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창작

[스크랩] 가을호 동화-최영희

凡草 2005. 9. 7. 20:47
  

가족사진

최영희 


 “단비야, 우리 집에 가서 조금만 놀다 가자. 오늘 토요일이라서 학원에 안가도 되잖아.”

 세탁소 근처에 다다랐을 때 은솔이가 단비의 오른팔을 와락 잡아끌었습니다.

 “글쎄, 엄마가…….”

 이렇게 말끝은 흐렸지만 단비는 은솔이가 이끄는 대로 끌려갔습니다.

 “우리 엄마가 맛있는 떡볶이를 해놓는다고 했거든.”

 맛있는 떡볶이라는 말을 듣자 단비는 자신도 모르게 목구멍으로 침을 꿀꺽 삼켰습니다.

 단비는 은솔이 집에 한 번 놀러 간 적이 있습니다. 지난 봄, 조별 숙제를 한다고 같은 조 아이들과 우르르 몰려 은솔이 집에 놀러갔습니다. 그 때도 은솔이 엄마가 떡볶이를 해주셨습니다.

 “자, 얘들아. 이리 와서 떡볶이 먹으렴.”

 은솔이 엄마가 식탁 위에 떡볶이를 담은 커다란 접시를 놓으며 말했습니다.

 “우아, 떡볶이다.”

 은솔이와 다른 아이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식탁 의자에 앉는 동안 단비는 은솔이 엄마 곁에서 은솔이 엄마가 건네주는 포크와 유리컵들을 조심스럽게 식탁 위에 놓았습니다. 모르는 사람이 보았다면 마치 단비와 은솔이 엄마를 모녀로 여길 정도로 두 사람은 손발이 척척 맞았습니다.

 아이들의 유리컵에 콜라까지 따른 단비가 그제야 식탁 의자에 앉자 은솔이 엄마는 놀라움을 잔뜩 담은 두 눈으로 단비를 바라보았습니다.

 “엄마, 얘가 나와 제일 친하게 지내는 단비야.”

 은솔이의 소개에 단비는 멋쩍은 듯 은솔이 엄마에게 꾸벅 고개를 숙였습니다.

 “으응, 네가 바로 단비로구나. 이름처럼 얼굴도 마음도 예쁘네. 단비는 평소에 엄마 일을    잘 도와드리는 모양이네.”

 은솔이 엄마의 물음에 이번에도 단비는 수줍은 듯 고개만 끄덕했습니다.

 단비의 입에도 은솔이 엄마가 만드신 떡볶이는 학교 앞에 있는 둘리 분식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맛이 있었습니다. 검지보다 조금 긴 가래떡과 어묵, 그리고 삶은 달걀이 매콤한 고추장맛과 어울려 단비의 입안을 달콤하게 만들었습니다.

 그 맛있는 떡볶이를 머리에 떠올리니 단비는 자신도 모르게 목구멍으로 침이 꿀꺽 넘어갔습니다. 그래서 학교 수업이 끝나면 곧장 병원으로 오라는 엄마의 말씀도 마음속으로 지우며 은솔이를 따라갔습니다.

 “단비야, 오늘 학교 수업이 끝나면 곧장 병원으로 와.”

 “엄마, 아빠에게 무슨 일이 있어요?”

 “무슨 일이라니? 오늘 토요일이잖아. 매주 토요일이 아빠한테 가는 날이라는 걸 잊었니?    단비 너 요즈음 정말 이상해졌어.”

 아침에 집을 나서는 단비의 등 뒤에다 엄마는 언짢은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엄마의 언짢은 목소리를 들으며 단비도 시무룩한 얼굴이 되었습니다.

 단비는 매주 토요일마다 아빠가 입원해 있는 병원에 갑니다. 단비의 아빠는 7년 째 병원에 입원해 있습니다. 단비가 네 살 되던 해, 뺑소니차에 치인 아빠는 갓난아기처럼 아직도 침대 위에 가만히 누워만 있습니다.

 단비가 아무리 말을 걸어도 아빠는 대답도 못하고 가만히 병실 천장만 바라봅니다. 간혹 어쩌다 커다란 두 눈을 한번씩 깜박거리기는 하지만 그건 말귀를 알아들었다는 눈치는 아닙니다. 같은 병실에 있는 환자나 보호자들은 식물인간처럼 가만히 두 눈을 감고 있던 아빠가 이만큼 나아진 것도 다들 엄마의 덕이라고 말을 합니다. 그러나 단비의 눈에는 그런 아빠가 언제나 똑같아 보입니다. 아마 아빠는 지금 단비가 나이가 11살이라는 것도, 또 새싹 학교 4학년이라는 것도 모를 것입니다.

 아빠가 7년 동안 병실에 누워있는 동안 엄마는 슈퍼우먼처럼 용감하고 씩씩해졌습니다. 처음엔 단비를 끌어안고 울기만 했던 엄마였지만 지금은 커다란 트럭을 몰고 이른 새벽마다 농수산물 시장을 향합니다. 농수산물 시장에서 경매로 받아온 청과물들을 서른 군데도 넘는 가게마다 배달까지 하고 온 엄마는 집에 돌아오기가 바쁘게 단비의 아침밥을 챙겨줍니다.   단비가 아침밥을 먹을 동안에도 엄마는 뒤 베란다에서 세탁기를 돌립니다.

 아침밥을 먹고 단비는 학교로 엄마는 아빠가 입원해 있는 병원으로 향합니다. 엄마는 병원에서도 쉴 틈이 없습니다. 깨끗한 수건에 물을 적셔 아빠의 얼굴이며 두 손과 두 발, 그리고 온몸을 닦아줍니다. 아빠는 그런 엄마의 수고를 아는 듯 모르는 듯 그저 두 눈을 한번씩 깜박일 따름입니다. 그 뿐 아닙니다. 엄마는 갓난아기처럼 가만히 침대에 누운 아빠를 30분에 한 번씩 이쪽저쪽으로 번갈아 눕힙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빠의 등에 욕창이 생긴다고 합니다.

 하루종일 아빠의 병간호에 시달린 엄마는 밤늦어서야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제대로 두 눈을 붙이지도 못한 채 새벽이면 큰 트럭을 몰고 농수산물 시장으로 향했습니다.

 엄마 못지 않게 단비의 생활도 바빠졌습니다. 학교를 마치고 무섭게 영어학원을 갑니다. 또 영어학원이 끝나면 미술학원에 갑니다, 미술학원을 마칠 무렵이면 벌써 해가 서산으로 꼴깍 넘어가고 주위가 어두워졌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단비는 엄마가 아침에 해놓은 전기밥통 속의 밥을 퍼서 냉장고 속에서 꺼낸 반찬과 함께 늦은 저녁밥을 먹었습니다. 늦은 저녁을 먹고 숙제와 일기 쓰기까지 끝내면 어느덧 단비의 두 눈에는 졸음이 올망졸망 매달립니다. 그 시간쯤 되면 어김없이 전화벨이 울립니다.

 “단비야, 엄마다. 엄마 조금 있으면 갈 테니 졸리면 현관문 단속 잘하고 누워 자라. 그리고   누가 오더라도 문을 열어주면 안 돼.”

 단비는 엄마의 목소리를 자장가 삼아 들으며 잠에 빠져들곤 했습니다. 그러다 눈을 뜨면 새벽에 농수산물 시장에서 받아온 청과물을 가게마다 배달까지 마친 엄마가 부엌에서 덜거덕거리며 아침밥을 짓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단비는 엄마가 잠든 모습은 본 적이 없습니다.

그렇게 엄마와 단비가 바쁘게 두 발을 동동거리며 7년을 보내는 동안 아빠는 여전히 갓난  아기처럼 가만히 침대 위에 누워만 있었습니다.             


 “딩동~”

 “누구세요?”

 “엄마, 은솔이에요. 단비도 같이 왔어요.”

 “단비도 같이 왔다고? 어서 들어오렴.”

 은솔이 엄마는 활짝 웃으며 은솔이와 단비를 맞습니다. 활짝 웃는 은솔이의 엄마의 하얀 얼굴을 보며 단비는 엄마의 얼굴을 떠올립니다. 단비는 엄마의 웃는 얼굴을 본 적이 없습니다.  까맣고 까칠까칠한 엄마의 얼굴. 아마 아빠가 뺑소니차에 치이지만 않았더라도 엄마의 얼굴도 은솔이 엄마의 얼굴처럼 하얗고 윤기가 났으며, 또 얼굴엔 언제나 웃음꽃이 활짝 피어났을 것입니다.

 “은솔이하고 단비하고 화장실에 가서 손 씻고 와. 그리고 은수도 나오라고 그래. 조금만 있   으면 떡볶이가 다 될 거야.”

 은솔이 엄마는 다시 활짝 웃었습니다.

 단비는 은솔이를 따라 화장실을 향하다 잠시 발걸음을 멈췄습니다. 앞서 가던 은솔이도 걸음을 멈추고 그런 단비를 바라봅니다. 단비의 두 눈은 거실 벽에 걸린 커다란 사진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으응, 우리 가족사진이야. 지난달에 찍은 거야. 우리 동생 은수가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   했잖아. 그 기념으로 찍은 사진이야. 우리 아빠가 내가 중학교 입학할 때 다시 가족사진을   찍자고 하셨어.”

 은솔이의 말에 단비는 벽에 걸린 은솔이네 가족사진을 다시 바라보았습니다. 사진 속에서 은솔이의 네 식구가 행복하게 활짝 웃고 있습니다.

 단비네 집에는 이렇게 벽에 걸린 커다란 가족사진이 없습니다. 아니, 가족사진이 한 장 있긴 하지만 단비가 아기였을 때 엄마, 아빠와 함께 찍은 사진입니다. 그러나 그 사진은 아주 오래되고 또 크기도 단비 손바닥만한 크기입니다. 아빠가 뺑소니차에만 치이지 않았더라도 단비네 식구도 아마 은솔이네 식구처럼 이렇게 커다란 가족사진 속에서  활짝 웃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행복하게 웃고 있는 은솔이네 가족사진을 보고 있자니 단비의 마음속은 갑자기 슬퍼집니다. 까맣고 까칠한 엄마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연이어 갓난아기처럼 병실 침대 위에 누워만 있는 아빠의 얼굴도 떠올랐습니다. 엄마, 아빠의 얼굴이 떠오르자 단비는 화장실로 향하던 발길을 다시 현관 쪽으로 돌렸습니다. 그런 단비의 모습에 은솔이는 화들짝 놀랍니다.

 “단비야, 왜 그러니?”

 “은솔아, 집에 가봐야겠어. 아침에 엄마하고 어딜 가기로 약속해놓고 깜박 잊었지 뭐니. 미   안해.”

 “단비야, 그래도 떡볶이는 먹고 가.”

 “아니야. 은솔아, 우리 월요일 학교에서 다시 보자.”

 단비는 은솔이를 향해 애써 웃으며 손까지 흔들어 보였습니다.

 아침에 엄마가 단비에게 곧장 병원으로 오라고 했지만  단비는 병원이 아닌 집으로 향했습니다. 집에 들어서기가 무섭게 단비는 곧장 큰방으로 달려가 서랍장을 열었습니다. 단비는 서랍장 속에서 두툼한 사진첩을 꺼냈습니다. 사진첩을 뒤적이는 단비는 한참 만에 두 장의 사진을 꺼내들었습니다. 한 장의 사진은 단비가 아기 때 엄마, 아빠와 함께 찍은 사진입니다. 그리고 나머지 한 장은 지난 봄 소풍 때 은솔이와 같이 찍은 사진입니다.

 단비는 은솔이와 찍은 사진 속에서  자신의 모습만 가위로 오려냈습니다. 가위로 오려낸 자신의 모습 뒤에 풀칠을 한 단비는 이번엔 엄마, 아빠와 함께 찍은 아기 때 사진 위에다 겹쳐 붙였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붙인 사진을 코팅까지 했습니다.

 “정말, 멋진 가족사진이 됐네.”

 단비는 사진을 들여다보았습니다. 사진 속의 엄마, 아빠는 봄 소풍 간 단비를 끌어안고 행복한 얼굴로 활짝 웃고 있었습니다. 활짝 웃고 있는 엄마, 아빠를 보며 단비도 슬며시 웃음을 떠올렸습니다. 그 때였습니다. 따르릉 하고 전화벨이 요란스럽게 울렸습니다.

 “단비야, 곧장 병원으로 오라고 했는데 그냥 집으로 갔었니?”

 “…….”

 “엄마는 네가 안 와서 무척 걱정을 했잖아.”

 “엄마, 미안해요.”

 “그런데 단비야, 기쁜 소식이 있단다. 아까 점심때부터 아빠가 두 손을 조금씩 움직이기 시   작했어.”

 “정말~. 엄마, 나 지금 곧 갈게요. 나도 아빠께 꼭 보여드릴 게 있어요.”

 전화기를 내려놓은 단비는 두 손으로 가족사진을 꼭 끌어안고 활짝 웃었습니다. 그런데 활짝 웃는 단비의 두 눈 위로 자꾸만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부산에서 태어남

동아일보 신춘문예 동화 당선

부산아동문학상, 한국아동문학상, 이주홍문학상 등 수상

초등학교 교사 역임

출처 : 어린이글수레
글쓴이 : 어린이글수레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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