이겨내어야 도와줄 사람이 생긴다. 혼자 잘 할 수 없는 사람은 남과 어울리기도 어렵다.
<선물> 나태주
하늘 아래 내가 받은 가장 커다란 선물은 오늘입니다.
오늘 받은 선물 가운데도 가장 아름다운 선물은 당신입니다.
당신 나지막한 목소리와 웃는 얼굴. 콧노래 한 구절이면 한 아름 바다를 안은 기쁨이겠습니다.
* 오늘 하루가 큰 선물이다. 아침에 눈을 뜨면 바로 ‘감사합니다’라고 말해야 한다. 아무 일 없이 하루가 가는 것은 큰 축복이다.
<사랑에 답함> 나태주
예쁘지 않은 것을 예쁘게 보아주는 것이 사랑이다
좋지 않은 것을 좋게 생각해 주는 것이 사랑이다
싫은 것도 잘 참아 주면서 처음만 그런 것이 아니라
나중까지 아주 나중까지 그렇게 하는 것이 사랑이다
* 예쁜 것은 당연히 예쁘다고 하겠지만 예쁘지 않은 것도 사랑의 눈으로 보면 예쁘게 보인다. 싫은 것도 참아주고 마음에 들지 않아도 참아주는 것이 사랑이다.
<봄꿈을 꾸며> 김종해
만약에 말이지요, 저의 임종 때, 사람 살아가는 세상의 열두 달 가운데 어느 달이 가장 마음에 들더냐 하느님께서 하문하신다면 요, 저는 이월이요, 라고 서슴지 않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눈바람이 매운 이월이 끝나면, 바로 언덕 너머 꽃 피는 봄이 거기 있기 때문이지요. 네, 이월이요. 한 밤 두 밤 손꼽아 기다리던 꽃 피는 봄이 코앞에 와 있기 때문이지요. 살구꽃, 산수유, 복사꽃잎 눈부시게 눈처럼 바람에 날리는 봄날이 언덕 너머 있기 때문이지요. 한평생 살아온 세상의 봄꿈이 언덕 너머 있어 기다리는 동안 세상은 행복했었노라고요.
* 일요일보다 토요일이 좋고, 토요일보다 금요일 저녁이 더 좋다. 왜냐하면 기대감이 크기 때문이다. 다음날도 쉴 수 있다는 기대감. 3월이 봄이지만 정작 3월보다는 2월이 더 좋다. 다음달이 봄이라는 기대감이 있기 때문이다. 오늘부터 2월이 시작되었기 때문에 행복한 봄꿈을 꾼다. 3월을 기다리며 행복한 시간을 보낼 거다.
<그대 앞에 봄이 있다> 김종해
우리 살아가는 일 속에 파도치는 날 바람 부는 날이 어디 한두 번이랴 그런 날은 조용히 닻을 내리고 오늘 일을 잠시라도 낮은 곳에 묻어두어야 한다 우리 사랑하는 일 또한 그 같아서 파도치는 날 바람 부는 날은 높은 파도를 타지 않고 낮게 낮게 밀물져야 한다 사랑하는 이여 상처받지 않은 사랑이 어디 있으랴 추운 겨울 다 지내고 꽃 필 차례가 바로 그대 앞에 있다
* 추운 겨울 지내고 나면 봄이 오지 또 겨울이 오겠는가? 힘든 일이 있으면 곧 다가올 행복을 생각하며 참아낼 일이다. 꽃샘추위 끝에 매화가 피듯이 힘든 일 다음에는 웃는 시간이 다가온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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